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울의 언어정담] 편집자, 나를 작가로 만든 사람들~
작가
작가의 '아직 낳지 않은 황금알'을
편집자는 알아보는 투시력 가져
책을 마음에 그리는 능력도 갖춰
기다리고 용기주는 영혼의 길벗
정여울 작가
작가의 '아직 낳지 않은 황금알'을
편집자는 알아보는 투시력 가져
우리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물론 본인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지만,
좋은 사람들과의 협업이야말로 우리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드는 최고의 비결이다.
나는 매번 신간을 낼 때마다 ‘글을 쓰는 일’과 ‘책을 만드는 일’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함을 깨닫는다.
글을 쓰는 일이 피아노 독주라면,
책을 만드는 일은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다.
글쓰기는 언제든 나 혼자 할 수 있지만, 책을 만드는 일은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협력을 필요로 한다.
책의 목차는 물론 제목과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에 관여하는 훌륭한 편집자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고,
책의 내용과 잘 어울리는 이미지를 구현하는 창조적인 디자이너,
디지털화된 편집본을 ‘만질 수 있는 생생한 책’으로 만들기 위해 인쇄와 제본에 참여하는 분들,
책을 더 많은 독자들에게 제대로 알려주기 위해 노력하는 마케터와 서점 직원분들에 이르기까지,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책을 만들고 유통하는 과정 속에 기꺼이 참여해야 한다.
특히 저자와 편집자와의 하모니는 책을 만드는 데 있어 가장 결정적인 협업이다.
‘작가가 만들어낸 날 것의 언어’를 ‘독자들이 읽고 싶은 책의 언어’로 바꿀 수 있도록 조언해 주는 사람이 바로 편집자다.
나를 작가로 만든 내부의 힘은 나 스스로의 노력이지만,
나를 작가로 만든 외부의 힘은 팔할이 편집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편집자의 조언과 지휘력은 큰 힘을 발휘한다.
좋은 편집자란 어떤 재능을 갖춰야 할까.
첫째, 좋은 편집자는 작가의 ‘아직 낳지 않은 황금알’을 알아볼 수 있는 투시력을 지닌다.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의 편집자는 나에게 ‘20대를 향해 건네고 싶은 메시지’를 책으로 써달라며, 한사코 ‘나는 이런 책은 못 쓴다’고 도망치려는 나를 붙들어주었다.
‘남을 위로하는 글을 쓰는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편집자는 “선생님이 쓰고 싶은 것을 그냥 쓰시면 돼요!”라고 응원해주었다.
그 소박한 응원이 나로 하여금 ‘문학평론가’에서 ‘작가’로 변신하는 책을 쓸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둘째, 좋은 편집자는 ‘기다림의 달인’이다.
훌륭한 편집자는 고통스러운 기다림을 창조적인 협업의 과정으로 바꿀 줄 안다.
작가는 너무나 절실하게 좋은 원고를 주고 싶지만, 그만큼 빠른 시간 안에 좋은 글을 쓰는 일은 어렵기에 본의 아니게 편집자들을 기다리게 할 때가 많다.
편집자도 고통스럽지만, 작가도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는 일이 가슴 아프다.
글을 쓰는 일이 워낙 고통스럽고 외로운 일이기 때문에 때로는 ‘이제 그만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바로 이럴 때 지혜로운 편집자는 작가에게 ‘포기하지 않을 용기’를 준다.
‘월간 정여울’ 시리즈를 만들 때, 나의 편집자는 내게 아무리 힘들어도 글을 써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었다.
나의 글을 먼 곳에서 날아오는 따스한 편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고대하는 독자들이 있다는 것,
매달 배달되는 책 한 권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왜 책이 안 나오냐’고 걱정을 하는 독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다.
편집자는 최초의 독자이기도 하고, 독자들의 마음을 작가에게 전달해주는 훌륭한 메신저이기도 하다.
이렇게 마음이 따스한 편집자들 덕분에 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글을 쓸 힘을 얻곤 했다.
셋째, 좋은 편집자는 ‘아름다운 책을 마음속에 그리는 능력’이 있다.
단지 한 권의 책을 히트작으로 만들기 위해 뛰는 것이 아니라,
이 작가를 더 좋은 작가로 만들어주기 위해,
다음 책은 물론 10년 후에 낼 수 있는 책까지 기획하고 상상하며 저자에게 용기를 준다.
급박한 미디어 환경의 변화 속에서 점점 설 자리가 좁아지는 책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
글쓰기에 대한 사랑, 독자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좋은 편집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빈센트 나의 빈센트’를 만드는 동안 편집자는 매일 나에게 가족보다 더 자주 메시지를 보냈다.
“선생님, 오늘은 초교를 마쳤어요.”
“오늘은 디자인 시안이 나왔어요.”
“선생님, 책 인쇄 중이예요. 책 속의 사진 잘 나오라고 잉크를 숫제 들이 부어달라고 신신당부했어요.”
이렇게 세심하게, 이렇게 다정하게 나에게 책을 만드는 과정 하나하나를 이야기해줌으로써,
편집자는 내가 결코 혼자가 아님을 일깨워준 것이다.
편집자와 작가는 이렇듯 언어를 사랑하는 마음,
그 언어로 만들어진 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뭉쳐진 영혼의 길벗이 되어
힘겨운 오늘을 버텨내는 진정한 동지가 된다.
국기에 대한 맹세-1974년
: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자유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