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獨공습 '공포'를 지운 처칠의 한마디 "포기 안하면 승산있다"
한국경제 입력2022.07.22 18:02
블루스퀘어-세상을 외치다
필립 콜린스 지음 / 강미경 옮김
영림카디널 / 400쪽|2만2000원
토니 블레어 英총리 연설문 쓴 저자
2차대전 위기상황 때 처칠의 BBC연설
솔직·단호한 호소에 국민 88% 지지 보내
고대부터 현대까지 명연설 담은 '정치책'
민주주의, 힘 아닌 말로 설득해야 작동
필립 콜린스 지음 / 강미경 옮김
영림카디널 / 400쪽|2만2000원
토니 블레어 英총리 연설문 쓴 저자
2차대전 위기상황 때 처칠의 BBC연설
솔직·단호한 호소에 국민 88% 지지 보내
고대부터 현대까지 명연설 담은 '정치책'
민주주의, 힘 아닌 말로 설득해야 작동

1940년 6월 18일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사진)가 의회에 나와 이렇게 연설했을 때 영국은 오히려 ‘가장 어두운 시절(darkest hour)’에 가까웠다. 프랑스가 무너진 지 나흘, 덩케르크에서 철수한 지 2주가 지났을 때였다. 독일군의 영국 본토 공격은 시간문제였다. 책임 추궁에 내부 갈등과 의견 대립은 더 커졌다.
절망이 가득한 영국 국민에게 처칠은 연설을 통해 낙관을 불어넣었다. 독일군을 쉽게 물리칠 수 있다며 상황을 왜곡하거나 과장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했다. 어려운 상대지만 포기하지 않고 싸운다면 승산이 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는 공중에서든 지상에서든 그 친구들을 열렬히 맞이해줄 것”이라며 농담도 곁들였다. BBC방송을 통해 영국인의 60%가 이 연설을 들었다. 88%가 지지를 보냈다.

연설이 ‘말만 번지르르하다’는 비난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플라톤은 《고르기아스》에서 연설을 ‘말로 잔재주를 부리는 짓거리’라고 지적했다. 이제 ‘연설이 필요 없는 시대’가 됐다는 말도 나온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짤막한 메시지로도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주의와 연설은 불가분의 관계다. 저자는 “연설과 민주주의는 쌍둥이로 태어났다”고 표현한다. 민주주의는 힘이나 권위에 의한 강요가 아닌, 말을 통한 설득으로 작동하는 까닭이다.
로마 시대 정치가이자 작가인 키케로는 아예 연설과 정치를 같은 것으로 봤다. 둘 다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논점을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하고, 이러한 주장을 명확하게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 표현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실제로 좋은 평가를 받은 정치인 중엔 명연설가가 많았다.
1863년 11월 19일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연설도 그랬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이 지구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다짐합니다”라는 말로 끝났다. 2분짜리 연설이었지만 여운은 길었다. 남북전쟁 후 새로운 미국을 여는 초석이 됐다. 영국 엘리자베스 1세는 1588년 영국 앞바다에 진을 치고 있던 스페인 함대와의 격전을 앞두고 “나는 하나님을 위해, 내 왕국을 위해, 그리고 내 백성을 위해 이 내 한 몸의 명예와 피를 흘릴 각오가 되어 있소”라며 여성 지도자라는 의구심을 한 번에 지워버렸다.
연설은 이렇게 고난의 상황에서, 위기의 상황에서 빛을 발한다. 분열된 국민을 하나로 모으고, 다 같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게 리더의 일이다. 하지만 현재의 정치가들은 오히려 분열을 조장한다. 공포심을 자극한다. 정반대로 숨어버리기도 한다.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한 주제를 직접 다루는 것을 꺼리고, 측근을 통해 ‘전언 정치’를 한다. 좋은 연설이 사라진 빈 공간을 채운 것은 단순히 나쁜 연설이 아니라 나쁜 민주주의였다.
2016년 당시 미국 영부인 미셸 오바마가 한 연설에서 따왔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