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美 최고 부국 망가뜨린 '좌파 포퓰리즘'
[베네수엘라의 교훈⓶]국민들, 생존 위해 주변국 떠돌아...
'최저임금-세금 만능' 한국은 자유로운가
전경웅 기자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8.09.01 09:57:36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8/08/29/2018082900209.html
20년 전 북한이 겪었던 ‘고난의 행군’을 지금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 1998년 이전까지는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1997년 당시 3,714달러였던 베네수엘라의 1인당 GDP는 2017년 말에는 3,170달러로 오히려 줄었다. 이는 전 세계 평균 1만 1,730달러의 25%에 불과하다. 외환위기도 겪었고, 지금도 먹고 살기 힘들어 죽겠다는 소리가 나오는 한국이 1997년 1만 2,131달러에서 2018년 3만 2,770달러로 뛰어오른 것과도 비교가 된다. 1918년부터 막대한 양의 석유를 수출했고 석유수출국기구(OPEC) 창립 멤버였던 나라가 왜 이리 됐을까.
베네수엘라 몰락의 시작 ‘우고 차베스’ 선택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가 2017년 12월 한국 하이예크 소사이어티에 내놓은 리포트에 따르면, 베네수엘라는 1950년 당시 1인당 GDP가 지금보다 훨씬 높은 7,424달러에 달했다고 한다. 이는 당시 세계 4위로 일본의 4배, 칠레의 2배에 달했다. 베네수엘라는 1970년에도 남미 최고의 부자나라 자리를 지켰다고 한다. 당시에도 스페인, 이스라엘, 그리스보다 높은 국민 소득을 자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난민까지 발생하는 실패 국가다. 시작은 국민들의 ‘포퓰리즘’ 선택이었다.
1954년 7월 바나레스州에서 태어난 우고 차베스는 어릴 적부터 야구 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결국에는 육군 장교가 됐다. 장교 시절부터 동료들을 선동하는 능력이 뛰어났던 차베스는 전역 후 좌익 지식인들과 어울리면서 군사학교에서 정치 강사로 활동했다. 차베스는 정치 강사로 활동하기 전 좌익 지식인들과 어울릴 때부터 남아메리카의 독립 운동을 이끈 ‘시몬 볼리바르’에 큰 관심을 가진다. 그의 관심은 이후 빈민층과 군인들에게 기댄 포퓰리즘 정치로 발전한다.
그의 언변과 지도력은 윗사람들의 눈에 띠었고 1988년에는 대통령궁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이 된다. 1992년에는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정부를 전복하려 쿠데타를 시도했다 실패한다. 2년 동안 복역한 차베스는 1994년 ‘볼리바르 혁명 200’이라는 조직을 토대로 ‘제5공화국 운동’이라는 좌익 포퓰리즘 성향 정당을 만든다. 여기에는 기존의 좌익 정당들도 포함됐다. 그는 1998년 자신의 부친을 바리나스 주지사에 당선시켰고 같은 해 대선에서 56.2%를 득표해 대통령 자리에 오른다. 이후부터 베네수엘라의 몰락이 시작됐다.
시작은 베네수엘라의 젖줄이던 국영석유업체 ‘베네수엘라 석유(Petroleos de Venezuela, PDVSA)’의 완전한 정권 종속화였다. 차베스는 대통령에 취임한 뒤 PDVSA를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PDVSA 임직원들은 경영에 문제가 생긴다며 강력히 반대했다. 차베스는 이후 PVDSA 전체 직원의 절반인 1만 2,000여 명을 내쫓고 그 자리에 자신을 지지하는 군 출신 인사들로 채웠다. 쫓겨난 많은 사람들이 석유 산업 전문가들이었다. 숙련된 기술자, 경영 전문가들이 쫓겨나고 그 자리를 석유산업 문외한들이 채우자 PDVSA의 경영 상태는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차베스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자신과 측근 3명이 마음대로 운영하는 ‘석유 펀드’를 만들어 PDVSA가 벌어들인 수익의 20~30%를 뜯어갔다. 차베스와 그 측근은 “고통 받는 빈민을 위해서 사용한다”고만 말할 뿐 사용처나 수익 등을 절대 공개하지 않았다. 차베스는 자신의 무능과 탐욕을 숨기기 위해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기 시작했다.
