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 <노장 사상과 무문관 해설 중>
서문
인생의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없어지는 것이다. 모든 문제는 내 앞길을 가로막는 큰 돌이었다.그 돌을 치우기 위해 개미들이 얼마나 땀을 흘리며 그 돌을 오르내리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벌레가 나비로 성숙하면 길가의 돌멩이는 문제가 안된다.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없어지기 때문이다.
성숙한 사람에게는 돈도 사랑도 사업도 학문도 명예도 인기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가 될 때에는 해결은 없어지고 문제가 안될 때 문제는 없어지고 만다.
인간의 신비는 성숙에 있다. 성숙하여 어른이 되면 어릴 때의 문제가 그림과 같다. 문제를 푸느라고 애쓰는 동안에 인간은 성숙하여 문제는 없어져 버린다. 성숙해지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진리의 밥을 먹고 생명의 잠을 자고 길의 운동을 가져야 한다. 모든 문제가 진리의 밥이요, 모든 생명의 잠이요, 모든 고난이 길의 운동이다.
인간은 문제의 밥과 사귐의 잠과 고난의 운동을 통해서 보다 성숙해져 간다.
성숙한 사람에게는 문제는 이미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가장 큰 문제는 죽음일 것이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에게는 죽음마저도 문제가 안된다.
그것은 세상에 죽음처럼 큰 문제는 없고 죽음처럼 인간을 성숙하게 하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불고기든 생성조림이든 모두 죽음을 먹고 살아간다.
철학은 죽음의 연습이라고 한다. 자기의 죽음을 먹을 수 있을 때 인간은 고치를 벗어나 나비가 된다. 죽음은 인간을 정말 성숙하게 하는 맛있는 양식이다. 자기의 죽음을 극복한 사람만이 정말 성숙한 사람이다.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없어지는 것이다. 죽음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없어진다.
정말 오늘을 사는 사람에게는 죽음이 있을 수 없다. 죽음이 없어진 사람이 정말 성숙한 사람이요, 오늘을 사는 사람이 영원한 사람이다. ◁ △ ▷
노자<<道德經>> *무위자연
1. 길 <말할 수 있는 도는 불변의 도가 아니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無, 名天地之始, 有, 名萬物之母, 故常無, 欲以觀其妙, 常有, 欲以觀其妙, 此兩者, 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무명, 천지지시. 유, 명만물지모. 고상무, 욕이관기묘. 상유,욕이관기묘. 차량자, 동출이이명, 동위지현, 현지우현, 중묘지문.
도라 말할 수 있는 도는 변하지 않는 도가 아니고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 이름이 아니다. 이름이 없는 것은 천지의 처음이고 이름이 있는 것은 만물의 어머니이다. 그러므로 항상 욕심이 없는 것으로 미묘한 본체를 살피고 항상 욕심이 있는 것으로 그 순환하는 현상을 살핀다. 이 둘은 같이 나와 이름을 달리하며 둘다 현묘한 것이라고 한다. 현묘하고 현묘한 모든 묘리가 나오는 문이다.
--진리란 진리는 진리가 아니고 생명이란 생명은 생명이 아니다. 초월적인 진리에서 천지가 시작되고 내재적인 생명에서 만물이 완성된다. 고로 정신이 통일되어야 실재가 파악되고 육체가 단련되어야만 현실을 움직인다. 실재와 현실이 둘이 아닐진댄 욕심없는 마음으로 사물에 부딪침이 우리들의 나아갈 길이 아닐까.
늙은 씨앗이 터져 뿌리가 되고 줄기가 뻗고 가지가 자라고 잎이 무성하여 꽃이 피고 열매가 맺고 자라고 또 자라서 큰 나무가 된다.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較, 高下相傾, 音聲相和, 前後相隨, 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萬物作焉而不辭, 生而不有, 爲而不恃, 功成而弗居, 夫唯弗居, 是以不去.
천하개지미지위미, 사악이. 개지선지위선, 사불선이. 고유무상생, 난이상성, 장단상교, 고하상경, 음성상화, 전후상수. 시이성인, 처무위지사, 행불언지교. 만물작언이불사, 생이불유, 위이부시, 공성이불거. 부유불거, 시이불거.
사람들이 아름답다 하니 아름다운 줄 알지만 이는 추악한 것이고, 선하다고 하니 선한 줄 알지만 이는 선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있고 없는 것이 서로 낳고, 어렵고 쉬운 것이 서로 이루고, 길고 짧은 것이 서로 비교되고, 높고 낮은 것이 서로 기울어지고, 음과 소리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앞과 뒤가 서로 따른다. 이로써 성인은 무위의 일에 처하여 무언의 가르침을 행한다. 만물이 일어나도 막지 않고, 생겨도 잡아두지 않으며, 행하고도 자랑하지 않고, 공을 이루어도 머무르지 않는다. 머무르지 않으니 또한 떠나지도 않는다.
--한편에만 집착하지 말고 중도를 택하여 자기의 할 일만 하고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 바른 길이다. 중도란 중용의 천하의 대본이요 천하의 달도라 하는 말과 같다. 노자는 대본은 無爲之事라고 하였고 달도를 不言之敎라고 하였다. 무위지사란 생명이란 말아요, 불언지교란 진리라는 말이다. 생명을 얻고 진리로 사는 사람이 성인이요, 자유인이요, 도인이다. 성인은 깨끗하고 거룩한 사람이기에 씻어난이라고 한다. 깨끗은 깨끗하다는 뜻도 있지만 대각이라는 깨와 인격의 완성이라는 끗을 합쳐서 깨끗이라고 한다. 깨끗을 성이라고 하여 성인을 씻어난이라고 한다.
不尙賢, 使民不爭, 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不見可欲, 使民心不亂, 是以聖人之治, 虛其心, 實其腹, 弱其志, 强其骨, 常使民無知無欲, 使夫智者不敢爲也, 爲無爲, 則無不治.
불상현, 사민부쟁. 불귀난득지화, 사민불위도. 불견가욕, 사민심불란, 시이 성인지치, 허기심, 실기복, 약기지, 강기골, 상사민무지무욕, 사부지자불감위야, 위무위, 즉무불치.
아는 것이 많아 현명한 사람을 존중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다투고 경쟁하는 일이 없게 되고 얻기 어려운 재물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백성들이 도둑질하는 일이 없게 되고 무엇이든 해보겠다는 야욕을 보여주지 않으면 백성의 마음은 어지러워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인의 다스림은 백성의 마음에 아무런 욕심이 없게 하고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며 밖으로 향하는 마음의 움직임을 약하게 하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골격을 튼튼하게 한다. 항상 백성으로 하여금 앎도 없고 욕심도 없게 하며 아는 자로 하여금 감히 잔꾀를 부리지 못하게 한다. 무위의 다스림으로 다스려지지 않는 일이 없다.
잘난 사람과 귀한 물건을 너무 숭상하면 쓸데없이 싸우게 되고 훔치게 된다. 그런 고로 성인들은 욕심은 적고 실력은 있게 눈은 낮게 하고 뼈대는 세게 하여 자기 할 일을 할 수 있도록 길러가는 것이다 성인을 씻어난이라고 하고 현인을 닦아난이라고 한다.
성인은 깨끗한 경지에 들어간 사람이요, 현인은 성인의 뒤를 닦아 가면서 닦고 또 닦아 그 빛을 성인에게 돌려 보낸다.
虛心實腹이라는 말은 옛날부터 많이 알려진 말로서 건강한 정신에 건강한 육체라고 하여도 좋고,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의 것이라고 하여도 좋다. 眞空妙有만 되면 되는 것이니까.
道, 沖而用之, 或不盈, 淵兮似萬物之宗, 挫其銳, 解其紛, 和其光, 同其塵, 湛兮似或存, 吾不知誰之子, 象帝之先.
도, 충이용지, 혹불영. 연혜 사만물지종. 좌기예, 해기분, 화기광, 동기진. 담혜 사혹존. 오불지수지자, 상제지선.
도는 비어 있으나 아무리 사용해도 늘 가득 차 있고 넘치지 않는다. 깊고 넓어서 만물의 근본인 것 같다. 날카로운 것을 무디게 하고 복잡한 것을 풀며 빛을 부드럽게 하여 티끌에도 뒤섞이건만 맑고 고요함이 늘 그대로 있는 것 같다. 나는 그 도가 누구의 자식인지 알 수 없으나 아마 우주를 주재하는 하느님보다 먼저 있었던 것 같다.
길도 곧장 뚫려야 쓸모가 있고 생각도 마음도 사람도 속이 뚫려야 쓸모가 있게 된다. 길도 막히면 못 쓰는 법, 속이 막혀서야 되겠는가.
생각은 한없이 깊어서 모든 이치에 통해야 하고, 마음은 한없이 넓어서 모든 사람을 다 품어야 하고, 지성은 한없이 날카로워 모든 엉킴을 한 칼에 잘라 버려야 하고, 사람은 언제나 빛처럼 날카로운 마음씨를 부드럽게 하여 먼지 묻은 동포와 같이 살아야 한다.
마음이 가라앉아 맑게 고이면 호수처럼 그 위에 모든 것이 비치게 된다. 그 그림자가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물 위에 구름처럼 하나님의 얼굴이 그려진 것이 아닐까. 사람은 하늘의 아들이기에.
태초에 마음이 있으니 마음이 하나님과 같이 계시매 마음이 곧 하나님이라고도 하였다지만 이 글에서 가장 많이 쓰여지는 말은 和光同塵이란 말이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었다고도 하고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도 한다.
먼지와 빛은 둘이 아니다. 빛이 커지면 먼지가 되고 먼지의 반사없이 빛은 없다. 흩어지면 빛이요, 뭉치면 먼지다. 달도 먼지요, 지구도 먼지다. 빛을 부드럽게 하여 먼지와 같이 된 것이 사람이 아닐까. 화광동진이라는 말을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 수가 있을 것 같다.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 天地之間, 其猶탁약乎, 虛而不屈, 動而愈出, 多言數窮, 不如守中.
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 성인불인, 이백성위추구. 천지지간, 기유탁약호, 허이불굴, 동이유출. 다언수궁, 불여수중.
하늘과 땅은 어질지 않아서 사람처럼 사랑하고 미워하지 않으므로 세상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강아지와 같이 여긴다. 성인도 어질지 않아서 백성들을 짚으로 만든 강아지와 같이 여긴다.
하늘과 땅 사이는 풀무와 같아서 비어 있으나 힘이 끝이 없고 움직일 수록 힘이 더욱 커진다. 말이 많으면 이치에 곤궁하게 되니 가만히 있는 것만 못하다.
늦은 가을, 들에 나가보면 만물이 마르고 떨어져 아무도 천지를 돌보는 것 같지 않다. 하늘과 땅 사이는 한없이 넓어서 텅 빈 것 같으나 그 속에는 천천 억억의 천체로 가득 차 있고 넓은 대지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으나 한없는 생명이 꿈틀거리고 있고, 사람의 머리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으나 무수한 생각이 흘러 나온다.
마치 풀무간의 풍구처럼 텅 비어있으면서도 쭈그러들지도 않고 움직이기만 하면 얼마든지 쏟아져 나온다. 이것이 만물의 사랑이다.
마음이 텅 비어 속이 뚫리면 사람은 하나의 허공이요, 만물을 포용하는 하늘이 된다. 사람의 마음이 허공이 될 때 비로소 사람다운 사람이 된다.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곡신불사, 시위현빈, 현빈지문, 시위천지근, 면면약존, 용지불근.
