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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무엇입니까?~호칭. 별명. 함자. 성함. 존함.~ 호칭 인플레이션이 좀 심한 한국?.

언제나오복의향기 2022. 9. 19. 06:00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중앙일보  입력 2022.09.13 01:08

최명원 성균관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외국어를 가르칠 때 인사말과 함께 가장 먼저 다루는 내용이다.

내 어릴 적 기억에 우리 집을 드나드시던 할머님들이 많으셨는데, 그분들의 성함이 무엇이었는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던 것 같다. 대신 할머니들의 호칭이 매우 다양했다. 당시에도 획기적이었던 파마머리를 하신 파마할머니, 부산이 연고지가 되어 부산할머니, 심지어 엄마가 입원해 계시던 병원의 아래층에 입원하셨던 분이라서 아래할머니.

 

호칭에 민감한 우리 문화
선생님은 과목명이 곧 호칭
어머니 이름을 불러봅니다

 

어릴 적 나는 이름 대신 별명이었던 메주로 불렸다. “메주야!”라는 부름에 나는 재깍재깍 반응했다.

어린 시절 그렇게 나는 메주가 아닌 적이 없었기에, 내 이름조차 낯설어했다. 학교에 다니며 출석부에 이름이 올라가고, 담임 선생님께서는 더 이상 나를 메주로 부르지 않았다. 학교생활 내내 출석부에 쓰인 낯선 내 이름에 익숙해져야 했다.

버젓이 이름이 올라 있는 출석부 말고, 학교에서는 유난히 많은 별명이 지어진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그렇지만, 선생님의 호칭은 과목명이나 별명이 대신해준다. 그 가운데서도 유독 독일어 선생님이나 수학 선생님은 ‘게슈타포’ ‘독사’ 같은 무시무시한 별명을 얻는 경우가 많았다. 왜 그랬을까.

 

우리나라는 호칭에 매우 민감한 문화를 가지고 있어, 남이 불러주라고 지어준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 안 되는 모순을 안고 있다. 서양 문화와는 달리 어딜 감히 (어르신) 이름 석 자를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있을까.

그래서 함자를 붙인 성함도 되고 존함도 된다.

에고 어렵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직업을 가지면 직급이 그 사람의 호칭이 된다.

하지만 물가 상승률보다 더 심하다는 호칭 인플레이션으로

남자들은 선생님이나 사장님, 회장님 등 실제와 상관없이 자꾸 더 높은 직급으로 오르기만 하고,

여자들은 대충 사모님이나 어머님으로 퉁 치게 된다. 누가 누구의 어머니인가. 식당에 가면 언니, 이모는 많은데 오빠, 고모는 없다. 아주머니는 있어도 삼촌이나 아저씨는 존재가 미미하다. 호칭은 혈연지기 촌수마저도 어지럽혀서 전 국민이 할머님, 할아버님, 어머님, 아버님, 언니, 오빠, 누나, 형, 동생이 되어 모두가 한 가족 공동체임을 각인시킨다.

 

얼마 전, 한 교수님이 프랑스 유학 시절 겪었던 결혼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결혼 후 프랑스 문화에 따라 논문 저자명에 남편의 성을 쓰게 되자, 결혼 전 이름의 저자와 동일인인지 의심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고. 해명 아닌 해명을 하는 과정이 꽤나 성가시고 번거로웠을 게다.

 

나 또한 독일에서 혼인신고를 했었다.

참으로 다행이었던 것은 당시 독일에서 이를 담당하던 관공서 공무원의 각별한 배려로 결혼 전 내 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는 각국의 법령이 쓰인 두꺼운 책을 뒤적이며, 한국에서는 여자가 결혼 후에도 자기의 성을 그대로 쓴다고 알려주었다. 내 성이 독일식으로 남편을 따라 바뀌는 일이 없도록 한국 법령을 근거로 확인시켜 준 셈이다. 이후 독일 생활에서 친구들 사이에서는 이름만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격식을 갖추게 되면 남편의 성에 프라우(Frau)를 붙여 불렀지만, 논문을 비롯한 모든 공식적인 서류에서 아버지에게서 받은 성이 남편 성으로 바뀌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내 귀를 의심했던 것은 당시 이를 담당했던 공무원의 찬사였다.

그는 “한국은 여성에 대한 인권의식이 정말 높은 나라군요. 여자가 결혼해도 남편 성을 따르지 않아요”라며 놀라워했다.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멋쩍은 웃음과 함께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여성의 인권을 보장해서가 아니라, 성은 고사하고 이름조차 제대로 불려볼 기회도 없는데.’ 굳이 조선시대로 돌아볼 것도 없이,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여성들은 결혼 후 자신의 이름으로 불려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한국의 어머니들은 맏아이의 이름으로, 시집온 동네의 이름으로,

남편의 지위에 따른 사모님이나 아줌마로 한평생을 사셨다.

그러니 결혼 후에 남편 성을 따르고 말고 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딸들만 줄줄이 낳았던 집에서는 아래로 남동생을 보라는 의미만 찾던 수많은 누이의 이름도 있었다.

 

지금은 예전과는 사뭇 다른 환경이 되어 양쪽 부모님의 성을 모두 쓰는 경우도 있지만, 단 한 세대만 올려다보아도 결혼한 여성의 이름에 존재감이 있었던가. 태어나고 자란 집안의 호적에서 혼인과 함께 줄이 그어져 출가외인이 되는, 그 한 어린 세월에 묻혀 지낸 이름을 온전히 불러 대답해 본다. “어머니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최명원 성균관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풀꽃  ---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