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환상소설, 혁신·융합 통해 도약할 때
게임과 함께 발전할 방안도 논의할 시점
복거일 < 사회평론가·소설가 >
얼마 전에 작고한 작가 진융(金庸)에 대한 추모가 대단하다.
진융은 필명이고 본명은 자량융(査良鏞)이다.
언론인으로 활약한 그가 무협소설을 쓸 때 본명의 마지막 자 ‘鏞’을 파자해서 ‘金庸’이라 썼다 한다.
그가 추앙받는 데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하나는 물론 무협소설의 품격을 높였다는 평을 듣는 그의 문학적 성취다.
다른 하나는 전체주의 사회인 중국에선 진정한 작가들이 나오기 어렵다는 사정이다.
그렇다고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중국인 저항 작가들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무협소설만 쓴 작가가 높은 인기에 더해 예외적으로 높은 평가까지 누린다.
무협소설은 환상소설(fantasy)의 한 갈래다.
서양 환상소설로 치면, 흔히 ‘검과 요술(sword and sorcery)’이라 불리는 ‘영웅 환상소설’에 속한다. 무협소설은 중국 문학의 중요한 전통으로 14세기의 《수호전》에서 완성된 모습을 갖췄다. 진융은 그 전통을 이어받아 현대적 대중 문학으로 발전시켰다.
19세기에 거세게 밀려온 서양 전통들은 동양 전통들을 밀어내고 동양 문화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개항 뒤 동양 작가들은 대부분 서양 문학에서 자양을 얻고 기예를 배웠다. 무협소설은 한문 문명권에서 이런 추세에 성공적으로 저항한 단 하나의 문학 장르다. 무협소설은 다양성이 부족한 장르이긴 하지만, 그것을 평가할 때는 이 점이 고려돼야 한다.
그러면 환상소설은 어떤 장르인가? 소설은 둘로 나뉜다.
하나는 우리가 아는 실재를 충실하게 그린 현실소설이다. 이른바 주류소설이다.
다른 하나는 당장엔 비현실적 이야기를 들려주는 환상소설이다.
당장엔 비현실적인 이야기이므로, 환상소설은 우리가 아는 실재에 무엇을 더한다. 그렇게 더해진 것이 초자연적이면, 예컨대 귀신이나 장풍이면 협의의 환상소설이 된다. 더해진 것이 자연적이면, 예컨대 엄청나게 크고 빠른 우주선이라면 과학소설(science fiction)이 된다. 즉 협의의 환상소설은 비현실적이고 초자연적이며, 과학소설은 비현실적이고 자연적이다.
이처럼 환상소설과 과학소설은 성격이 비슷하다.
자연히, 둘 사이의 경계는 흐릿하고 겹치는 부분이 크다. 예컨대 빛보다 빠른 우주선은 물리학의 정설에 어긋난다. 따라서 그런 기술을 등장시킨 소설은 환상소설에 속해야 하지만, 관행적으로 과학소설에 속한다.
어느 사회나 환상소설의 전통이 있다. 신화들과 설화들은 원초적 환상소설의 성격을 지닌다. 우리 사회에서도 탄생 설화들이 환상소설의 원류다. 아울러 중국 환상소설의 전통이 좋은 자양을 제공했다. 그런 풍토에서 조선조의 《홍길동전》과 《구운몽》 같은 뛰어난 작품들이 나왔다.
현대 한국에서 환상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킨 것은 중국에서 들어온 무협소설이다. 1960년대 초엽 김광주가 대만 작가 작품을 번안한 《정협지》가 인기를 얻으면서, 대만과 홍콩의 무협소설들이 도입됐다. 그리고 1980년대 이후엔 한국 작가들이 수준 높은 무협소설들을 내놓았다.
이제 한국 무협소설이 한 단계 도약할 때가 됐다. 가장 시급한 혁신은 아마도 중국 무협소설의 역사적 편향을 씻어내는 일일 것이다.
중국 무협소설은 이족 왕조들에 대한 저항의 성격을 짙게 띠었다. 초강대국을 지향하는 중국이 당장은 우세한 미국과 패권을 놓고 겨루는 상황이므로, 그런 성격은 앞으로도 이어질 듯하다. 한국 무협소설은 그 점을 인식하고 세계적 환상소설로 도약할 길을 모색해야 한다. 다른 편으로는, 서양 환상소설에서 자양을 얻은 작가들이 수준 높은 작품들을 생산한다. 각기 동양과 서양에 뿌리를 둔 이 두 갈래 움직임이 융합된다면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환상소설들이 나올 수 있다.
환상소설의 발전은 오락산업의 발전과 관련이 깊다.
이미 반세기 전부터 소설은 영화 대본으로 기능했다. 영화에 유난히 친화적인 장르는 과학소설이다.
환상소설은 영화와는 그리 잘 맞지 않는다. 대신 게임과는 아주 잘 어울린다.
게임이 순수한 환상의 세계라는 점이 작용하는 듯하다.
게임의 풍토와 기법을 차용해서 성공한 환상소설들도 많다.
오락산업의 다른 분야보다 빠르게 발전하는 게임은 환상소설에 좋은 자양을 제공한다. 그리고 좋은 환상소설은 게임이 발전할 공간을 제공한다. 이제 게임과 환상소설이 함께 발전할 길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나올 때가 됐다.
국기에 대한 맹세-1974년
: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자유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