도는 텅 빈 산골짜기의 신과 같고 그 신은 결코 죽지 않는다. 이를 일러 신비로운 암컷이라 한다. 신비로운 암컷의 문은 천지만물의 생명의 근원 그 뿌리는 끊임없이 존재하는 것 같고 천지만물이 그 자궁의 문을 아무리 써도 지쳐 없어지지 않는다.
골짜기처럼 텅 비어 아무 것도 없는 하나님은 없애려 해도 없앨 수 없다. 숨어 있으면서, 시간과 공간과 인간을 초월한 하나님. 그 분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 분을 보이지 않는 어머니라고 한다. 큰 어머니의 말씀으로 우주가 창조되니 이 말씀을 하늘 땅의 근원이라고 한다. 물 위에 배가 뜨듯이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밑받침으로 하고 있다.
샘물이 솟듯이 만물이 땅에서 흘러나온다. 머리 위에 별과 하늘을 보라. 마음속에 한없이 솟아나는 참 말씀을 들어라. 천지는 신의 영광을 드러내고 말씀은 인간의 존엄을 나타낸다.
천지와 만물은 다함이 없다. 인간은 유한한 세상에서 무한을 찾고, 멸하는 세상에서 불멸을 찾고 있다.
天長地久, 天地所以能長且久者, 以其不自生, 故能長生, 是以聖人後其身而身先, 外其身而身存, 非以其無私邪, 故能成其私.
천장지구, 천지소이능장차구자, 이기불자생, 고능장생, 시이성인 후기신이신선, 외기신이신존, 비이기무사사, 고능성기사.
하늘은 길고 땅은 오래다. 천지가 길고 또한 오래일 수 있는 것은 스스로 목숨을 늘리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능히 오래 살 수 있다. 성인은 자신을 뒤에 머물게 함으로 앞서고 자신을 떠나 잊으므로 자신이 존재하게 된다. 그것은 사사로운 욕심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없앰으로 자신을 이룩할 수 있는 것이다.
하늘은 영원하고 땅은 무한하다. 하늘과 땅이 능히 오래 가고 다함이 없는 것은 통째로 살고 자기를 갈라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를 갈라 삶과 죽음으로 만들고, 있다 없다고 나누면 낳았다가는 죽고, 있다가 없어지는 보잘 것 없는 미물이 된다. 나는 본래 전체이지 부분이 아니다. 왜 잔인하게 자기를 갈라 부분을 만들어 스스로 죽이고 스스로 없어지게 하는 어리석음을 감행하는가. 전체는 죽음도 없음도 없이 영원하고 무한하다. 이러한 이치를 깨달은 성인은 언제나 생사의 걸림 없이 살겠다는 생각이 없기 때문에 도리어 죽게 되고 만다. 모든 것을 갈라 놓음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그런 고로 성인은 영원을 이룬다.
노자는 통으로 사는 천지와 통으로 사는 성인을 꿈속에서라도 한번 만나기를 원하고 있다. 콧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바람도 내 바람이 아니요, 내 핏줄을 돌아가는 피 물도 내 물이 아니요, 내 몸을 덥게 하는 불도 내 불이 아니요, 내 몸을 빚은 흙도 내 흙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은 전체의 일부일 뿐이다.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居善地,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正善治, 事善能, 動善時, 夫唯不爭, 故無尤.
상선약수. 수선이만물이부쟁, 처중인지소악. 고기어도. 거선지, 심선연, 여선인, 언선신, 정선치, 사선능. 동선시. 부유부쟁, 고무우.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에게 혜택을 주지만 다투는 일이 없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위치한다. 그러므로 무위자연의 도의 모습과 가까운 것이다. 사는 곳으로는 땅 위가 좋고, 마음의 상태로는 못처럼 깊은 것이 좋고, 친구는 어진 사람이 좋고, 말은 진실한 것이 좋고, 정치나 법률은 세상이 잘 다스려지는 것이 좋고, 일을 처리하는 데에는 유능한 것이 좋고, 행동은 적당한 시기를 아는 것이 좋다. 물 또한 이러한 것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 즉, 땅 위에 안정되어 있고, 깊이 괴어 못을 이루고, 만물에 혜택을 주어 사랑을 베푼다.
물의 위대함은 만물에 순응해 다투지 않음에 있다. 다투지 않음으로 실수도 잘못도 범하지 않게 되니 도를 체득한 성인의 모습도 이 물과 같다. 공을 이루었으면 물러나야 한다.
물같이 사는 것이 최고의 삶이다. 물은 스스로 움직이며 남을 움직이고, 언제나 자기의 갈 길을 찾아 간다. 물은 장애에 부딪쳐 더욱 그 힘을 배가하기도 한다. 물은 언제나 스스로 깨끗하며 다른 것의 더러움을 깨끗하게 해주고 맑고 흐림을 함께 삼키는 아량이 있다.
공자도 물 흘러 가는 것을 보고 찬탄하였다. 물은 언제나 만물을 도와주고 그들과 다투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제일 낮은 데 처하여 스스로 도를 즐긴다.
성인도 마찬가지다. 남을 살릴 뿐 그들과 싸우지 않고 모든 사람이 내던진 무욕의 경지에서 천지를 즐긴다. 그 모습이 어찌도 그리 같을까. 낮은 땅에 처하기를 좋아하고 깊은 못에 들어가기를 좋아하고 살리기를 좋아하고 거짓이 없고 남을 도와주려고 힘을 쓰고 때를 맞추고 천지와 함께 살아 아무 것과도 다투지 않으니 물은 흠잡을 것이 없다.
持而盈之, 不如其已, 취而銳之, 不可長保, 金玉滿堂, 莫之能守, 富貴而驕, 自遺其咎, 功遂身退, 天之道.
지이영지, 불여기이. 취이예지, 불가장보. 금옥만당, 막지능수. 부귀이교, 자유기구. 공수신퇴, 천지도.
가득 차 있는 상태를 무리해서 계속 유지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두들겨 날카롭게 만든 칼은 오래가지 못하고 금은 보화를 집안에 가득 쌓아둔다고 해서 그것을 유지해 나갈 수는 없다. 출세를 해서 잘난 체 하는 것은 화를 부르는 원인이 되고 일을 이루었으면 물러나는 것이 천지 자연의 이치이다.
순자 유좌편에 이런 말이 있다.
공자가 노나라 환공의 사당을 구경 갔다가 의기라는 그릇을 보았다. 묘지기는 그 그릇이 환공이 언제나 자기를 경계하기 위하여 자기 옆에 놓아두었던 유좌의 그릇이라고 했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옛날부터 유좌의 그릇은 비면 기울어지고 물이 절반쯤 차면 그릇이 안정되고 물이 가득차면 거꾸러지게 만든 것인데 어디 한번 물을 부어 보라고 하였다. 물을 부어보니 그대로여서 모두 감탄하였다.
공자 왈 "가득차서 거꾸러지지 않는 사람이 있나?"
자로 왈 "가득차도 계승되는 길이 없을까요?"
공자는 빙그레 웃으면서 총명성지(聰明聖知)도 어리석음으로 그것을 지키고 공업(功業)이 천하를 덮어도 사양을 가지고 그것을 지키고, 용력(勇力)이 세상을 압도해도 비겁을 가지고 그것을 지키고, 부력(富力)이 천하를 소유해도 겸손을 가지고 그것을 지키니, 어리석음과 사양함과 비겁함과 겸손함이 충만을 계속하게 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회남자 도응 편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위나라 무후가 물었다.
"오나라는 어떻게 멸망했는가?"
"오나라는 걸핏하면 싸우고 싸울 때 마다 이겼기 때문입니다." 하고 이극이 대답했다.
"그렇다면 오히려 나라가 흥했을 것인데 어찌 망했단 말인가?" 무후가 의아해 하면서 다시 물었다.
"조그마한 일에도 계속 싸우면 백성이 피곤해지고, 싸울 때마다 이기면 임금이 거만해 집니다. 거만한 임금과 피곤한 백성으로 망하지 않는 나라는 없습니다." 이극은 이렇게 대답했다.
"거만해지면 제멋대로 행동하게 되고, 제멋대로 행동하게 되면 물질을 탕진하고, 피곤하면 원망하고, 원망하면 정신을 탕진합니다. 임금과 백성이 가진 것을 모두 탕진했으니 오가 망한 것도 무리가 아니지요. 오왕 부차는 자살했습니다. 노자도 공을 이루고 이름이 오르면 몸이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극이 덧붙여 말했다.
10. 속 알
載營魄抱一, 能無離乎, 專氣致柔, 能영兒乎, 滌除玄覽, 能無疵乎, 愛民治國, 能無知乎, 天門開闔, 能無雌乎, 明白四達, 能無爲乎, 生之畜之,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
재영백포일, 능무리호. 전기치유, 능영아호. 척제현람, 능무자호, 애민치국, 능무지호. 천문개합, 능무자호, 명백사달, 능무위호. 생지축지, 생이불유, 위이불시, 장이부재, 시위현덕.
생명의 수레를 타고 무위의 도를 꽉 안고 있어 잠시도 이를 떠나지 않는다. 정기를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하고 마음과 몸을 부드럽게 가져 그 싱싱함이 어린아이와 같다. 마음의 거울에 때묻은 것을 씻고 세상의 티끌이 이 것을 어둡게 하는 일이 없다.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다스려 인간의 거짓된 지혜가 끼여들게 하는 일이 없다. 생사의 변천에는 여성과 같이 그저 몸을 내맡겨 나간다. 밝은 지혜가 사방을 비추어도 그 지혜를 감추어 그 모습은 항상 어리석은 것 같다. 천지의 만물을 만들어 내고 또 길러내고 만들어 내면서도 그 것을 내 것이라 하지 않고 일을 하면서도 내가 한다는 생각을 갖지 않고 만물을 길러 그것이 자라도 이를 통제하거나 지배하거나 하는 일이 없다. 이것이 바로 현묘한 성인의 덕이다.
푸른 나무가 대지에 뿌리를 박아야 튼튼하듯이 지각(魄)으로 영위되는 모든 학문은 신앙으로 밑받침되어야 튼튼하다. 사자처럼 날쌔고 낙처럼 부드러우면 어린애와 같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물처럼 씻고 구름처럼 보면 거룩을 이루는 길이 아닐까. 불처럼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다스림이 칭찬받을 일이 못된다. 하늘을 열고 닫는 바람처럼 시원하고 다부지게 일한다고 해서 알아 줄 필요가 어디 있을까. 빛처럼 알고 바람처럼 일하고 불처럼 도와주고 물처럼 씻어주고 어린애처럼 순진하고 나무처럼 푸른 것이 사람이 아닐까.
사람이 사람된 것뿐인데 거기에 더하여 칭찬할 것도 없고 갂아 내려 탓할 것도 없다. 사람은 그대로 빛이요 물이요 나무다. 만물을 낳고 기르되 내 것이라고 가질 것도 없고 잘했다고 뽐낼 것도 없고 높다고 야단 칠 것도 없다. 나무는 자라고 어린애는 크고 물은 흐르고 불은 오르고 바람을 불고 해는 빛나고 다 타고난 바탈대로 되어 가는데 무엇이라 할 것인가.
三十輻共一곡, 當其無, 有車之用, 선치以爲器, 當其無, 有器之用, 鑿戶유以爲室, 當其無, 有室之用,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
삼십폭공일곡. 당기무, 유차지용. 식이위기. 당기무, 유기지용. 착호상이위실. 당기무, 유실지용. 고유지이위이. 무지이위용.
