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災인가 天災인가… 용광로는 꺼지고 `최정우 퇴진론`은 재점화
1차 피해 복구 비용만 '1400억'
"밥 못 먹어" 복구작업 환경 열악
전·현직 임직원들 "예견된 사고"
과거보다 '태풍 대비 부실' 지적
포스코 측 "가동중단 안 했으면
압연라인 다 폭발했을 것" 해명
디지털타임즈 이상현 기자 2022-09-13 16:34
지난 8일 경북 포항시 남구 포스코 포항제철소 2후판공장 가열로가 태풍 힌남노 영향으로 여기저기 흙더미에 묻혀 있다. 포스코 제공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창사이래 49년만에 처음으로 고로 가동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가운데, 이번 침수피해의 원인이 '천재지변'인지 '인재'인지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침수피해를 일으킨 태풍 '힌남노'에 대한 기상청의 경고가 수차례 있었음에도 포스코가 이를 묵살하거나 간과한 것 아닌지 등이 핵심 쟁점이다.
만약 '인재'로 판명될 요인이 조금이라도 나올 경우
수차례 리더십 논란에 휩싸였던 최정우(사진) 포스코그룹 회장의 경영능력이 치명타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13일 포스코에 따르면 포항제철소에선 지난 6일 태풍 힌남노로 인해 고로 3기의 가동이 멈췄으나, 이날을 기점으로 고로가동을 재개해 철강반제품 생산을 재개했다. 고로의 경우 지난 10일 3고로, 지난 12일엔 4고로와 2고로를 재가동했다. 쇳물을 뽑아내는 고로는 재가동됐지만, 후공정인 압연라인의 경우 아직 복구작업을 진행중이다.
포스코측은 이와관련,"배수작업이 80% 정도 진행됐다"고 밝혔으나
업계에선 "고로 아래 지하 1∼3층에 깔린 생산라인 전선케이블 등을 완전 복구하려면 상당 기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포스코는 1차 피해 복구 비용만 1400억원이 들 것으로 추산했다.
여기에 가동 중단에 따른 공급 차질과 재고 손실 등을 고려하면 피해규모는 수천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번 침수피해가 '예견된 인재' 였다는 주장이 전·현직 포스코 임직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과거 대형 태풍이 오기 전엔 사전 예방작업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예방조치가 소홀했었다는 주장이다.
전직 포스코 관계자는 "2003년 매미 태풍 때는
포항의 형산강교가 잠길 정도로 범람이 더 심했다"며
"그때는 포항제철소에서 물을 막기 위해 모래주머니 둑을 쌓고
밤새 펌프로 물을 빼내는 등 총력전을 펼쳤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이구택 회장은 야외 크레인이 쓰러질까봐
며칠 전부터 꽁꽁 묶어놓으라고 지시할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다른 관계자도 "이번 태풍 침수피해는 분명히 인재"라며
"내부에서 태풍이 닥치기 전에 둑이나 방파제를 쌓자는 건의를 했는데,
위에서 '돈이 들어간다'며 묵살을 했다는 말이 돌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철강제품을 생산도 못하는데
고로를 돌리는 게 뭐가 중요한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피해를 복구하는데 1400억원이나 들어간다는데
천재지변이라서 보험처리도 안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원형일 금속노조 포스코 지회장은 이날 라디오에 출연해 "제가 일하고 이런 피해를 입은 적이 없다"며 "완전히 정지된 것까지는 아니지만 전기가 끊기는 경우는 처음 본다" 말했다.
포스코 노조에서는 아직 사측에 공식적인 항의를 하지 않았지만 내부에서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한 포스코 직원은 지난 10일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24시간, 48시간 퇴근도 못하고 밤새 일하는데, 그 기간(회사가 요구하는 공장 재가동 시일)을 못따라간다"며 "현장에서는 밥도 제대로 못먹고 화장실도 제대로 못가면서 (일)하는데도 못따라갈 정도"라고 글을 적었다. 또 "현장에선 제대로 된 안전조치도 없이 작업중이고 형식적"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침수 피해로 인해 앞서 포항제철소 여직원 성폭행·성추행 사건으로 도마 위에 올랐던 최정우 포스코 회장의 리더십이 또다시 흔들리고 있다. 당시 최 회장은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김학동 부회장을 시켜 대신 사과를 하게 해 구설수에 올랐었다.
포스코에 근무하는 한 관계자는 "직원들은 현장을 모르는 최정우 회장과 김학동 부회장에 대한 불만이 자자하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포스코 측은 "각종 누수부 및 위험개소 점검 및 수방자재를 준비했으며 집중적인 폭우에 대비해 배수로도 정비했다"며 "물막이 작업, 안전시설물 점검 등을 실시하고 재해 피해시 신속한 지원복구를 위한 정비, 자재, 보건·의료, 소방, 안전 등 기동반 준비상태도 점검했다"고 말했다. 이어 "태풍 매미 당시 하지 않은 가동중단까지 실시했다"며 "만약 가동중에 냉천이 넘처 정전이 되었다면 압연라인 설비들까지 다 폭발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은 이날 포항제철소 복구현장을 찾아 "복구활동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안전이며, 서두르지 말고 규정된 절차를 지키며 복구작업에 임해달라"고 말했다.
이상현기자 ishsy@dt.co.kr
최정우 포스코홀딩스 회장. 포스코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