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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서열화와 사교육을 부추기므로 없애야 한다”는 처방에는 너무나 많은 ‘단순화의 오류’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언제나오복의향기 2017. 11. 4. 07:30

 

 

'불리한 진실'엔 눈 감는 색맹정책들

자사고 폐지·탈원전 이면의 비용과 위험 
최저임금·근로시간에 질식하는 중소기업 
"불가피한 부작용"이라는 독선은 곤란 

이학영 논설실장 haky@hankyung.com
 

 

외국어고와 자율형사립고를 폐지하겠다는

대통령 공약이 본격 추진될 조짐을 보이면서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고교 서열화와 사교육을 부추기므로 없애야 한다”는 처방에는 너무나 많은 ‘단순화의 오류’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 논리대로라면 외고·자사고 폐지가 ‘일반고 활성화’로 이어져 학교 교육을 정상화시켜야 할 텐데,

40여 년 전 고교평준화가 도입된 이후 현실이 정반대였음은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 

우열 차이가 심한 학생들을 한 교실에 몰아넣고 느슨하게 수업을 진행한 결과

 ‘학력 맞춤형 사교육’에 불을 지피고 가계를 짓눌러 왔음도 모두가 아는 바다.

수월성 교육에 목마른 학부모들이 자녀를 해외 중·고교로 조기 유학시키면서

여러 문제를 파생시키고 있는 현실도 우리가 지켜보고 있는 대로다.

진보 정치인이었던 김대중 대통령 시절 자사고를 도입한 건 획일적 평준화의 부작용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고·자사고 폐지를 밀어붙이겠다면, 그로 인해 치러야 할 ‘비용’을 온전하게 알리는 게 순서다.

 해외 조기유학 수요를 줄이고,

지방에서는 지역인재 유출을 막아 온 외고와 자사고 폐지가 야기할 문제는 ‘인재 엑소더스’만이 아니다.

 

학군(學群) 좋은 곳으로 이주 수요가 몰려 집값이 더 뛰고,

학교 교육에 만족할 수 없게 된 학생들의 사교육 의존도가 더 높아지는데 그치지도 않을 것이다.

 

정부가 매년 최소 2000억원의 세금을 더 거두거나,

다른 곳에 써 온 예산을 그만큼 줄여야 한다.

일반고에 대해서는 ‘재정결함보조금’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율 운영 학교에는 안 줘도 됐던 돈인데,

교육당국이 학교 운영에 시시콜콜 간섭하게끔 바꾸는 대가를 온 국민이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대부분 국민이 모르는 게 또 있다.

교육평등주의자들의 자녀 대다수가 자사고·외고 아니면 강남지역 명문고 출신이라는 사실이다.

 

안경환 아들은 하나고,

김상곤 세 딸은 강남 특구 여고,

조국 딸은 한영외고, 조희연 두 아들은 명덕외고, 대일외고…. 진짜 ‘내로남불’ 차원을 넘어서는구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와 있는 글이다. 

정책을 새로 내놓거나 기존 정책 방향을 바꿀 때 “기대하는 효과는 이런 것인데,

시행 과정에서 저런 측면의 부작용 내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이런저런 편익이 더 클 것이다”는 식으로

 관련된 모든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공개하는 게 마땅하다.

그래야 정책에 대한 국민 공감대를 넓히고,

집단 지성을 모아가는 과정에서 미처 챙기지 못한 미비점을 보완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엉터리 내용을 그럴듯한 슬로건과 미사여구(美辭麗句)로 포장해 국민을 호도함으로써,

두고두고 나라를 골병들게 하는 참사도 막을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정부가 임기 초반부터 밀어붙이고 있는 정책들 대부분에 이런 공론 수렴 과정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국민 안전과 환경 보호를 내세워 추진하고 있는 ‘탈(脫)원자력·탈석탄’ 발전 정책이 단적인 예다.

전기요금이 최소 20~36% 오를 뿐 아니라,

발전원(發電源)으로 액화천연가스(LNG) 의존도를 과도하게 높이게 돼

에너지 안보에 치명적인 위험을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부가 ‘탈원전’의 롤모델로 삼았던

대만이 예상치 못한 전력난에 부딪치자 원전 가동을 재개했다는 사실도 국민 모두가 알아야 할 실상이다.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챙기고 있는 일자리 정책의 예상되는 문제들은 새삼 말할 것도 없다.

최저임금을 3년 내에 시간당 1만원으로까지 끌어올릴 경우

편의점주 등 소상공인 대부분이 사업을 접거나 직원을 내보낼 수밖에 없게 되고,

근로시간을 일률적으로 단축할 경우

안 그래도 구인난에 시달리는 영세 중소기업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호소를

“작은 부작용만 부각시킨다”는 식으로 윽박질러서는 곤란하다.

“우리가 다 안다”는 식의 개혁 독선과 독주가 어떤 결과를 빚어 왔는지를 일깨워 주는 사례들이야말로 차고 넘친다.

 

이학영 논설실장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