서른개의 바큇살이 바퀴 통에 모여 있으나, 바퀴 통 복판이 비어 있음으로 쓸모가 있고, 찰흙을 이겨 옹기그릇을 만드나, 그 한가운데가 비어 있어 쓸모가 있다. 문과 창을 만들어 방을 만드나, 안이 비어 있기 때문에 방으로 쓸모가 있다. 그러므로 모양이 있는 것이 쓸모가 있는 것은 모양이 없는 것이 그 뒷받침을 하기 때문이다.
수레바퀴의 중심은 허공이요, 움직이는 것의 복판은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마음은 언제나 텅 비어 만물을 포섭하고 마음은 흔들림 없어 만물을 움직인다. 하늘보다 넓은 마음, 땅보다 두터운 마음, 마음은 하늘과 통하여 도가 되고 마음은 땅과 통하여 덕이 된다. 그릇이나 방은 빈 데가 있어 쓸모가 있다.
五色令人目盲, 五音令人耳聾, 五味令人口爽, 馳騁전獵令人心發狂, 難得之貨令人行妨, 是以聖人爲腹不爲目, 故去彼取此.
오색령인목맹. 오음령인이롱. 오미령인구상. 치빙전엽 영인심발광, 난득지화 영인행방, 시이성인 위복불위목, 고거피취차.
다섯 가지 색깔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다섯 가지 소리는 사람의 귀를 먹게 하고, 다섯 가지 맛은 사람의 입맛을 상하게 한다. 말을 타고 짐승을 사냥하게 되면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만들고 얻기 어려운 재물은 사람의 행실을 나쁘게 만든다. 그런 까닭에 성인은 배를 채울 뿐 겉치레를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고 한다.
울긋불긋한 여러 빛깔이 도리어 사람의 눈을 멀게 하여 참 빛을 못보게 하고 낮고 속된 음악이 사람의 귀를 멀게 하여 참 음악을 즐기지 못하게 하고, 달고 매운 조미료가 사람의 입맛을 마비시켜 참 맛을 모르게 하고 몰려다니는 산양질과 호기심이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여 미쳐 날뛰게 하고, 얻기 어려운 보화가 사람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사람의 행실을 못되게 한다.
그런 고로 성인은 근원적인 밑배를 위하고 말단적인 안목을 자극하지 않는다. 언제나 뿌리에 살고 가지에 살지 않는다. 노자는 마음이 배 밑에 있다고 한다. 장자는 마음이 발바닥에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마음은 깊은 땅속에 있다. 마음은 한없이 가라앉아서 배 밑으로 발 밑으로 땅속으로 적어도 지구의 중심으로 더 깊이는 태양의 중심 더 깊이 은하계의 중심까지 갖다 놓아야 한다. 그리하여 내 마음은 없고 하늘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될 때 비로소 사람은 이 세상 만물을 바로 볼 수 있는 눈과 바로 들을 수 있는 귀와 바로 먹을 수 있는 입과 바로 살 수 있는 마음과 바로 죽을 수 있는 몸을 가지게 될 것이다.
寵辱若驚, 貴大患若身, 何謂寵辱若驚, 寵爲下, 得之若驚, 失之若驚, 是謂寵辱若驚, 何謂貴大患若身, 吾所以有大患者, 爲吾有身, 及吾無身, 吾有何患, 故貴以身爲天下, 若可寄天下, 愛以身爲天下, 若可託天下.
총욕약경, 귀대환약신. 하위총욕약경. 총위하, 득지약경, 실지약경, 시위총욕약경, 하위귀대환약신. 오소이유대환자, 위오유신. 급오무신, 오유하환. 고귀이신위천하, 약가기천하, 애이신위천하, 약가탁천하.
총애를 입는 것과 굴욕을 당하는 것을 깜짝 놀랄 일을 당하는 것과 같이하고 큰 재앙을 귀하게 여기는 것을 몸을 귀하게 여기는 것과 같이 하라. 총애를 입는 것과 굴욕을 당하는 것을 깜짝 놀랠 일을 당하는 것과 같이 하라 하는 것은 사랑 받는 것은 위에서 아래로 행하여지므로 얻어도 잃어도 조심하며 놀랍게 여기라는 것이니 이래서 총애와 굴욕은 깜짝 놀랄 일을 당하는 것과 같다 하는 것이다. 큰 재앙을 피하려 하지말고 몸을 귀하게 여기는 것과 같이하라 하는 것은 나에게 큰 재앙이 있음은 나의 몸이 있기 때문이니 내 몸이 없으면 내게 어찌 재앙이 있겠는가 내 몸을 천하처럼 귀하게 여기는 사람에게는 천하를 맡길 수 있고 내 몸을 천하처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천하를 부탁할 수 있다.
사람은 부귀영달과 패가망신을 자기 몸보다도 더 가깝게 생각한다. 부귀를 위해서도 생명을 바치고 빈천 때문에 생명을 버리기도 한다. 마치 그림 딱지 한 장에 웃고 우는 어린애와 같다. 부귀 빈천은 뜬 구름 같은 것인데 그것을 위해서 일생을 바친다는 것은 가엾은 일이다.
이런 경험을 지나 철이든 다음에야 자기 몸을 귀하게 여기고 아끼는 심정으로 천하를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경험을 가진 사람이 얼이 들어 천하를 맡는다면 정말 천하가 됨직 하게 되어질 것이다. 그런데 언제 철든 사람이 나와서 천하를 맡게 될까.
視之不見, 名曰夷, 聽之不聞, 名曰希, 搏之不得, 名曰微, 此三者, 不可致詰, 故混而爲一, 其上不교, 其下不昧, 繩繩不可名, 復歸於無物, 是謂無狀之狀, 無物之狀, 是謂恍惚, 迎之不見其首, 隨之不見其後, 執古之道, 以御今之有, 能知古始, 是謂道紀.
시지불견, 명왈이. 청지불문, 명왈희. 박지불득, 명왈미. 차삼자, 불가치힐. 고혼이위일. 기상불교, 기하불매, 승승불가명, 복귀어무물. 시위무상지상, 무물지상. 시위황홀. 영지불견기수, 수지불견기후. 집고지도, 이어금지유. 능지고시, 시위도기.
눈을 크게 뜨고 아무리 살펴보아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빛이 없다고 한다. 귀를 기울이고 들으려 해도 아무 것도 들리지 않기 때문에 소리가 없다고 한다. 손으로 쳐보고 만져보아도 아무 것도 잡히지 않기 때문에 형체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 세 가지 말로는 도의 정체를 제대로 규정할 수 없다. 이 세 가지 말을 섞어 하나로 한 존재인 것이다.
그 위 부분은 분명하지가 못하고 그 아랫부분은 어둡지가 않다. 휑하여 이름 붙일 수가 없고 물질 세계를 초월한 곳으로 되돌아가 있다. 이 것을 모양 없는 모양, 물질의 차원을 초월한 형상이라 한다. 어렴풋해서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그런 것이다. 앞에서 본다고 그 머리가 보일 리 없고, 뒤에서 본다고 그 꼬리가 보일 리 없다. 태고 때부터 진리를 꼭 잡고 삼라만상을 주재하고 있다. 역사와 시간의 첫 근원을 알 수 있는 것, 그 것을 도의 본질이라 한다.
古之善爲士者, 微妙玄通, 深不可識, 夫唯不可識, 故强爲之容, 豫焉若冬涉川, 猶兮若畏四隣, 儼兮其若容, 渙兮若氷之將釋, 敦兮其若樸, 曠兮其若谷, 混兮其若濁, 孰能濁以靜之徐淸, 孰能安以久動之徐生, 保此道者, 不欲盈, 夫唯不盈, 故能蔽不新成.
고지선위사자, 미묘현통, 심불가식. 부유불가식, 고강위지용. 예혜약동섭천, 유혜약외사린. 엄혜기약객, 환혜약빙지장석, 돈혜기약박, 광혜기약곡, 혼혜기약탁. 숙능탁이정지서청. 숙능안이동지서생. 보차도자, 불욕영. 부유불영, 고능폐이신성.
예로부터 도를 닦은 훌륭한 선비는 미묘하고 심원하여 그 깊이를 헤아려 알 수가 없다. 깊이를 헤아려 알 수 없기에 모습을 억지로 묘사해 보면 머뭇거리며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은 추운 겨울에 찬 냇물을 건너가는 것과 같고 주저하며 뒤를 살피는 모습은 주위를 둘러싼 적을 두려워하는 것과 같다. 엄숙해서 감히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은 손님의 당당한 모습과 같고 부드럽게 막힘이 없는 것은 봄바람에 녹는 어름과 같다. 꾸밈이 없는 것은 마치 산에서 갓 베어낸 통나무와 같고, 구애되지 않는 마음은, 텅 비어 있는 골짜기와 같으며 세상과 한데 섞여 있는 모습은, 마치 흐려진 물과도 같다. 흐린 물을 흐린 채 그대로 두어 서서히 가라앉아 맑아지게 하는 그런 무위의 일을 그 누가 하겠는가? 산골짜기처럼 조용한 가운데 움직임이 있어 풀과 나무가 서서히 자라고 있듯이, 그런 무위의 것을 누가 하겠는가? 이 무위의 도를 몸에 품고 있는 사람은 보름달처럼 꽉 차 있는 것을 바라는 일이 없다. 그렇게 차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옷이 낡으면 새 것을 만들어 입듯이 변화 속에 다함이 없다.
노자의 말은 한없이 쉽지만 그의 생각은 한없이 깊다. 그는 조심조심 코끼리가 얼음을 건너고 강아지가 집을 지키는 것처럼 불털주야 조심조심 한치한치 사물의 본질을 실상이 보일 때까지 파고 들어간다. 마치 굴을 파가는 석공과 같다. 그러나 일단 구멍이 뚫려 앞이 트이면 환하게 열려 어름이 풀리는 듯 눈앞에 전개되는 울창한 수림 천인절벽의 깊은 골짜기 자줏 빛깔로 물든 전체의 험산준령이 아름답기 그지 없다. 이러한 절경속에 고요히 가라앉아 깨끗한 시낸물에 발을 담그고 마른 나뭇가지 모아 모닥불 피워놓고 안개에 젖은 옷을 누가 펴 다 말리우리.
이러한 경지에 사는 이는 무엇을 더 바라고 채울건가. 그저 텅비었기에 영원히 변함없고 새로 이루는 것이 아니오라.
致虛極, 守靜篤, 萬物竝作, 吾以觀復, 夫物芸芸, 各復歸其根, 歸根曰靜, 是謂復命, 復命曰常, 知常曰明, 不知常, 妄作凶, 知常容, 容乃公, 公乃王, 王乃天, 天乃道, 道乃久, 沒身不殆.
치허극, 수정독, 만물병작, 오이관복. 부물운운, 각복귀기근. 귀근왈정, 시위복명. 복명왈상, 지상왈명. 불지상, 망작흉. 지상용, 용내공. 공내왕, 왕내천. 천내도, 도내구. 몰신불태.
마음이 텅 빈 극치에 이르고 참답게 무위의 고요함을 지키게 되면 만상의 온갖 움직임이 다시 돌아가는 것을 보게 된다. 만상이 갖가지 모습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저마다 자신의 뿌리고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뿌리고 돌아가 있는 것을 고요, 무위의 고요함이라 말하고 고요한 것을 명, 각자 본래의 참 모습으로 돌아가 있다고 한다. 명에 돌아가 있는 것을 떳떳함, 영원불멸이라 말하며 떳떳함 본연의 모습에 눈뜨는 것을 밝음, 절대의 지혜라 한다. 떳떳한 모습을 깨닫지 못하면 경거망동해서 불길하다. 떳떳한 것을 깨달으면 누구에게 대해서나 너그럽게 되고 너그럽게 되면 공평무사하며, 왕자의 덕을 갖추게 되고 왕자의 덕을 갖추면 하늘과 같이 광대해지며 하늘처럼 넓고 커지면 무위의 도와 하나가 되고 무위의 도와 하나가 되면 영원불멸이 된다. 몸을 마칠 때까지 편안히 살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는 힘 있는 만큼 일하고 어머니는 필요한 만큼 쓰니, 애들은 잘 자라고 온 집안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무릇 애들이밖에 나갔다가도 저녁만 되면 모두 집에 돌아오고, 집에 돌아와서는 자고, 자고 깨면 생기를 얻고, 생기를 얻으면 정신이 들고, 정신이 들면 세상일을 밝히 볼 수가 있다. 정신이 안들면 하는 일마다 망령되고 보기 싫다.
