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생각하는 여유/new 자유의 등불

한국형 우주로켓 개발과 한국형 전투기 개발을 처음 결정한 사람은 김대중 대통령이다.

언제나오복의향기 2021. 3. 19. 06:00

양상훈 칼럼] 김·노·이·박 대통령에게 감사한다

한국 우주로켓·한국형 전투기 동시에 난관 넘어
막대한 돈, 시간 드는 국가 과업 이제 가시권
결단하고 출발시킨 대통령들이 있었다

양상훈 주필 입력 2021.03.18 03:20

www.chosun.com/opinion/column/2021/03/18/AV4ESHQAQNFJHARUYWUQQT2GYY/

 

최근 중대한 국가적 성과 두 개가 거의 동시에 나왔다.

2월 25일 한국형 우주발사체(누리호)의 1단 로켓이 100초 연소 시험을 통과했다.

75톤 추력 엔진 4개를 묶은 300톤 1단 엔진은 한국 독자 우주로켓 개발의 핵심 관건이었다.

그 하루 전인 2월 24일 한국형 전투기(KFX) 시제기가 공개됐다.

이 두 사건은 항공우주산업만이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하나의 이정표가 될 수 있는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지난 3월 25일 오후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2)'의 1단 추진기관 2차 연소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누리호는 1.5톤급 실용위성을 600~800㎞ 상공의 지구 저궤도에 진입시킬 수 있는 발사체로, 오는 10월 발사할 계획으로 개발이 진행 중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한국형 발사체와 전투기엔 개인적인 기억도 있다.

2004년 12월 ‘외나로도를 봅니다’라는 글을 썼다.

외나로도 우주발사장 완공 직전이었다. 그로부터 실로 16년 이상이 지나

마침내 그곳 외나로도 우주센터가 한국형 로켓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세계에 우주로켓을 가진 나라는 미국 러시아 유럽 중국 일본 인도 등뿐이다.

16년 전 글을 찾아 다시 보니 ‘강대국이나 발사하는 로켓을 우리도 갖게 되면 혼자서라도 한잔할 생각’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1단 로켓 100초 연소 성공 발표를 보면서 잠시나마 그런 감회에 젖었다.

 

2004년 그 글을 쓴 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조그만 감사패를 들고 찾아왔다.

그분들과 서울 골목길 식당에서 소주를 마시며 국가 리더십의 문제를 토로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2003년 중국이 첫 유인 우주선 발사에 성공했을 때

마침 중국에 있던 우리 장관 한 분이 중국 원로들을 만나고 있었다. 그 장소로 ‘발사 성공’의 급보가 날아들자 중국 원로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울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국에 이런 리더십이 있느냐는 개탄이 오고 갔다.

 

하지만 돌이켜볼 때 우리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그때라도 결정하지 않았으면 오늘날 만시지탄의 성과라도 있을 수 없었다.

한국형 우주로켓 개발을 처음 결정한 사람은 김대중 대통령이다.

1998년 북한이 대포동 로켓 발사에 사실상 성공하자

북한보다 잘사는 우리는 뭐냐는 여론이 비등했을 때였다.

된다, 안 된다 논란이 이어지다 러시아와 합작하기로 방향이 세워졌다.

노무현 대통령 때 완공된 우주센터는 이를 위한 것이었다.

러시아 기술 도입이 어렵게 되자 2011년 이명박 대통령 때 독자 로켓 개발의 최종 결론이 났다.

박근혜 대통령은 러시아 합작 나로호 발사가 연속 실패하고 여론도 나빠졌지만 중단하지 않았다.

수조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일이다. 된다는 보장도 없었다.

이들 대통령 중 누구 한 사람이라도 ‘그만두라’고 했으면 그대로 끝날 일이었다.

 

한국형 전투기 개발을 처음 선언한 사람도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선언 후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우여곡절의 역사였다.

한국형 발사체보다 더 난관이 많은 전투기 개발은 ‘못 한다’는 주장이 더 컸다.

경제성 평가는 늘 ‘부정적’으로 나왔다. 항공 산업과 국방 기술 자립을 위해 어려워도 가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면서 10년 넘는 세월이 허송됐다.

그러다 이명박 대통령 때인 2009년 ‘개발하자’고 최종 결론이 났지만 정권이 바뀌고 2013년 다시 경제성 문제가 불거졌다. 국회에서도 부정적 견해가 속출했다

. 그러나 결국 그해 말 체계 개발 사업자가 선정되면서 기나긴 진통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 세월 동안 어느 대통령이라도 ‘그만두자’고 했으면 KFX는 없었을 것이다.

지난 2월 24일 경남 사천시 항공우주산업(KAI)에서 열린 현장 기자설명회에서 공개된 한국형 전투기(KF-X) 시제 1호기의 모습./국방일보

 

국회에서 된다, 안 된다 논란이 거세던 때 정치인 한 사람과 심한 논쟁을 벌였던 기억이 난다.

당시 조선일보는 ‘KFX를 해야 한다’는 사설을 썼다. 필자도 논설실 회의에서 그렇게 주장했다.

그러나 그 정치인은 ‘일본처럼 기술실증기(기술 확보를 위한 시험 기체)만 개발하고 양산은 하지 말자.

양산비 십몇조원으로 F-35A 스텔스 전투기를 더 사는 것이 안보에 백 배 이익이다’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설득력 있는 논리였다.

F-35A는 너무나 막강한 전략무기다(이 전투기 도입도 박 대통령과 김관진 안보실장이 결정했다).

더구나 지금은 F-35A 가격이 내려가 KFX와 큰 차이도 없게 됐다.

성능은 엄청난 차이가 나는데 값은 큰 차이가 없다면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한국형 발사체,

한국형 전투기 모두 상식 차원을 넘는 결단의 영역에 있다.

우리는 로켓이나 전투기나 거의 50~60년이 뒤처졌다.

지금이라도 막대한 돈을 들여 해보자는 것은 관료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국에선 결국 대통령이 결단해야 한다.

이 문제에 관심이 크든 작든 역대 대통령들 모두가 일관되게 ‘가보자’ ‘해보자’는 쪽을 택했다.

 

갈 길은 험난하다.

로켓은 8부 능선쯤 왔고,

KFX는 이제 5부 능선이다.

 

로켓은 10월 발사고

KFX는 진짜 고비인 시험비행이 내년부터 실시된다.

 

로켓 발사에 성공해도 일본 H2B 로켓에 비하면 운반체 중량이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4.5세대인 KFX가 전력화될 2020년대 후반엔 선진국들은 차원이 다른 6세대기 전력화에 들어갈 것이다.

러나 우리 반도체, 전자, 자동차, 조선

모두 불가능해 보이던 산봉우리에 오른 것이다.

 

산에 오르려면 체력, 장비, 지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출발’을 해야 한다.

우리는 그 ‘출발'을 했다.

10월 로켓 발사에 성공하면 진짜 혼자서라도 한잔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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