차베스의 첫 먹이, 베네수엘라의 삼성전자 PDVSA
차베스가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펼친 포퓰리즘은 황당한 것이 많다. PDVSA는 첫 희생양이었다. PDVSA는 베네수엘라 정부가 1976년 1월 공기업으로 만든, 남미 최대의 석유기업이다. 사우디아라비아보다 더 많은 석유가 매장된 것으로 알려진 베네수엘라의 유일한 석유기업이다. 2013년에는 1,343억 3,000만 달러라는 최대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다. 차베스가 집권한 뒤 PDVSA는 베네수엘라 총 수출의 90%, 정부 재정 수입의 60%를 담당하게 됐다.
집권 후 PDVSA에서 석유산업 전문가와 숙련공들을 내쫓고 자신을 지지하는 전직 군인들로 채운 차베스는 비전문가, 비숙련 근로자들 때문에 회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경고가 나와도 “공공 부문 일자리를 늘려 실업을 줄인다”면서 사람들을 대거 고용했다.
외교부는 2009년 8월 보고서를 통해 “차베스 대통령이 PDVSA가 벌어들인 석유 수입을 기업 경영보다는 집권 기반 강화를 위한 서민 지원 및 인근 국가 지원 등 정치논리로 사용한 결과 효율성 저하와 생산량 감소로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최근 저유가 때문에 정부 재원 공급이 축소돼 결국 차베스 정부의 지지 기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외교부는 보고서에서 차베스가 정권을 잡은 10년 사이에 PDVSA의 석유 생산량이 26% 감소했고, 대외 채무가 1년 만에 2배가 됐으며, 정부의 사회복지 정책 및 사회개발기금에 수익금 147억 달러를 사용하는 등 매출 가운데 399억 달러를 정부에 줘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석유 생산량, 수익성, 유동성은 나빠짐에도 임직원 수는 7년 사이에 3만 명에서 8만 명으로 증가했고, 이로 인해 임금인상분을 직원들에게 줄 수가 없어 단체교섭조차 못하고 있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차베스 정권은 국내 석유가격을 생산원가 25달러에 한참 못 미치는 배럴 당 7달러로 11년째 묶어놔 매년 이로 인한 손실을 보전하는데 120억 달러가 들어가며, PDVSA에게 각종 복지사업을 벌이라고 강요, 2001년부터 2007년까지 14개 복지사업에 138억 달러를 쓰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차베스 정권과 결탁한 부정부패는 기본이요 PDVSA의 경영 투명성마저 부족하게 만들어 美증권거래위원회를 포함해 해외 금융시장에 진출하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포퓰리즘 앞세운 차베스의 ‘국가자살정책’
차베스는 집권 이후 석유를 대외적 무기로 사용하기 위해 수출을 줄이는 한편 대기업과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 기업들의 자산을 국유화하려 했다. 하지만 야당과 기업들이 강력히 반발하자 1999년 7월 ‘제헌의회’를 만들겠다고 나선다. 포퓰리즘에 빠진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차베스를 강력히 지지했고, 그 덕분에 차베스는 자신의 지지 정당들을 규합해 ‘애국창살’이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이곳은 국민투표에 따라 제헌의회 의석의 95%를 차지했다.
차베스가 주도한 제헌의회는 판사를 제명하는 권한까지 얻었다. 제헌의회는 190여 명의 판사를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한 뒤 제명했다. 사법부까지 장악한 것이다. 이후 제헌의회는 대통령의 3연임이 가능토록 하고, 임기 또한 5년에서 6년으로 늘렸다.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할 권한도 갖게 했다. 심지어 나라 이름도 베네수엘라에서 ‘베네수엘라 볼리바리인 공화국’으로 바꿨다. 모두 차베스가 원하는 대로였다.
이후 차베스는 2선, 3선에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국민소환, 쿠데타 시도 등도 있었지만 포퓰리즘을 통한지지 기반은 굳건했다. 그는 2013년 3월 5일 암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석유에 이어, 전력, 금융 등 산업 전반을 국유화하려 시도했다. 이때 차베스가 펼친 정책 가운데 황당한 것은 한둘이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외환 금지 조치와 ‘공정가격을 위한 가격 상한제’ 실시였다.