정신이 들면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마음이 너그러워지면 너, 나 없이 공명정대하게 되고 공명정대하면 몰래하는 것이 없어 능히 독립된 주체로써 임금이라 할 만하다. 임금이 되면 해, 달과 같이 하늘의 아들이요, 하늘의 아들이 되면 그 삶이 궤도에 오르게 되고, 삶이 궤도에 오르면 영원히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니, 비록 몸이 죽어도 그의 사람됨은 없어지는 법이 없는니라.
太上下知有之, 其次親而譽之, 其次畏之, 其次侮之, 信不足焉, 有不信焉, 悠兮其貴言, 功成事遂, 百姓皆謂我自然.
태상하지유지, 기차친이예지, 기차외지, 기차모지. 신부족언, 유불신언. 유혜기귀언, 공성사수, 백성개위아자연.
백성을 다스리는 지배자로는 백성들이 다만 그의 존재를 알고 있을 뿐인 것이 최상이고 백성들이 다정함을 느끼고 칭송하는 것은 그 다음이다. 지배자를 두려워하는 정치는 그 아래이며 백성들이 업신여기게끔 되면 가장 낮은 지배자다. 지배자에게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진실함이 부족하면 백성들로부터 신용을 얻지 못한다. 무위의 성인인 나는 유유히 말하지 않는 가르침을 행하여 화욕의 공을 온전히 하고 큰일을 성취시키지만 백성들은 모두 나를 있는 그대로라고 생각한다.
통치자의 순서
(최우수) 국민이 통치자의 가치와 존재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자신들 존재만을 의식할 때 ― 요순임금
(우수) 국민이 통치자의 이름 정도만을 알 때 ― 뉴질랜드에서는 누가 대통령인지 모르는 국민이 많다는 얘기가 있다.
(1등) 국민이 통치자를 다정히 여기고 존경하고 칭송할 때 ― 예: 세종대왕
(2등) 국민이 통치자를 두려워할 때 ― 역대의 대부분의 왕들.
(등외) 통치자가 국민을 업신여겨 함부로 대할 때 ― 예: 박정희, 전두환 등 세계의 모든 독재자들.
(물음: 국민이 통치자를 업신여길 때는 몇 등이 될까? 그리고 누구일까? 역사적으로 현직 통치자로서 국민에게 가장 업신여김을 당한 사람은 노무현이 아닐까 한다.)
공덕이 천하를 덮어도 자기의 공임을 의식하지 못하고 교화가 만물에 미쳐도 백성들은 그것이 왕의 덕인 줄 생각하지 못한다.
옛날 제요는 배를 안고 흙덩이를 치면서 '해 뜨면 일어나고 해 지면 잔다. 우물 파 마시고 밭 갈아 먹으니 임금과 내가 무슨 상관이 있느뇨'라고 노래를 부르는 백성들의 노랫가락을 듣고 사뭇 만족하여 궁으로 돌아왔다. 하늘의 태양처럼, 말없이 그리고 남몰래 모든 백성을 살리는 무위지치는 태상이다. 백성들이 왕의 일함을 알고 그를 칭찬하게 되면 벌써 태상을 아니다.
자산이 추운 겨울날 신발을 벗고, 시냇물을 건너는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종일 시냇가를 떠나지 못하고, 오는 사람 가는 사람을 자기 수레로 건네 주었다고 하여 많은 사람에게 칭찬을 받았다.
맹자는 그러한 有爲를 뱃사공만도 못한 놈이라고 나무랐다. 칭찬받는 세계는 역시 절대의 세계는 아니다.
하물며 법을 만들고 형틀을 만드는 법치에 있어서야 말할 것도 없이 폭력으로 백성을 괴롭히는 임금은 짐승이지 사람이 아니다.
大道廢有仁義, 慧智出有大僞, 六親不和有孝慈, 國家昏亂有忠臣.
대도폐, 유인의, 지혜출, 유대위, 육친불화, 유효자, 국가혼란, 유충신.
큰 도가 행해지지 않게 되자 사랑이니 정의니 하는 도덕이 강조되게 되었고, 교활한 지혜가 발달하자 인간이 만든 규칙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집안 사람끼리 다투는 일이 생기게 되면 부자 사이의 도덕문제가 논란이 되고 나라의 질서가 문란해지면 충신이 만들어지게 된다.
바다를 떠나 도마 위에 오른 고기들이 먼저 죽기를 바라며, 바로 잘리기를 바라는 것처럼 대도가 깨진 다음에 인의를 주장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생의 바닷물속에는 종교도 없고 도덕도 없다.
생명을 잃고 진리를 떠나서 사랑을 말하고 의리가 강하면 무슨 보탬이 있을까. 근본이 서지 않았는데 지엽말단을 단장해 보아야 아무 쓸데도 없다.
* 六親不和有孝慈 : 육친 관계가 파괴될 때 효도와 자애가 있게 된다.(18)
* 絶仁棄義, 民復孝慈, : 인을 버리고 의를 폐기하라. 그러면 백성들이 효도하고 자애롭게 될 것이다.(19)
* 曲則全, 枉則直, 窪則盈 : 온전히 보존하려면 구부려라. 반 듯하게 되기 위해서는 너 자신을 굽혀라. 가득 채우기 위해서는 우묵해야 한다.
* 信者吾信之, 不信者吾亦信之, 德信 : 신뢰성 있는 사람을 나는 믿으며, 신뢰성 없는 사람 또한 믿는다. 그러면 그는 덕있고 신뢰성있게 되리라.
絶聖棄智, 民利百倍, 絶仁棄義, 民復孝慈, 絶巧棄利, 盜賊無有, 此三者以爲文不足, 故令有所屬, 見素抱樸, 少私寡欲.
절성기지, 민리백배, 절인기의, 민복효자, 절교기리, 도적무유. 차삼자 이위문불족. 고령유소속. 견소포박, 소사과욕.
정치하는 사람이 성스러움과 지혜로움을 쓸모 없다 멀리하여 버리면 백성의 행복과 이익은 백 배가 되고 정치하는 사람이 어짊과 의로움의 도덕을 버리면 백성은 본래의 사랑과 효도로 돌아가게 된다. 정치하는 사람이 제도와 도구를 없애 버리면 세상에 도둑과 범죄자는 생기는 일이 없다. 위의 세 얘기로도 무위를 다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다음의 말을 덧붙인다. 본 바탕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지켜 사사로운 정을 억누르고 나를 위한 욕심을 적게 하라.
하늘이 움직일 때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 인간 세상에서 임금이나 부모나 스승은 백성이나 자녀나 제자들의 하늘에 해당되는 존재다. 부모나 임금이나 스승은 자식이나 백성이나 제자에게 아무것도 기대해서는 안된다. 자기가 못다한 것을 자식들에게 기대함은 자기의 지고 가야 할 짐을 자식에게 전가시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 각각 독립된 인격으로 자시 자신을 완성해 가자.
진리를 깨닫고 생명을 얻었다는 것은 다른 뜻이 아니다. 나를 줄이고 욕심을 적게 하는 것 뿐이다. 모든 기대란 나의 욕심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絶學無憂, 唯之與阿, 相去幾何, 善之與惡, 相去若何, 人之所畏, 不可不畏, 荒兮其未央哉, 衆人熙熙, 如享太牢, 如春登臺, 我獨泊兮其未兆, 如영兒之未孩, 래래兮若無所歸, 衆人皆有餘, 而我獨若遺, 我愚人之心也哉, 沌沌兮, 俗人昭昭, 我獨昏昏, 俗人察察, 我獨悶悶, 澹兮其若海, 료兮若無止, 衆人皆有以, 而我獨頑似鄙, 我獨異於人, 而貴食母.
절학무우. 유지여아, 상거기하. 선지여악, 상거하약. 인지소외, 불가불외. 황혜기미앙재. 중인희희, 여형태뢰, 여춘등대. 아독박혜기미조, 여상아지미해. 내래혜약무소귀. 중인개유여, 이아독약유. 아우인지심야재, 돈돈혜, 속인소소, 아독혼혼. 속인찰찰, 아독민민, 담혜기약해, 요혜약무지. 중인개유이, 이아독완사비. 아독이어인이귀식모.
학문을 그만두면 세상 살아가는데 걱정이 없다. '네'나 '응'이나 대답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좋으니 나쁘니 하는 것이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 그러나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외에 옳으니 그르니 하는 것은 막막해서 끝이 없다. 사람은 그저 마음이 들떠서 잘 차린 상을 받은 손님 같고, 봄날 높은 대에 오른 구경꾼 같다. 그러나 나만은 조용히 마음이 움직이는 기색마저 없고, 아직 웃을 줄 모르는 갓난아이와 같다. 초라하니 풀이 죽은 주인 없는 나그네 같다. 사람들은 모두 여유가 있는데 나만은 늘 가난하다.
내 마음은 바보의 마음, 그저 멍청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모두 똑똑하고 활발한데, 나만은 흐리멍덩하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상세하고 분명한데, 나만은 우물쭈물 결단을 못 내린다. 바다처럼 흔들리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정처 없다. 사람들은 다 유능한데, 나만은 우둔하고 촌스럽다. 나만이 남다른 사람이라 먹이고 길러준 어머니의 도를 소중히 하고 있다.
도를 찾아가는 절은이의 촌스러운 고집이 눈에 보이는 듯 하다. 화려한 나비가 되기 전에 험상스런 애벌레가 나무를 갉아먹듯 자기의 근거를 파들어가는 구도자의 정열이 믿음직하다. 껍데기를 핥는 세상 사람들이 다 봄놀이에 가슴이 들떳을 때, 속을 파 들어가는 구도자의 가슴은 답답하기만 하다. 얼핏보면 그들의 차이는 얼마 안 되는 것 같으나 나비가 될 때에는 그들의 차이는 한없이 클 것이다.
孔德之容, 惟道是從, 道之爲物, 惟恍惟惚, 惚兮恍兮, 其中有象, 恍兮惚兮, 其中有物, 窈兮冥兮, 其中有精, 其中有信, 自古及今, 其名不去, 以閱衆甫, 吾何以知衆甫之狀哉, 以此.
공덕지용, 유도시종. 도지위물, 유황유홀. 홀혜황혜, 기중유상. 황혜홀혜, 기중유물. 요혜명혜, 기중유정. 기정심진, 기중유신. 자고급금, 기명불거, 이열중보. 오하이지중보지상재, 이차.
큰 덕을 지닌 사람의 모습은 오로지 도만을 따르고 있다. 도라는 것은 그저 어두워 잘 분간할 수 없고 분간할 수 없는 어두움 속에도 무엇인가 모양이 있으며 어두워 분간할 수 없는 속에도 무엇인가가 실재하고 있다. 심오하고 그윽한 속에 영묘한 정기가 들어 있고 그 정기는 다시없이 참된 것으로 그 속에 창조자로서의 뚜렷한 증거가 있다. 그 것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이 도라 불리고 있어 수많은 족장들을 거느리는 총령과 같다. 족장들의 실상을 내가 아는 것은 총령의 도에 의해서이다.
