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전자투표기'때문에 콩고 유혈사태… 대선 연기
[추적]'조작논란' 전자투개표기와 선관위 장악 의혹④
국제사회 한국산 전자개표기~'선거조작 우려가' 현실로~
이상흔 기자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8.12.21 14:11:28
한국산 전자투표기로 오는 12월 23일 대통령 선거를 치를 예정이었던
아프리카 중부 내륙의 콩고민주공화국(DR콩고) 대선이 1주일 연기됐다.
DR콩고 대선을 둘러싼 혼란의 중심에 한국산 전자투표기가 놓여 있다는 점에서,
콩고 대선 연기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관심이 집중된다.
20일(현지시간) 로이터, AFP 통신 등은 “DR콩고 선거위원회(CENI)가
지난 13일 불에 타서 파괴된 8000여 대의 선거 투표장비를 대체하고,
500만 장의 투표용지를 인쇄하기 위해 대선을 30일로 연기한다는 발표를 했다”고 보도했다.
'치안 유지'를 이유로 선거관련 집회도 금지됐다.
앞서 외신은 "13일 새벽 1시경(현지시간)
콩고 수도인 킨샤사의 선거위원회
투표장비 보관창고에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
킨샤사에서 투표에 사용되기 위한 장비 80%와 수천 개의 투표함이 파괴되었다"고 보도했다.
당시 DR콩고 대통령 보좌관인 바나베 키카야 빈 카루비는 불을 지른 이들을 ‘범죄자들’이라고 칭하며
“대선 준비는 계속될 것이며, 다른 지역의 투표 집계기들을 킨샤사로 옮겨 사용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1.전자투표기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
1년 전쯤 DR콩고 선거위원회(CENI)가
한국산 터치스크린 투표시스템(TVS)을 도입하기로 결정한 이래
이 문제는 DR콩고 대선의 가장 민감한 이슈로 떠올랐다.
DR콩고 야권은 오래 전부터 "전자투표기가 부정선거로 이어질 것"이라며 이를 저지하기 위한 반대 시위를 이어왔다.
이들은 "한국산 전자투표기 사용을 둘러싸고 사회적 혼란이 벌어지면
현 카빌라 대통령이 이를 명분으로 대선 연기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해 왔다.
지난 11월에는 전자투표기 불가와 선거인 명부 재작성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 영국, EU(유럽연합), UN(국제연합) 등 국제 사회는
그동안 "DR콩고처럼 IT(정보통신) 인프라가 열악하고,
문맹률이 90%에 이르는 나라에서 전자투표기 도입은 또 다른 분쟁의 불씨가 될 것"이라는 경고를 보내왔다.
니키 헤일리 UN주재 미국대사는
2018년 9월 10일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를 통해 "콩고는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신뢰할 수 있고, 검증되고, 투명하고, 사용하기 편한 종이 투표를 위해 전자투표기 사용 계획을 포기해야 한다"며
"이번 선거는 종이투표로 치러져야 하며 미국은 전자투표기 사용을 지지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이번 대선 연기 발표로 "킨샤사의 선거위원회 투표장비 보관창고 방화 사건이
선거 연기를 노린 현 대통령 측의 자작극일 수 있다"는 음모론까지 번지고 있어
자칫 대규모 유혈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 내전으로 500만명 숨진 독재국가
현재 DR콩고의 대통령은 2001년부터 집권하고 있는 조셉 카빌라(Joseph Kabila)로,
이 나라에서는 오는 12월 23일 그의 후임을 뽑는 대통령 선거가 치러질 예정이다.
당초 대통령 선거는 카빌라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2016년 12월 19일 치러질 예정이었만,
정확한 유권자 수 미집계, 예산부족, 물류와 안보 문제 등으로 연기됐다.
그러자 DR콩고 야권은 “대통령 선거 연기는 현 카빌라 대통령이
3선 연임을 위한 시간벌이용 꼼수”라며 강력하게 반발했고,
이후 선거를 둘러싼 시위와 유혈 충돌이 여러 차례 발생했다.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까지 나선 압박에 카빌라 대통령은 결국 불출마 선언을 하며
올해 12월 23일 대통령 선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1960년 독립한 DR콩고는 그동안 군부독재와 내전에 시달려왔다.
30년간 철권통치를 휘두르던 군부세력을 현재 카빌라 대통령의 아버지인 로랑 카빌라가 쿠데타로 축출하고 권력을 잡았다.
이후 카빌라에 반대하는 세력이 반군을 형성하면서 극심한 내전(1998~2003년)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무려 500만 명이 사망했다.