차베스는 2003년 외환 보유고를 지켜야 한다며 국민들의 환전을 금지했다. 그리고 자국 화폐와 외화 간의 환율을 정부 고시제로 바꿨다. 그 결과 베네수엘라 볼리바르화는 고시 가격과 실제 자격이 점점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여기다 서민 물가를 안정시키겠다며 만든 정부조직 ‘가격통제감독국(SUNDEE)’이 생필품의 가격 상한제를 실시하면서 문제가 더 커졌다.
2011년 11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베네수엘라 가격통제감독국은 물, 주스, 왁스, 표백제, 세제, 비누, 부엌 세제, 섬유 유연제, 살충제, 샴푸, 린스, 데오도란트, 화장지, 면도기, 수건, 치약, 구강세척제 등 20개의 생필품과 식용유, 설탕, 커피, 소고기, 닭, 우유, 치즈, 빵, 파스타, 시리얼(쌀, 옥수수, 밀가루 등 포함), 해산물(통조림 포함) 등에 대해 ‘소비자 가격 상한선’을 적용한다고 밝혔다. 차베스 정권의 황당한 정책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기업들에게 제품 가격의 30% 이상 수익을 금지한 것이다. 그 결과 수익성이 좋은 제품을 만들던 기업들은 모두 사라졌다. 생필품이나 식료품 업체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생필품과 제조업 원료를 대부분 수입했던 베네수엘라 국민과 기업들은 물자 부족을 겪기 시작했다. 제조업체들이 문을 닫은 영향으로 상점에서 제품이 사라지자 밀수업자들이 기승을 부렸다. 밀수입한 물품을 두고 경쟁이 생기면서 인플레이션이 극심해졌다. 차베스가 죽고 대통령 자리를 물려받은 니콜라스 마두로 또한 포퓰리즘 정책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고통은 ‘선’을 넘었다.
‘마두로 다이어트’ 빼닮은 ‘이니 다이어트’ 생길까
2016년 말부터는 ‘마두로 다이어트’라는 유행어까지 나왔다. 마두로가 포퓰리즘 정책을 포기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굶게 됐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2018년 2월 베네수엘라 소재 대학들이 공동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2017년 한 해 동안 베네수엘라 국민의 평균 체중이 11kg이나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차베스와 마두로의 포퓰리즘을 지지하는 세력들이 적지 않은 데다 이들에게는 의식주가 보장이 돼 있어 일반 국민들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베네수엘라는 2018년 들어서는 남미 전역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나라로 찍혔다.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중산층까지도 쓰레기통에서 식량을 찾는 상황이 되면서 주변국으로 떠나는 난민이 급증한 것이다.
유엔난민기구(UNCHR)는 2017년 주변국으로 가 망명을 신청한 베네수엘라 난민이 5만 2,000여 명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남미 주변국으로 유입된 베네수엘라 난민 수가 60만 명을 넘고, 난민 전체 수는 110만 명이 넘을 것이라는 게 유엔의 추산이다. 지난 8월 24일(현지시간) 유엔이주민기구(IOM) 발표에 따르면, 2014년 이후 생존을 위해 베네수엘라를 떠난 난민 수가 24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베네수엘라 전체 인구 3,100만 명의 7.7%가 일자리와 먹을 것을 찾아 고국을 등진 것이다. 포퓰리즘 정권 선택 20년 만에 '남미판 고난의 행군'을 겪게 된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현 정부의 세수 확대 및 포퓰리즘 정책을 두고 곳곳에서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그나마 세계 최대의 석유 매장량을 가진 자원부국이다. 반면 한국은 수출과 수입, 그 사이에서 기술과 제품을 개발·생산하지 않으면 굶어 죽는 나라다. 자원도 없는 나라에서 지금 벌어들이는 돈이 ‘석유를 판 돈’처럼 저절로 생기는 돈이라고 착각하고 포퓰리즘에 빠진다면 지금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겪는 것보다 더욱 끔찍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는 경고가 계속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