신비적 직관을 통해서 나타난 사물의 내용은 극히 정밀하고 그 정밀함을 통해 나타나는 사물의 성질은 극히 진실하고 그 성질을 통하여 알려진 자기의 운명은 믿음직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운명의 필연은 마치 자연의 천체가 돌아가듯이 자기의 힘으로 자기가 걸어 갈 수 있게 된다.
曲則全, 枉則直, 窪則盈, 幣則新, 少則得, 多則惑, 是以聖人抱一爲天下式, 不自見, 故明, 不自是, 故彰, 不自伐, 故有功, 不自矜, 故長, 夫唯不爭, 故天下莫能與之爭, 古之所謂曲則全者, 豈虛言哉, 誠全而歸之.
곡즉전, 왕즉직, 와즉영, 폐즉신, 소즉득, 다즉혹, 시이성인, 포일위천하식, 불자견고명, 불자시고창, 불자벌고유공, 불자긍고장, 부유부쟁, 고천하막능여지쟁. 고지소위곡즉전자, 기허언재. 성전이귀지.
굽은 나무는 수명을 온전히 마치게 되고, 자벌레는 몸을 굽힘으로써 뻗을 수도 있게 된다. 물은 우묵한 웅덩이로 흘러 모이게 되고, 옷은 낡아 해어져야만 다시 새 것을 입게 된다. 욕심이 적으면 마음의 만족을 얻을 수 있고, 지식이 많으면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무위 자연의 성인은 하나인 도를 지켜 천하의 법이 되는 것이다. 무위 자연의 성인은 자기를 내세우는 일이 없기 때문에 그의 존재가 뚜렷해지고, 자신을 옳다 하지 않기에 그 좋은 것이 세상에 나타난다. 자기의 공을 자랑하지 않기에 그 공이 자기의 것이 되고, 자신의 우쭐댐을 버리기에 언제까지고 존경을 받게 된다. 성인은 절대로 남과 다투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세상에 그를 적으로 대하는 사람이 없다. 옛 사람이 말하거늘 굽은 나무는 제 수명을 다한다고 했는데, 참으로 인생의 진리를 제대로 말한 것이다. 참으로 굽은 나무가 되어 내 몸을 온전히 하고, 온전한 몸을 대자연에 되돌려 주는 것이다.
만물은 천지 하나를 얻어 튼튼하다. 그런고로 성인은 언제나 하나를 붙잡는 것으로 세상의 모범이 된다. 하나를 보기 때문에 밝고, 하나를 섬기기 때문에 드러나고, 하나를 위하기 때문에 공이 있고, 하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영원하가. 하나와 다툴 이는 없다.
希言自然, 故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 孰爲此者, 天地, 天地尙不能久, 而況於人乎, 故從事於道者, 道者同於道,
德者同於德, 失者同於失, 同於道者, 道亦樂得之, 同於德者, 德亦樂得之, 同於失者, 失亦樂得之, 信不足焉, 有不信焉.
희언자연, 고표풍불종조, 취우불종일. 숙위차자, 천지, 천지상불능구, 이황어인호. 고종사어도자, 도자동어도, 덕자동어덕, 실자동어실. 동어도자, 도역락득지, 동어덕자, 덕역락득지, 동어실자, 실역락득지. 신부족언, 유불신언.
들어도 들리지 않는 말은 유구한 무위의 자연이다. 시끄러운 회오리바람은 아침 내내 계속 불지 못하고 퍼붓는 소나기도 온종일 내리지는 못한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천지가 하는 일이다. 천지가 비바람을 계속되게 하지 못한다면 사람으로야 무엇을 더 말하겠는가? 그러므로 무위자연 그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도일 경우에는 그 도와 하나가 되고 덕일 경우에는 그 덕과 하나가 되며 실덕일 경우는 그 실덕과 하나가 된다. 도와 하나 되면, 도 또한 그를 얻어 기뻐하고 덕과 하나 되면, 덕 또한 그를 얻어 기뻐하며 실덕과 하나 되면, 실덕도 그를 얻어 기뻐한다. 무위자연의 명백한 증명이 결여된 말은 누구로부터도 신용을 얻지 못한다.
말은 없는 편이 좋다. 폭풍도 한 곁을 내차 볼 수 없고 폭우도 온종일 쏟아질 수는 없다. 하물며 격한 말이나 슬픈 이야기를 어떻게 오래 계속할 수 있으랴.
그런고로 이치에 따라 일을 보는 사람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 같아서 평지를 갈 때에는 훨훨 걸어가고, 언덕을 오를 때는 서서히 올라가고, 비탈을 갈 때에는 조심조시 내려간다. 그러면 평지를 갈 때에는 즐거움이 있고, 산길을 갈 때에는 산길에 기쁨이 있고, 비탈을 갈 때에는 비탈에 좋음이 있다.
어디서나 사물과 하나가 되어 자기의 중심을 잡기만 하면 조금도 위태로움이 있을 리가 없다. 만일 사물의 요령을 잡지 못하고 사물에 숙련을 이룩하지 못하면 턱 믿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삶의 비결은 삶과 하나가 되는 일이다. 내 삶에 내가 통할 때에 내 삶은 즐거움으로 가득차게 마련이다. 삶에 족할 때는 불평이나 불만을 있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말이란 없는 것이 좋다. 천지만물은 모두 제 길을 가는 것이 자연이다. 제 길을 가는데 억지가 있을 리 없고 철이 들어 마음의 안개만 걷히면 자기의 앞길은 훤히 보이게 마련이다. 훤히 보이는 큰 길을 턱턱 힘있게 걸어가면 세상에 어려움이 있을 리 없다.
企者不立, 跨者不行, 自見者不明, 自是者不彰, 自伐者無功, 自矜者不長, 其在道也, 曰餘食췌行, 物或惡之, 故有道者不處.
기자불립, 과자불행. 자견자불명, 자시자불창. 자벌자무공, 자긍자부장. 기재도야, 왈여식췌행. 물혹악지, 고유도자불처.
발돋움하는 자는 오래 서 있지 못하고 큰 걸음으로 급히 걷는 사람은 멀리 걸어가지 못한다. 나를 내세워 자랑하면 뚜렷하게 나타내어지지 않고 나를 옳다고 하면 그 착한 것도 드러나지 않게 된다. 내 공을 자랑하면 그 공도 소용없게 되고 혼자 우쭐거리면 곧 그 앞이 막히게 된다.
이와 같은 부자연스러운 행위를 무위의 도에 있어서는 먹다 남은 밥, 소용없는 행동이라 부른다. 누구나 늘 싫어하며 거들떠보지도 않기 때문에 도 있는 사람은 그 곳에 몸을 두지 않는다.
인생의 목적은 돈이나 지위, 또는 지식을 얻고 이름을 높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것들은 도리어 사람됨의 길을 막을 수 있다. 돈이 보이는 자는 어리석은 자요, 지위를 뽑내는 자는 일꾼이 못된다. 사람은 가진 것과 높은 것과 아는 것과 잘난 것을 문제삼지 않는다. 그런 것은 결국 먹다 남은 쉰 밥이요 낡아빠진 겉치레다. 참 사람은 먹을 것과 입을 것에 끌려다니지 않는다.
자연은 부귀공명에 마음이 없다. 다만 사람이 사람됨이 자연인 것 뿐이다. 자연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발돋움한다고 키가 한 자 크는 것도 아니고 발을 넓힌다고 빨리 걸어지는 것도 아니다. 도리어 억지는 자연을 버리고 무리하게 날뛰면 생명이 위태롭다. 사람은 저절로 되게 마련이다.
인격의 완성은 억지와 무리로 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를 버리고 순리를 따를 때 이루어진다. 자기를 버리는 데 할 일이 없고 진리를 따르는데 잡념이 없다. 도는 무위자연이다.
길은 비어야 길이지 막히면 길이 못된다. 비우고 비우면 진리가 보이고 따르고 따르면 생명을 얻는다. 도는 진리와 생명이지 먹고 배설하는 것이 아니다.
有物混成, 先天地生, 寂兮료兮, 獨立不改, 周行而不殆, 可以爲天下母, 吾不知其名, 字之曰道, 强爲之名曰大, 大曰逝, 逝曰遠, 遠曰反, 故道大, 天大, 地大, 王亦大, 域中有四大, 而王居其一焉,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유물혼성, 선천지생. 적혜요혜, 독립불개, 주행이불태, 가이위천하모 오부지기명, 자지왈도, 강위지명왈대. 대왈서, 서왈원, 원왈반,고도대, 천대, 지대, 왕역대, 역중유사대, 이왕거기일언. 인법지, 지법천, 천법도, 도법자연.
혼돈하여 하나가 된 그 무엇이 천지가 생기기 이전부터 존재해 있었다. 그것은 고요하여 소리도 없고, 아득하여 모양도 없고 어느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어느 것으로도 변하지 않으며 삼라만상에 두루 나타나 잠시도 쉬는 일이 없다. 그것을 만물의 어머니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실상 그 이름마저 알 수 없다. 임시로 이름 지어 도라 하고, 억지로 이름 붙여 크다 하자. 이 큰 것은 크기 때문에 흘러 움직이고 흘러 움직이면 끝이 안 보이는 넓이를 갖게 되고 멀고 먼 넓이를 가지면 또 본래의 근원으로 되돌아간다. 이리하여 도는 큰 것이라 불리지만 큰 것으로는, 하늘도 크고, 땅도 크고, 제왕도 또한 크다. 이 세상에는 네 가지 큰 것이 있는데 제왕이 그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 제왕은 인류의 지배자로서 땅의 참모습을 본받고 땅은 하늘의 참모습을 본받으며 하늘은 다시 도의 참모습을 본받는다. 그리고 도의 본 모습은 자연이기 때문에 도는 다만 자연을 본받아 자유자재 한다.
重爲輕根, 靜爲躁君, 是以聖人終日行不離輜重, 雖有榮觀, 燕處超然, 柰何萬乘之主, 而以身輕天下, 輕則失本, 躁則失君.
중위경근, 정위조군. 시이성인. 종일행, 불리치중, 수유영관, 연처초연. 내하만승지주, 이이신경천하. 경즉실본, 조즉실군.
무거운 것은 가벼운 것의 근본이 되고 고요한 것은 시끄럽고 조급한 것의 주인이 된다. 그러므로 무위의 성인은 종일 길을 가도 짐을 몸에서 버리지 않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에도 초연하다. 어찌 제왕이 된 자가 세상에 대해 몸을 가볍게 움직이겠는가. 경솔하게 행동하면 자신의 근본을 잃게 되고 조급하면 지배자로서의 지위를 잃게 된다.
--산은 무거워 만물의 힘이 될 수 있고 물은 고요하여 만물을 비출 수가 있다. 성인의 말은 산같이 무거워 한번 입에서 떨어지면 만인이 그 말을 믿을 수 있게 되고 성인의 마음은 가라앉은 호수처럼 온 세상의 그림자가 그 위에 비춘다. --이처럼 말의 무게와 마음의 평정을 가진 사람만이 온 천하를 다스리는 임금이 될 수가 있다.
善行, 無轍迹, 善言, 無瑕謫, 善數, 不用籌策, 善閉, 無關楗而不可開, 善結, 無繩約而不可解, 是以聖人常善求人, 故無棄人, 常善救物, 故無棄物, 是謂襲明, 故善人者, 不善人之師, 不善人者, 善人之資, 不貴其師, 不愛其資, 雖智大迷, 是謂要妙.