2001년 로랑 카빌라가 피살되면서
그의 아들 조셉 카빌라가 권력을 승계했고,
두 번의 대선을 거쳐 지금까지 집권하고 있다.
3."독재 연장하려 해킹에 취약한 전자투표기 도입"
DR콩고 야권은 현 카빌라 대통령이 자신의 충성파를 내세워
대선에 승리한 뒤 자신의 재임 시절 저지른 범죄를 면책 받고,
2023년 세 번째 대선을 노릴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 때문에 카빌라 대통령에게 유리한 정국을 만들기 위해
해킹이나 조작에 취약한 전자투개표 방식으로 선거를 치르려한다는 것이 야권의 주장이다.
현 정부의 부정부패와 장기독재, 탄압, 빈곤에 시달려온 DR콩고 국민들은
야권 후보들에게 강력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국제사회는 '부정선거 없이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만 뒷받침되면 충분히 정권교체가 가능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선거일이 가까워지면서 집권 세력 지지자들과 야당 지지자들의 충돌이 빈번해 지고 있다.
투표 보관 창고가 불탄 지난 13일에도 콩고 남부도시에서 야당 지지자들을 향해
경찰이 발포해 10대 청소년이 1명 사망했고,
앞서 11일에는 야권 후보 집회에 참석한 2명이 경찰의 진압과정에서 사망했다.
외신에 따르면 지금까지 선거집회 과정에서 적어도 6명이 숨졌다.
DR콩고 주재 미국 대사관은 급하지 않은 공무원과 가족들은 콩고를 떠나라는
국무부 명령을 지난 14일 날짜로 대사관 홈페이지에 띄워놓았다.
4. 콩고 시민단체, 한국 찾아와 전자투표기 반대
문제는 한국산 전자투표 시스템이 DR콩고 대선을 둘러싼 논란과 혼란의 중심에 서 있다는 점이다.
DR콩고 야권 인사들은 특히 "전자투개표기가 해킹이나, 선거결과 조작 가능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며 종이투표 방식을 요구해왔다.
지난 8월에는 국내 거주하는 DR콩고의 시민단체 ‘프리덤 파이터’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방문해
DR콩고 대통령선거에 한국기업이 공급하는 터치스크린투표시스템(TVS)의 사용 중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DR콩고의 높은 문맹률·인터넷·스마트폰 등의 IT기기 경험 부족, 열악한 전기와 도로 인프라 사정 등으로 선거에서 전자투개표기를 사용하기에 부적합하다고 주장했다.
DR콩고의 한국산 전자투표시스템(TVS) 문제는 국내에서 이른바 ‘A-WEB(세계선거기관협회) 사태’로 번졌다.
‘A-WEB 사태’는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을 지낸 김용희 A-WEB 사무총장이 국내 전자투표기 제조업체인 ‘미루시스템즈’를 밀어주었다는 의혹과 이를 둘러싼 관련 논란을 말한다.
세계선거기관협회(A-WEB)는 개발도상국들의 민주주의 선거제도 정착을 지원하기 위해 2013년 중앙선관위 주도로 설립된 국제 민간 기구다. A-WEB은 2017년 DR콩고의 투개표선진화 사업 일환으로 DR콩고 선관위 유권자명부 시스템 개선사업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A-WEB 김용희 사무총장은 미루시스템즈를 DR콩고 선관위에 소개했다. 선관위는 이후 미루시스템즈가 DR콩고선거위원회와 터치스크린투표기(TVS) 10만 7000대, 총1700억원 상당의 수의계약을 맺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A-WEB의 알선으로 DR콩고에 수출한 국산 전자투개표기를 둘러싸고 외교잡음까지 발생하자 선관위는 2018년 1월 A-WEB의 ODA 사업에 대한 대규모 자체감사를 실시했고, 감사 결과를 토대로 올해 3월 김용희 사무총장에 대해 검찰 수사를 의뢰했다. 지난 10월 16일 중앙선관위 국정감사에서 ‘A-WEB 사태’는 주요 현안으로 다뤄졌다.
5. 콩고 한국대사 "부정부패 우려" 전자투표기 반대 전문
DR콩고에서 한국산 전자투표기 문제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부각된 것은 2017년 11월 말 무렵이다.
당시 주DR콩고 한국대사는 한국에 보낸 대외비 전문(電文)에서
“미국을 포함한 서방국가·UN은 터치스크린투표기(TVS)가
열악한 IT(정보통신) 및 전기 도로 시설 인프라, 전자투개표제도 불비, 높은 문맹률, 불안정한 정세 등
DR콩고 환경에 부적합한 장비로써 선거연기 빌미 제공 또는 거대한 부정부패 프로젝트로 인식하여 이를 반대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주DR콩고 한국대사는 한국산 전자투개표기와 관련해 12월 7일 추가적인 보고를 했다.
