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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노라노. 늦은밤 kbs1 tv독립영화에서 우연히 만나다.

언제나오복의향기 2014. 6. 29. 12:34

 

디자이너 노라노여사의 다큐멘터리. 늦은밤 kbs1 tv독립영화에서 우연히 만나다.

Nora Nor -옷은 멋있고 자신을 당당하게 해야한다.

노라여사님이 늘 하시는 말씀~

                  옷은 옷다와야한다.

                  옷은 예술이 아니다.

                  옷이 사람보다 먼저 걸어 나오면 안된다.

노라노 여사는 여성의 행동이 자유스러워지게 하고,
                   당당한 자신감을 갖을 수  있는 옷을 늘 생각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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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노 (노명자) 패션 디자이너
출생--1928년 3월 21일 (만 86세), 서울 | 용띠, 양자리--2014.6.29 기준
학력--경기여자고등학교
.
노라노 사주     6 癸 庚 乙 戊  坤命
                   6 巳 申 卯 辰  5대운
 
17세에 결혼. 시집식구들의 적대감과 일방적인 이혼통보를 받았었다.
순간적인 결단을 했다. 자신의 길을 개척하기로 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다.

성격이 조용하며, 예의바르며. 결코 도리에 어긋남이 없다. 

인성으로 인한 어진 마음을 갖게 되고. 귀인들의 도움도 많다.

그녀의 음성은 아주 조용하면서도 힘이 있었다.

 

재성 재물의 기둥뿌리가 아주 든든하다.

강철같은 의지력으로 무슨 일이던 잘헤쳐 나갈 수 있다.

강한의지력을 발휘할수있는 재능 상관이 있어 천재적 재능을 마음것 발휘 했다

재능과 관성이 부딪치므로 남편의 별은 제역할을 하지못했으나 그녀의 명성으로 드러났다.

관성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사주는 전반적으로 완벽하다고 본다. 그러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식상이 약해서

강한 의지력으로, 근면하게 노력하고 노력한 결과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했다고 노라노 여사는 말했다.

그녀의 말...

처음에는 그림 그리고, 생각만한면 될줄 알았는데,

그후 60년동안 바느질하고, 가위질 하느라 굳은 살이 배겼다했다.

 

 

 

생애
[편집]

방송인 노창성의 차녀다. 경기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47년 미국으로 건너가 '프랭크 왜곤 테크니컬 컬리지'를 졸업하였다.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서울 명동에 '노라 노의 집'을 열었다.

이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아카데미 줄리앙 아트 스쿨'에서 수학하였다.

1956년 서울 반도호텔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패션쇼를 열었다. 이 '최초의 패션쇼'는 '100% 대한민국 기술 사용'과 '처음으로 대한민국 내에서 생산된 모직 원단 사용' 등으로도 의미가 컸다.

1959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롱비치의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서 의상상 (Best Dress Award) 수상,

 1965년 하와이에서 최초로 해외 패션쇼를 개최하며 브랜드 수출을 시작했다.

 1966년 대한민국 최초의 '기성복 패션쇼'를 열었고,

 1970년부터 1973년까지 프랑스 파리 '프레타포르테 패션쇼'에 참가했으며,

 1974년 미국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패션쇼를 열었다.

 1977년 예림양행을 설립했고, 1978년 뉴욕 법인을 설립했으며,

1990년 홍콩, 일본 등에도 법인을 설립했다.[1] [2] [3] [4]

1967년에 화제가 된 윤복희의 미니스커트는 노라 노가 디자인했다고 한다.[5]

경력[편집]

 
 http://movie.daum.net/moviedetailPhotoView.do?movieId=79294&photoId=874252#movieId=79294&photoId=911210&page=5
 
 
 
 
 

노라노(1928년 3월 21일 ~ )는 대한민국의 패션디자이너이다. 본명은 노명자이며 대한민국 최초의 패션디자이너이고 NORA NOH의 대표 디자이너를 역임하였다.김문. . 서울신문. 2012년 5월 17일. 생애 방송인 노창성의 차녀다. 경기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47년 미국으로 건너가 '프랭크 왜곤 테크니컬 컬리지'를 졸업하였다.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서울 명동에 '노라 노의 집'을 열었다.

     이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아카데미 줄리앙 아트 스쿨'에서 수학하였다. 1956년 서울 반도호텔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패션쇼를 열었다. 이 '최초의 패션쇼'는 '100% 대한민국 기술 사용'과 '처음으로 대한민국 내에서 생산된 모직 원단 사용' 등으로도 의미가 컸다. 1959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롱비치의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서 의상상 (Best Dress Award) 수상, 1965년 하와이에서 최초로 해외 패션쇼를 개최하며 브랜드 수출을 시작했다. 1966년 대한민국 최초의 '기성복 패션쇼'를 열었고, 1970년부터 1973년까지 프랑스 파리 '프레타포르테 패션쇼'에 참가했으며, 1974년 미국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패션쇼를 열었다.

    1977년 예림양행을 설립했고, 1978년 뉴욕 법인을 설립했으며, 1990년 홍콩, 일본 등에도 법인을 설립했다.1967년에 화제가 된 윤복희의 미니스커트는 노라 노가 디자인했다고 한다. 경력 1950년 : 노라노의 집 설립 1977년 ~ : 예림양행 설립 상훈 2000년 세계패션그룹 '패션 대상' 수상 한국패션협회가 주최하고 지식경제부가 후원한 '제3회 코리아패션 대상'에서 대통령표창 민복기 EXR코리아 대표이사와 공동 수상 '제1회 한국패션 100년 어워즈'에서 디자이너 부문 수상 저서 《노라 노 열정을 디자인하다》. 황금나침반. 2007년. ISBN 9788992483230 주석 분류:1928년 태어남 분류:대한민국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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