선행, 무철적, 선언, 무하적, 선수, 불용주책. 선폐, 무관건이불가개, 선결, 무승약이불가해, 시이성인, 상선구인, 고무기인, 상선구물, 고무기물. 시위습명, 고선인자, 불선인지사, 불선인자, 선인지자, 불귀기사, 불애기자, 수지대미. 시위요묘
잘 가는 사람은 지나간 흔적을 남기지 않고 말을 잘하는 사람은 말에 흠이 없으며 계산을 잘하는 사람은 계산기 따위를 쓰지 않는다. 문을 잘 닫는 사람은 빗장을 걸지 않아도 열리지 않게 하고 잘 묶는 사람은 매듭을 짓지 않아도 풀어지지 않게 한다. 그러므로 무위의 성인은 사람을 구하여 잘 살려 나가며 어떤 사람도 버리는 일이 없고 항상 물건을 잘 다스려 쓰되 어떤 물건도 버리는 일이 없다. 이것을 밝은 지혜를 몸에 지니고 있다고 한다. 착한 사람은 착하지 않은 사람이 본받는 스승이 되고, 착하지 않은 사람은 착한 사람의 반성에 도움이 된다. 스승을 귀히 여기지 않고 내 몸을 귀히 여기지 않으면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알 바를 전혀 모르게 된다.
이것을 신비한 진리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은 본래 빛이요, 사물은 본래 힘인데 빛은 스스로 밝고 힘은 저절로 오르니 성인들이 무엇을 밝히고 무슨 힘을 쓰라. 힘은 스스로 오르고 빛은 스스로 밝을 뿐이로다. 고로 된 이는 못된 이의 스승이고 못된 이는 된 이의 제자니 그 스승을 높이지 않고 그 제자를 감싸지 않으면 비록 아는 것 같으나 크게 흐림이니 믿음의 세계는 되고 못된 것이 서로 돌보고 서로 높이어 크게 오르고 밝히리로다.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爲天下谿, 常德不離, 復歸於영兒, 知其白, 守其黑, 爲天下式, 爲天下式, 常德不특, 復歸於無極, 知其榮, 守其辱, 爲天下谷, 爲天下谷, 常德乃足, 復歸於樸, 樸散則爲器. 聖人用之, 則爲官長, 故大制不割.
지기웅, 수기자, 위천하계. 위천하계, 상덕불리, 복귀어영아. 지기백, 수기흑, 위천하식, 위천하식, 상덕불특, 복귀어무극, 지기영, 수기욕, 위천하곡. 위천하곡, 상덕내족, 복귀어박. 박산즉위기. 성인용지, 즉위관장, 고대제불할.
수컷의 성질이 어떠한 것인가를 알고, 암컷의 유연함을 지키어 나가면, 천하의 모든 것이 흘러드는 골짜기가 되고 천하가 모여드는 큰 골짜기가 되면 영원불변의 덕이 깃들어 순수한 아이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밝고 명확함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고 어둡고 아득함을 지켜 나가면 온 천하가 본받는 사표가 되고 온 천하가 본받는 사표가 되면 영구불변의 덕에 어긋남이 없이 한없는 도의 세계의 근원으로 돌아가게 된다. 속세의 영화가 어떤 것인가를 알고 욕된 생활을 참고 견뎌내면 온 세상이 돌아오는 큰 골짜기가 되고 온 천하가 돌아오는 큰 골짜기가 되면 영구불변의 무위의 덕으로 가득 차 있어 손대지 않은 통나무의 소박함으로 뒤돌아가게 된다. 통나무를 쪼개어 그릇을 만들 수 있듯이 소박함을 끊어 인재를 만들 수 있지만 성인이 그들을 쓸 때는 고작 한 분야의 우두머리로 쓸 뿐이다. 그러므로 크게 쓸 때에는 인위적으로 손대지 않고 통나무의 소박함을 그대로 두는 것이다.
--부귀영화의 존귀함을 알면서도 빈천 오욕에 멎어 있는 사람이 있다. 온 천하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바다와 같이 낮은데 처하여 온 세상을 받아들이는 어머니와 같은 사람이다.
將欲取天下而爲之, 吾見其不得已, 天下神器, 不可爲也, 爲者敗之, 執者失之, 故物, 或行或隨, 或허或吹, 或强或羸, 或挫或--, 是以聖人去甚, 去奢, 去泰.
장욕취천하이위지, 오견기부득이. 천하신기, 불가위야, 위자패지, 집자실지. 고물, 혹행혹수, 혹허혹취, 혹강혹리, 혹좌혹휴, 시이성인거심, 거사, 거태.
세상을 장악하여 다스려 보려 하여도 그것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안다. 세상은 신비로운 것이어서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해볼 수 없는 것이다. 어떻게 잘 해보려고 해도 실패하게 되고 잡으려고 하면 놓치게 되고 스스로 앞서가는 것도 있고, 뒤만 따라가는 것도 있다. 숨을 내쉬기도 하고 들이쉬기도 하며, 강한 것도 있고 약한 것도 있으며, 위에 얹히는 것도 있고 아래로 떨어지는 것도 있다. 그러므로 성인은 지나친 것을 버리고 사치를 버리고 교만함과 태만함을 버린다.
--천하(세상)은 사람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바다와 같아서 아무리 유능한 뱃사공이라고 해도 바다를 건너기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바다를 얕보거나 깔보면 그야말로 바다에 휩쓸리고 삼키우고 부서지고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다를 건너려는 사람은 만방의 준비를 갖추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지만 모든 준비를 갖춘 후에도 언제나 내 힘을 넘어서는 현실 앞에서 겸허하게 머리를 숙일 줄 알아야 한다.
以道佐人主者, 不以兵强天下, 其事好還, 師之所處, 荊자생焉, 大軍之後, 必有凶年, 善有果而已, 不敢以取强, 果而勿矜, 果而勿伐, 果而勿驕, 果而不得已, 果而勿强, 物壯則老, 是謂不道, 不道早已.
이도좌인주자, 불이병강천하. 기사호환. 사지소처, 형극생언, 대군지후, 필유흉년. 선자과이이. 불감이취강. 과이물긍, 과이물벌, 과이물교, 과이부득이, 과이물강. 물장즉로. 시위부도. 부도조이.
무위자연의 도로 임금을 보좌하는 사람은 무력으로 나라를 강하게 만들려 하지 않는다. 무력은 무력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군대가 주둔한 곳에는 가시나무가 자라고 큰 전쟁이 있은 후에는 반드시 흉년이 들게 된다. 정치를 잘하는 사람은 이루어 놓은 결과 이상의 것을 취하려 하지 않고, 자랑하는 태도를 갖지 않고, 공을 내세워 교만하지 않으며, 어찌할 수 없는 필연의 도리에 따라가되 그 이상 강대해지려 하지 않는다. 만물은 장성하면 반드시 쇠퇴하기 마련이니 강성한 것에 집착하는 것은 도에 벗어나는 것이다. 도에 벗어나는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나무 열매는 바람과 힘을 따는 것이 아니다. 햇빛과 다스림으로 무르익혀야 한다. 지혜와 사랑으로 나라를 무르익히는 사람은 바람(욕망)과 힘(폭력)으로 천하를 굳게 해서는 안된다.
夫佳兵者, 不祥之器, 物或惡之, 故有道者不處, 君子居則貴左, 用兵則貴右, 兵者, 不祥之器, 非君子之器, 不得已而用之, 괄淡爲上, 勝而不美, 而美之者, 是樂殺人, 夫樂殺人者, 則不可得志於天下矣, 吉事尙左, 凶事尙右, 偏將軍居左, 上將軍居右, 言以喪禮處之, 殺人之衆, 以哀悲泣之, 戰勝. 以喪禮處之.
부가병자, 불상지기, 물혹악지, 고유도자불처, 군자거즉귀좌, 용병즉귀우. 병자, 불상지기, 비군자지기. 부득이이용지, 염담위상, 승이불미. 이미지자, 시락살인. 부락살인자, 즉불가이득지어천하의. 길사상좌, 흉사상우. 편장군거좌, 상장군거우. 언이상례처지, 살인지중, 이애비읍지. 전승이상례처지.
무기는 모두 불길한 것으로 누구나 항상 싫어하는 것이니 도를 아는 사람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군자가 자연에 따라 일할 때는 왼쪽을 귀히 여기고, 어쩔 수 없이 군사를 일으켜 전쟁을 할 때면 오른쪽을 귀하게 여긴다. 무기라는 것은 불길한 것이므로 군자가 사용하는 수단이 아니다. 군자가 어쩔 수 없이 무기를 사용함에 있어서는 욕심 없이 담담한 것을 제일로 삼고 승리를 거두어도 아름답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승리를 아름답게 여기는 자는 사람 죽이는 일을 즐기는 자이다. 무릇 살인을 즐기는 자는 천하의 뜻을 이룰 수 없다. 좋은 일에는 왼쪽을 귀하게 여기고 흉한 일에는 오른쪽을 귀하게 여긴다. 직접 병사를 지휘하는 장군은 왼쪽에 자리하고 전군을 통솔하는 장군은 오른쪽에 자리한다. 이는 장례의 예에 따라 그렇게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을 죽이게 되기 때문에 슬픈 마음으로 전쟁에 임하고 승리를 하였다 하여도 장례식과 같이 예를 지켜나가는 것이다.
--싸움은 불과 같다. 불은 모든 것을 순식간에 불태운다. 어쩔 수 없이 불이 타는 경우라 할지라도 타다 남은 잿더미를 바라보며 기뻐해서는 안된다.
道常無名, 樸, 雖小, 天下莫能臣也,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賓, 天地相合, 以降甘露, 民莫之令而自均, 始制有名, 名亦旣有, 夫亦將知止, 知止, 可以不殆, 譬道之在天下, 猶川谷之於江海.
道常無名, 樸雖小, 天下莫能臣也,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賓.天地相合以降甘露, 民莫之令而自均, 始制有名.名亦旣有, 夫亦將知止, 知止可以不殆.譬道之在天下, 猶川谷之於江海.
도상무명, 박수소, 천하막능신야, 후왕약능수지, 만물장자빈. 천지상합이강감로, 민막지령이자균, 시제유명. 명역기유, 부역장지지, 지지가이불태. 비도지재천하, 유천곡지어강해.
도는 한결 같고 이름이 없으며 이름을 초월한 것이다. 도는 손대지 않은 통나무처럼 그대로인 것이며 그것이 아무리 작다고 하더라도 천하도 감히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군왕이 만일 이러한 도를 따라 지킬 수 있다면 만물은 장차 저절로 보배가 될 것이고 천지가 서로 화합하여 단비를 내리고 백성들에게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자연히 평등하게 다스려질 것이다.
통나무가 잘리고 쪼개져 많은 기구들이 생기듯 이것저것 분별하는 이름을 가진 제도가 생겨나면 이름을 가진 것의 한계를 알게 된다. 변하는 이름에 붙들려 있지 말고 변함없는 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위태로울 것이 없다. 도 있는 사람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산골짜기의 개울이 시내가 되어 자연히 강과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것과 같다.
--집에 어른이 있듯이 천하에 도가 있으면 마치 바다를 안은 강물처럼 아무리 흘러도 넘치는 법이 없다. 산은 하늘로 덮이고 강은 바다로 끝나고 천하는 도로, 사람은 神으로 살아간다.
知人者智, 自知者明, 勝人者有力, 自勝者强, 知足者富, 强行者有志, 不失其所者久, 死而不亡者壽.
지인자지, 자지자명. 승인자유력, 자승자강. 지족자부, 강행자유지. 부실기소자구, 사이불망자수.