이 외교 전문은 지난 10월 15일 중앙일보 전영기 칼럼니스트가 <한국의 콩고 민주주의 위협 사건>이라는 칼럼에서 일부를 인용 보도한 바 있다.
주DR콩고 한국대사의 외교 전문에 따르면 2017년 12월 5일 DR콩고 한국 대사관저에 현지 주재 각국 공관장들이 모였다.
주DR콩고 선관위가 전자투개표기를 도입하기로 한 데 대해 각국 공관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제기하자 DR콩고 한국 대사가 직접 마련한 자리였다.
이날 참석자는
미국, 영국, 벨기에, EU(유럽연합) 대사를 비롯하여
EU 공사참사관, 미국 정무참사관, 독일 정무참사관, 캐나다 정무참사관,
프랑스 거버넌스 협력담당관, OIF(불어권 국제기구) 선거전문관 등이었다.
한국에서는 A-WEB의 김용희 사무총장이 참석했다.
6.“한국산 전자투개표기, 콩고 대선에 심대한 차질" 우려
주DR콩고 한국대사는 외교 전문에서 “이 간담회는 DR콩고 선거위원회(CENI)의 전자투개표기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A-WEB 사무총장의 당지 방문(12월 2일~6일) 계기를 활용하여 전자투개표기 관련 기술적 사항들을 설명하고 국제사회의 우려를 직접 청취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목적으로 주선하였으며, 외교단이 질문하고 사무총장이 답변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고 보고했다.
한국 대사관저에 모인 이들 각국 외교관들은 김용희 사무총장으로부터
터치스크린투표기(TVS)의 기술적인 설명을 들은 후 하나같이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먼저 미국 참사관이 전자투개표기가 자칫 대선 연기의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차기 대선은 DR콩고가 1960년 독립 이래 최초로 평화적 정권 이양의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가 될 것이다.
당초 지난해 실시되어야 했던 대선이 최소한 내년 12월로 연기된 점에서 볼 수 있듯이 예정대로 대선을 실시할 수 있을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자투개표기 장비 도입은 대선 일정 전체를 좌초시킬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미국 참사관은 계속해서 “과거에 유사한 장비를 통해 선거를 실시해본 경험이 없는 국가에서 약 10만 대에 달하는 장비를 사전 시험 운용 없이 당일에 완벽하게 구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전자투개표기 도입은 대선 실시에 심대한 차질을 초래함으로써 정국이 더욱 불안정해지는 데 일조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7. "한국 정부가 지원하는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EU 공사참사관은 당시 “대선이 불과 1년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시험 운영없이 전자투표기에 대해 전적으로 무지한 대중을 대상으로
새로운 기술을 무리하게 도입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해 보인다”는 의견을 밝혔다.
OIF(불어권 국제기구) 선거전문관은
“장비 공급 업체 선정 과정상의 투명성 확보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극도로 열악한 주재국 내 인적 물적 인프라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전자투개표기를 통한 대선 실시는 불가능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DR콩고가 처한 현실 하에서 전자투개표기를 도입하는 것은
마치 명품 스포츠카 페라리를
비포장 진흙 길에서 운전하는 것과 같다”도 비유했다.
그는 “DR콩고 선거위원회 측이 전자투개표기 장비를 A-WEB이나 장비 생산업체가 아닌
‘한국’으로부터 도입할 예정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은
야권 및 국제 사회의 반대를 무마하고자 한국 정부의 공신력을 차용하기 위해
마치 이 선거장비 도입 건이 한국 정부의 승인 및 지원 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벨기에 대사는 “현재 DR콩고 정부는 자유로운 정치 활동을 억압하고 있으며
집회 결사의 자유가 전혀 보장되지 않고 있는바
더더욱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을 만한 선거를 실시하는 것이 중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한 후
“이런 상황에서 전자투개표기를 도입하여 대선을 실시할 경우
이는 필요시 집권층의 선거 결과 조작이 용이하도록 돕는
‘치팅 머신’(cheating machine: 속임수 기계)로 전락할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각국 외교관들의 우려에 대해 김용희 사무총장은
“(한국산 전자투개표기 도입 등) 이같은 결정은 콩고 선거위원회 측이 내린 것이기 때문에
A-WEB 차원에서 이에 대해 공개적으로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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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흔 기자
- hanal@new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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