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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대로 진설한 시아버님 제사상 그리고...~아버님과 손잡고 오셔서 드실 두 분과 함께 세 분의 제사상입니다.병풍 앞에 앉아계실 세 분에게 나란히... 술도 한 잔씩...

언제나오복의향기 2021. 2. 25. 06:00

내 마음대로 진설한 시아버님 제사상 그리고...

희호재 이야기  2014. 1. 9.

 

(래리삐님처럼 구수한 이야기는 못 되지만 자랑하고픈 마음에 씁니다.

쓸까 말까? 할 때는 써야 한다고 누군가가 말했지요..ㅎㅎ.... 근데 너무 길어졌습니다.)

 

며칠 전 아버님 제사를 모시고 왔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결혼 초 시댁에서의 많은 일들이 낯설고 불합리하게 느껴졌었는데,

그 중 제사와 관련한 이런저런 절차들이 아버지가 외동(그래서 전 어릴 때부터 아버질 따라 절을 했지요.)이셨던 친정의 모습과는 참 많이 달랐습니다.

동그란 모양의 송편만이 양반떡이라고 하는 거며,

(저 세상에서도 며느리와 시어른은 한 상에 앉을 수 없다고) 시댁 큰집에 가면 명절날 차례상을 세대별로 서너 개씩 차리는 거며...

무엇보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남자는 절을 두 번 하는데 여자는 네 번 하라는 것이었지요.

 

조금씩 시댁 식구가 되어가며 때론 당돌하게 항변을 하기도, 때론 무언의 항의를 하며 지내었지만

시간이 가면서 아버님은 배운(?) 며느리였던 저를 많이 아껴 주셨습니다.

사흘 도리로 안부 전화를 하게 하신 엄마 때문에 시댁에도 두세 번에 한 번쯤은 전화를 하게 된 게

잔정없는 시누이들 속에서 자연스레 막내 며느리가 이쁨 받는 길이 되었고,

아들 내외를 앞세워 큰집 가는 걸 좋아하시던 아버님은 명절날 늘 한복을 입고 오는 며느리가 기특하여

'배운 사람은 다르다'고 큰어머님께 말씀하시곤 하셨다고 돌아가시고 나서 들었지요.

 

지금도 생각하면 목이 메이는 (결국 제 자랑만...ㅠㅠ.) 일은

임종 전 마지막 뵈었을 때 한밤중 병원 구석진 곳에서 그 시간까지도 끊지 못한 담배를 피우시면서

나눈 이야기입니다.

"기원이 외할머니에게 내가 고맙고 고맙고 고맙다고 꼭 말을 전해라"

"엄마에게 그리 고마운 일이 뭐가 있으셔요?"

"딸을 잘 키워 우리에게 주셔서 내가 고맙고 황감하다. 그런데 그걸 갚을 수가 없구나...

기원이를 잘 키워 그 보답을 받았으면 좋겠다....."

 

그 아버님 제사를 올해는 날짜를 며칠 당겨서 지냈습니다.

부모님 생신을 당겨서 하는 건 이제 당연한 일이 되었지요.

명절 차례를 여행지 콘도에서 지내는 이야기도 듣기 시작한 게 꽤 되었구요.

몇 년 전 저 아는 선생님 한 분이 부득이한 일로 집을 비우게 되어 어른의 제사를 당겨 지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답다. 제사를 당겨 지내는 것 - 사실 그것도 안 될 게 없잖아....' 그랬었지요.

 

그랬는데 우리도 그렇게 했습니다.

새 달력에 표시되는 아버님 기일을 그만 깜빡하고 제주가 되어야 할 남편이 여행 일정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들 없이 지내는 제사보다는 당기거나 늦추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이런 일에 우리 어머님은 언제나 합리적(?)이지요.

"사정이 그러면 그래라..... 그래도 늦추는 거보다는 당겨서 하자 마.

 

제사를 당겨 지내는 바람에 어머님과 우리 부부... 셋이서 오붓하게 제사를 모셨습니다.

가까이 계시는 아재(숙부님)도, 시누이들도, 장조카도 연락을 해야 날짜를 아는 터이지만 여차여차 해서 전화를 하지 않았지요.