다른 사람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고 스스로를 아는 사람은 밝은 사람이다.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 있는 사람이고 스스로를 이기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다. 넉넉함을 아는 사람은 부유한 사람이고 힘써 행하는 사람은 뜻이 있는 사람이다. 자기의 분수를 아는 사람은 그 지위를 오래 지속하고 죽어도 잊혀지지 않는 사람은 영원토록 사는 것이다.
大道氾兮, 其可左右, 萬物恃之而生而不辭, 功成不名有, 衣養萬物而不爲主, 常無欲, 可名於小, 萬物歸焉, 而不爲主, 可名爲大, 以其終不自爲大, 故能成其大.
대도범혜, 기가좌우. 만물시지이생이불사, 공성불명유. 의양만물이불위주. 상무욕, 가명어소. 만물귀언이불위주, 가명위대. 이기종불자위대, 고능성기대.
큰 도는 넉넉하여 한 곳에 못 박혀 있지 않아 좌우로 없는 곳 없이 자유자재 한다. 만물은 도에 의해 생겨나지만 한 마디 자랑도 하지 않고 만물을 이루어 낸 공이 있지만 그 공을 내 것으로 하지 않으며 만물을 길러 내면서 그 주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항상 욕심이 없고 아무 것도 갖지 않으므로 작다고도 볼 수도 있으나 세상 만물이 그 품에 돌아와 안기어도 주인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으므로 크다고도 말할 수 있다. 도는 자신을 스스로 크다고 생각하는 일이 없기에 그 큰 것이 참으로 큰 것이 되는 것이다.
--큰 사람은 가벼운 사람이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란 결국 가지고도 자기것이라고 하지 않는 사람, 이 사람이 정말 큰 사람이다.
* 세계에서 가장 많은 것을 수집한 사람에 관한 방송 -- 30동이 더 넘는 커다란 창고에 세상의 온갖 물건을 수집하여 장차 자연사 박물관을 만들겠다는 사람이 방송에 나왔었다. 그가 가진 것은 값으로 칠 수 없는 귀중하고 값진 것들이었다. 예를 들어 운석 한 개가 250억?원이 나간다고 하였고, 한 개에 억대에서 수십억대가 되는 보석만도 수만개가 된다고 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소유한 기분이 어떤가"라는 아나운서의 질문에 그는 서슴치 않고 대답했다. "이것들이 어디 제 것입니까? 제가 어떻게 이것들을 다 소유할 수 있습니까? 제 것이라고 생각해본 지가 참 오래 되었지요. 과거에 조금 있을 때는 제 것이라고 생각되었을지 모르나 이제는 제것이라는 생각이 안됩니다. 이것들은 전부 세상 모든 사람이 것이지요."
執大象, 天下往, 往而不害, 安平太, 樂與餌, 過客止, 道之出口, 淡乎其無味, 視之不足見, 聽之不足聞, 用之不足旣.
집대상, 천하왕, 왕이불해, 안평태. 낙여이, 과객지, 도지출구, 담호기무미. 시지부족견, 청지부족문, 용지부족기.
도를 지켜 살아가면 세상 어디를 가도 방해하는 것이 없어 항상 마음이 편안하고 화평하고 태평하다. 즐거운 음악과 좋은 음식이 있는 곳에서는 지나가던 나그네도 걸음을 멈추지만 무위의 진리는 그것을 입밖에 내더라도 담담하여 세속적인 맛이 없다. 눈 여겨 바라보아도 볼 수가 없고 귀 기울여 들어보아도 들을 수가 없고 그 것은 써도 끝이 없는 무한한 기능이 있다.
--중국 사람들은 정신을 코끼리로 표시하고 물질을 소로 표시하였다. 物자는 소 옆에 깃발을 꽂아놓은 것이다. 정신은 크고 물질은 적다. 가끔 정신은 무로 표시고 물질은 유로 표시한다. 정신은 무한하고 물질은 유한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각 속에 큰 것, 작은 것 하는 양적 차이가 언제나 우리들을 물질 세계에 얽매이게 한다. 양의 사고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신의 세계를 가져야 한다.
하찮은 술잔에도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들거늘 하물며 정신의 큰 바다에 어찌 사람이 모이지 않겠는가?
將欲흡之, 必固張之, 將欲弱之, 必固强之, 將欲廢之, 必固興之, 將欲奪之, 必固與之, 是謂微明, 柔弱勝剛强, 魚不可脫於淵, 國之利器, 不可以示人.
장욕흡지, 필고장지. 장욕약지, 필고강지. 장욕폐지, 필고흥지. 시위미명, 유약승강강. 어불가탈어연. 국지이기, 불가이시인.
장차 움츠리게 하려면 잠시 펴지게 해준다. 장차 약하게 하려면 잠시 강하게 해준다. 장차 없애버릴 생각이면 잠시 흥하게 해준다. 이것을 미명이라 한다. 모든 유약한 것은 모든 강하고 강한 것을 이긴다. 물고기가 연못 밖으로 나오면 살 수 없듯이 국가를 다스리는 이기는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
--백 번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정말 이기는 것이다. 적을 죽이기 위해서는 고무줄처럼 늘여주고, 약하게 하기 위해서는 흙처럼 쌓아올리고, 빼앗기 위해서는 물고기처럼 미끼를 먹여준다. 결국 적의 약점을 길러서 스스로 쓰러지게 하는 것을 싸우지 않고 이긴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숨은 약점을 볼 수 있는 지혜와 총명이 필요하다. 숨은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면 능히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다. 햇빛이 바람보다 나그네의 옷을 벗기 듯, 지혜는 폭력보다 강하고 물이 고기를 덮듯이 사랑은 지혜보다 강하다.
○ 가장 현명한 길은 아예 처음부터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적과 내가 하나가 됨을 깨달으면 어찌 싸움이 있을 것이며 어찌 구태여 지혜가 필요하단 말인가.
道常無爲而無不爲,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化, 化而欲作, 吾將鎭之以無名之樸, 無名之樸, 夫亦將無欲, 不欲以靜, 天下將自定.
도상무위이무불위. 후왕약능수지, 만물장자화, 화이욕작, 오장진지이무명지박. 무명지박, 부역장무욕, 불욕이정, 천하장자정.
도는 항상 하는 것이 없지만 하지 않는 것도 없다. 만일 군주가 자연의 도를 따라 지켜 나가면, 만물은 저절로 생성하고 발전할 것이다. 저절로 생성하고 발전하게 만물에 맡기지 않고 인간들이 조작하려고 하면 나는 그러한 짓을 못하게 자연의 덕으로 진정시키리라. 자연의 덕은 욕심을 내지 않는다. 욕심을 부리지 않으니 고요하고, 욕심이 없어 고요하면 천하는 저절로 바르게 된다.
--백성 한 사람이 스스로 자기를 다스릴 수 있다면 도는 해서 무엇하랴. 도가 필요없는 세계야말로 참 옳은 세계이다. 자기가 자기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면 고칠래야 고칠 병도 없을 것이다.
병에 걸리는 동안은 아직 자치는 아니다. 자치와 자유는 둘이 아니다. 자유를 찾으면서도 자치가 안되면 자유는 그림의 떡이다.
上德不德, 是以有德, 下德不失德, 是以無德, 上德無爲而無以爲, 下德爲之而有以爲, 上人爲之而有以爲, 上義爲之而有以爲, 上禮爲之而莫之應, 則攘臂而잉之, 故失道而後德, 失德而後仁, 失仁而後義, 失義而後禮, 夫禮者, 忠信之薄, 而亂之首, 前識者, 道之華, 而愚之始, 是以大丈夫處其厚, 不居其薄, 處其實, 不居其華, 故去彼取此.上德不德, 是以有德. 下德不失德, 是以無德.
상덕부덕, 시이유덕. 하덕불실덕, 시이무덕. 상덕무위이무이위, 하덕위지이유이위, 상인위지이유이위, 상의위지이유이위, 상례위지이막지응, 칙양비이잉지. 고실도이후덕, 실덕이후인, 실인이후의, 실의이후례. 부례자, 충신지박, 이란지수, 전식자, 도지화, 이우지시. 시이대장부, 처기후, 불거기박. 처기실, 불거기화, 고거피취차.
최상의 덕은 덕을 의식하지 않으므로 덕이 있는 것이고, 정도가 낮은 덕은 덕에 얽매이기 때문에 덕이 없다. 최상의 덕은 무위이며 자연스럽고, 정도가 낮은 덕은 유위이며 부자연스럽다. 최상의 인은 유위이며 자연스럽고, 최상의 의는 유위이며 부자연스럽다. 최상의 예는 유위이고 그 예에 반응이 없으면 팔을 걷어 붙이고라도 예로 이끈다. 무위자연의 도가 사라지면 무위자연의 덕이 나타나고 무위자연의 덕이 사라지면 인위적인 인의 도덕이 나타나게 되고 인위적인 인의 도덕이 사라지면 인위적인 의의 도덕이 나타나게 되고 인위적인 의의 도덕이 사라지면 인위적인 예의 도덕이 나타나게 된다. 예의 도덕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참다운 마음이 엷어진 것이며 세상이 어지럽게 되는 시초가 되는 것이다. 세상의 일을 미리 내어보는 지식이란 것은 도의 알맹이 없는 겉치레와 같은 것이며 세상을 어리석고 못나게 만드는 시초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다운 사람은 두터운 쪽에 머물러 있고 엷은 곳에 머무르지 않으며 알맹이 있는 곳에 머물고 겉치레 쪽에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예와 지를 버리고 도를 택하는 것이다.
--머리는 智요, 가슴은 禮요, 배는 義요, 다리는 仁이요, 발은 德이요, 땅은 道니, 마음이 땅에 있으면 도에 통한 사람이요, 마음이 발에 있으면 덕에 통한 사람이요, 마음이 다리에 있으면 인에 통한 사람이요, 마음이 배에 있으면 의에 통한 사람이요, 마음이 가슴에 있으면 예에 통하고, 마음이 머리에 있으면 지에 통한 것이다. 마음은 아래로 가라안두새 목숨은 위로 솟구쳐 오른다. 마음이 얼마나 가라앉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목숨이 우뚝 서게 된다.
깊이 생각하고 쉽게 말하자. 깊이 땅 속으로 박힐수록 깨끗하고 쉽게 말할 수 있다.
昔之得一者, 天得一以淸, 地得一以寧, 神得一以靈, 谷得一以盈, 萬物得一以生, 侯王得一以爲天下貞, 其致之, 天無以淸, 將恐裂, 地無以寧, 將恐發, 神無以靈, 將恐歇, 谷無以盈, 將恐竭, 萬物無以生, 將恐滅, 侯王無以貴高, 將恐蹶, 故貴以賤爲本, 高以下爲基, 是以後王自謂孤, 寡, 不穀, 此非以賤爲本邪, 非乎, 故致數輿無輿, 不欲록록如玉, 珞珞如石.
석지득일자, 천득일이청, 지득일이녕, 신득일이령, 곡득일이영, 만물득일이생, 후왕득일이위천하정. 기치지일야. 천무이청, 장공렬. 지무이녕, 장공발. 신무이령, 장공헐. 곡무이영, 장공갈, 만물무이생, 장공멸. 후왕무이귀고, 장공궐, 고귀이천위본, 고이하위기, 시이후왕, 자위고과불곡. 차비이천위본사, 비호.고치수예무예. 불욕록록여옥, 낙락여석.