막내 숙부님은 아버님 제사에 오시면 늘 이래라, 저래라...(그때그때 다르고, 도무지 이상한 방식들을..) 하시는 바람에 저는 늘 불만...

그러면 남편은 "이럴 때라도 아재가 큰소리 칠 때가 있어야지...." 하면서 저를 말리지요.

"왜 살아 계실 때처럼 하지 않고 저렇게 해? 도대체 술술술, 밥밥밥, 국국국.... 이렇게 차리는 제사상이 어디 있어? " 등등....

그런저런 사연이 있었던 고로 이번에는 남편이 말했습니다.

"오늘은 당신 차리고 싶은대로 해! 아버지도 좋아하실 거야...."

그래서 제 마음대로 진설을 했습니다.

아버님과 손잡고 오셔서 드실 두 분과 함께 세 분의 제사상입니다.

병풍 앞에 앉아계실 세 분에게 나란히... 술도 한 잔씩...

좋아하실 반찬들을 앞에, 식후에 드실 떡과 과일은 더 멀리....

그렇게 차리고 보니 옛날 친정에서 차리던 상 그대로인 것 같았습니다.

산 사람과 돌아가신 분은 밥그릇과 국그릇 위치가 다르다고 흔히 말하니 국그릇을 왼쪽에,

그리고 과일 순서는 남편이 다시 놓았습니다. 홍동백서라고....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세 사람이 오붓하게 드리는 제사네...." (제일 좋아하시던 손자가 빠졌지만..)

자, 제주가 먼저 절할게요...

우리 어머님은 언제나 앞서 가십니다.

(제주는 무슨... 아마도 속으로 그러셨을지도...) 혼자 먼저 한다는 아들 옆에서 넙죽 절을 하셔서 저도 같이....

셋이서 나란히 절하고, 한 사람은 잔 들고, 한 사람은 술 따르고, 한 사람은 잔 올리고....

 

다 모시고 음복으로 막걸리 한 잔씩을 들다가 막걸리 별로인 며느리 표정 보곤

우리 어머니 " 쏘주로 할까?"      "예! ㅎㅎ"

술 못 하는 ㄴㅁㄲ  벌 세워 앉혀 두고, 소주 한 병을 고부간에 마시고 행복하게 잤습니다.

 

제 마음대로 진설한 제사상입니다.

 

아버님 제사를 모시고 온 ㄴㅁㄲ은 이 추운 날에 더운 나라로 열흘쯤 날아갔습니다.

날씨도 매서워진다 하고, 또 간다고 배 아파하는 제게 미안해서 가기 전에 ㄴㅁㄲ이 해놓은 짓입니다.

아궁이 앞에 군불용 쏘시개 종이와 얇은 나무도, 장작도 손 가는 곳에 정리해 두고

벽난로용 나무도 난로 앞과 현관 앞에 두어 박스씩 해다 놓은 모습입니다.

 

 

 

 

여행용 가방 꺼내러 침실쪽 다락에 올라가더니 한쪽 구석에 새집이 있다고...

아마도 틈새 메운 스티로폼을 뚫고는 새 두 마리가 수천 번은 물어다 날라 만들었을 새집이었지요.

그걸 본 순간 기와집 천정에 사는 뱀 생각이 났지만 겨울이니 뱀은 잠 자고 있겠지, 뭐.... 했는데

안 되겠던지 가방 싸다 말고는 흙과 짚을 개어와서는 새집을 뜯어내고 기어이 구멍을 막고는

"잘 갔다올게..." 하고는 여행을 떠났습니다.

 

자랑만 해서 배 아파할 님들에게...

저도 지금 배 아파요..

지난 해 이어 1년 만에 또 가면서 용돈으로 다 해결한다더니 결국은 여행비 몽땅 쌩으로 빼앗아 카메라 들고 갔으니요....

 

저도 불만이 많지만....

 

blog.daum.net/gaulhaanl/8895008

 

내 마음대로 진설한 시아버님 제사상 그리고...

(래리삐님처럼 구수한 이야기는 못 되지만 자랑하고픈 마음에 씁니다. 쓸까 말까? 할 때는 써야 한다고 누군가가 말했지요..ㅎㅎ.... 근데 너무 길어졌습니다.) 며칠 전 아버님 제사를 모시고 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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