태초에 하나를 받아 얻은 것이 있으니 하늘이 그 하나를 받아 얻음으로 맑고, 땅이 그 하나를 받아 얻음으로 편안하며, 신은 그 하나를 받아 얻음으로 신령하고, 골짜기는 그 하나를 받아 얻음으로 가득 차며, 만물이 그 하나를 받아 얻음으로 생겨나고, 임금은 그 하나를 받아 얻음으로 천하를 곧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게 만든 것이 곧 그 하나이다. 하늘이 맑지 못하다면 아마도 찢어질 것이고 땅이 편안하지 못하다면 아마도 꺼질 것이며 신이 영험하지 못하다면 아마도 신의 기능이 끝날 것이고 골짜기가 가득하지 못하다면 아마도 세상이 메마를 것이며 만물이 생겨나지 못한다면 아마 아무 것도 없을 것이고 만일 임금이 곧게 하지 못하고 높은 것만을 귀하게 여긴다면 아마도 그 나라는 파멸할 것이다. 그러므로 낮은 것을 귀하게 하여 근본으로 삼고 높은 것은 낮은 것을 밑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임금은 스스로 외롭다 덕이 부족하다 선하지 못하다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천한 것을 근본으로 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칭송 받는 명예를 원하게 되면 도리어 명예는 없어지게 되나니 찬란하게 빛나는 옥같이 되기를 원하지 않고 대굴대굴 돌처럼 구르는 것이다.
反者, 道之動, 弱者, 道之用,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도의 움직임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이 도의 작용이다. 세상의 만물은 천지음양의 기운인 유에서 나오고 유는 형체가 없는 도인 무에서 나온다.
--노자는 언제나 무를 가지고 유를 제어하려고 한다. 그것이 도인의 태도다. 약한 것을 가지고 강한 것을 지배하는 것이 도의 작용이다. 도는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다. 도는 싸운 후에 이기는 것이 아니라 싸우기 전에 이기는 것이다. 영생은 죽은 후에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죽기전에 영생에 들어가고 나기 전에 영생에 들어간다.
上士聞道, 勤而行之,
中士聞道, 若存若亡,
下士聞道, 大笑之, 不笑不足以爲道, 故建言有之, 明道若昧, 進道若退, 夷道若뢰, 上德若谷, 大白若辱, 廣德若不足, 建德若偸, 質眞若투, 大方無隅, 大器晩成, 大音希聲, 大象無形, 道隱無名, 夫唯道, 善貸且成.
참으로 뛰어난 사람은 도를 들으면 힘써 그것을 실천하는데
중간 정도의 사람은 도를 들으면 반신반의하는 태도를 취하고
아주 정도가 낮은 사람은 도를 들으면 숫제 같잖다는 듯이 크게 웃고 만다. 그들에게 비웃음을 살 정도가 아니면 참다운 진리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격언이 있다.
참으로 밝은 길은 얼른 보기에 어두운 것 같고 앞으로 나아가는 길은 얼른 보기에 뒤로 물러나는 것처럼 보이며 펀펀한 길은 얼른 보기에 울퉁불퉁한 것처럼 보인다. 최상의 덕은 골짜기처럼 텅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고 참으로 희고 깨끗한 것은 얼른 보기에 우중충해 보이며 참으로 넓고 큰 덕은 얼른 보기에 부족한 것처럼 보인다.
확고부동한 덕은 얼른 보기에 구차스러워 보이고 참으로 진실한 덕은 얼른 보기에 절조가 없는 것처럼 보이며 다시없이 큰 네모 난 것은 그 구석을 가지지 않는다. 참으로 위대한 인물은 보통 사람보다 그 성취가 늦고 다시없이 큰 소리는 도리어 그 소리가 귀에 잘 들리지 않으며 더없이 큰 형체를 가진 것은 도리어 그 모습이 눈에 띄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 말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도는 숨어서 모양이 보이지 않고 사람의 말로는 이름을 붙일 수가 없는 것이다. 참으로 도란 것은 만물에게 아낌없이 베풀어 주고 그러면서 그 존재를 온전히 해준다.
--도를 들으면 실천하는 사람, 회의하는 사람, 천대하는 사람, 세상은 언제나 세 종류의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천대하는 사람이 없으면 도라고 할 것도 없다. 도는 길바닥 같아서 언제나 짓밟히게 마련이다.
도가 되어 짓밟히기를 싫어하면 아직 도인이라고 할 수가 없다. 도의 세계는 알기 쉬운 세계가 아니다. 범인의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어두운 세계다. 도의 세계는 앞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반성을 통해서 뒤로 돌아간다.
도의 세계는 평탄한 길이 아니라 험한 길이다. 도에 통한 사람은 골짜기같이 깊고 숯덩어리같이 깨끗하다. 하늘같이 온전하여서 어딘가 흠이 있는 것 같고 언제나 한가하여 게으른 것 같다.
순박한 사람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 같고 큰 사람은 모가 없는 큰 그릇같이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소리가 너무 크면 도리어 감각을 마비시켜 들리지 않는 것처럼 정신의 꼴은 언제나 희미하여 보이지 않게 마련이다. 도인은 언제나 숨어서 나타남이 없고 남의 거름이 되어 남을 살리는 것 뿐이다.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萬物負陰而抱陽, 沖氣以爲和, 人之所惡, 唯孤, 寡, 不穀, 而王公以爲稱, 故物, 或損之而益, 或益之而損, 人之所敎, 我亦敎之, 强梁者, 不得其死, 吾將以爲敎父.
도가 하나의 기운을 낳고 하나의 기운이 나뉘어 음과 양 두 기운을 낳고 음과 양 두 기운이 합하여 제 삼의 기운이 되었고 그 세 기운이 만물을 낳는다. 만물은 음의 기운을 등에 지고 양의 기운을 앞에 안아 충화의 기운에 의해 조화를 이루어 가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외롭고 부덕하며 선하지 않은 것을 싫어하지만 임금은 스스로 외롭고 부덕하며 불선함을 숨기지 않는다. 세상 모든 것은 손해가 이익이 되기도 하고 이익이 손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교훈으로 삼는 것을 나 또한 교훈으로 삼고 싶다. 힘을 믿고 앞세우는 자는 제 명대로 살지 못한다. 나는 이것을 가르침의 교훈으로 삼으려 한다.
*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 만물은 등 뒤에 음을 지고 양을 안고 있으며, 기를 혼합하여 조화를 이룬다. 고아가 되는 것, 가난한 것, 필수품이 형편 없이 제공되는 것은 사람들 대부분이 싫어하는 것이지만, 왕과 공은 그들 자신을 그렇게 칭한다. 함으로 "자주 사물은 그것들을 감소시키고자 함으로써 증가되고 그것들을 증가시키고자 함으로써 감소된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의 가르침에 이용한 이 경구를 나 또한 내 가르침에서 사용하고자 한다. 과격한 사람은 제 명에 죽지 못한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를 스승으로 삼을 것이다.
--나도 가르치는 것이 나의 사명이지만 가르치는데는 관용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고 내가 보니 세상에는 자기의 욕심을 남에게 강요하는 독재자처럼 보기 싫은 것은 없다. 그런 놈은 죽어도 제대로 죽지 못할 것이니 사랑을 가르침의 줄거리로 나는 삼고자 한다.
天下之至柔, 馳騁天下之至堅, 無有入無간, 吾是以知無爲之有益, 不言之敎, 無爲之益, 天下希及之.
세상에서 제일 무르고 연한 물이 세상에서 제일 강하고 단단한 쇠며 돌을 마음대로 다루고 자신의 일정한 모양을 갖지 않는 물은 틈이 없는 곳으로도 마음대로 스며든다. 물의 예로 나는 부드럽고 형태에 구애받지 않는 삶 무위의 처세의 유익함을 아는 것이다. 말을 하지 않는 가르침과 무위의 삶의 유익함의 예로 이 세상에서 물을 따를 만한 것이 없다.
--스스로 낮추는 자가 높아지고 스스로 적다고 하는 자가 큰 자가 된다. 그런고로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크고, 하는 것보다 하는 것 없음이 더 남에게 유익을 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남을 감화시키는 것은 그 사람의 인간됨이다.
名與身孰親, 身與貨孰多, 得與亡孰病, 是故甚愛必大費, 多藏必厚亡, 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명예와 생명 중 어느 것이 절실한가. 생명과 재산 중 어느 것이 소중한가. 얻는 것과 잃는 것 중 어느 것이 괴로운가. 지나치게 바깥 것에 집착을 하면 생명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고 너무 많이 재물을 쌓아 두면 결국은 그 만큼 잃게 된다. 만족할 줄 알면 부끄러운 변을 당하는 일이 없고 적당히 그칠 줄 알면 위험한 꼴을 당하지 않아 오래도록 편안히 있을 수 있다.
--명예와 신체, 재산과 신체 어느 것이 중요한가 하고 노자는 화가 나서 묻는다. 명예, 재산보다 신체를 더 중하게 아는 것이 노자의 기초 개념이다. 명예와 재산을 위해서 신체가 있는 것이 아니요, 신체를 위해서 명예와 재산이 있는 것이다. 명예란 말 대신에 감투라고 하고 재산이라는 말 대신에 돈이라고 해도 좋고 더 비근하게 옷과 밥이라고 해도 좋다.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울까에 미쳐 날뛰지 말라는 것이 노자의 생각이다. 색을 너무 좋아하면 生이 낭비요, 식을 너무 좋아하면 命의 단축이다. 색을 금할 줄 알면 인격이 고상해지고, 식을 제한할 줄 알면 오래 살 수 있다.
노자의 도는 식색을 금지하고 제한하는 데서 시작된다. 식욕과 색욕, 먹는 문제와 남녀문제를 떠나서 인생을 논하는 것은 공상이요 망상이다.
종교와 철학은 정신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 아니라 신체의 문제다. 신체를 떠나서 어디 정신이 있을 것인가. 노자 철학의 핵심은 신체다. 신체를 멸시하거나 무시하는 사상은 도가 아니다. 식색을 초월하는 도가 신체의도요 노자의 道이다.
大成若缺, 其用不弊, 大盈若沖, 其用不窮, 大直若屈, 大巧若拙, 大辯若訥, 躁勝寒, 靜勝熱, 淸靜爲天下正.
참으로 완성되어 있는 것은 어딘가 잘못 되어진 것처럼 보이나, 아무리 써도 못 쓰게 되는 일이 없으며, 참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언뜻 비어 있는 듯 보이나 쓰고 또 써도 부족함이 없다. 참으로 곧은 것은 도리어 굽은 것처럼 보이고, 참으로 잘하는 것은 어딘가 서툴러 보이며, 참으로 잘 하는 말은 어눌한 것처럼 들린다. 분주하게 움직이면 추위를 이길 수 있고, 고요히 있으면 더위가 물러가게 된다. 그러므로 맑고 고요하면 천하의 기준이 된다.
--노자는 無를 좋아한다. 無는 크기 때문이다. 無는 무한이다. 무슨 방명에서든지 크게 성공한 사람은 언제나 그 방면에 여유가 있다. 유유자적 자기 되에 자족하고 있으니 그 도가 이만 지나가도 해질리가 없다. 무엇에나 통한 사람은 그 방면에 창조력을 가지고 있다. 자기 속에서 자기의 전공이 샘처럼 솟구쳐 오르니 아무리 쓴다고 한들 끝이 있을까. 정말 정직한 사람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가끔 거짓말을 하는 때도 있다. 그것이 정말 정직한 것이 아닐까. 정말 잘하는 사람은 겉으로는 엉터리 같고 너무도 엉성한 것 같다. 그것은 자기 전공에 너무도 자신이 있는 까닭이겠다. 정말 말 잘하는 사람은 좀처럼 말하려고 들지 않는다.
天下有道, 각走馬以糞, 天下無道, 戎馬生於郊, 禍莫大於不知足, 구莫大於欲得, 故知足之足常足矣.
천하에 도가 있으면, 병마는 거름 내는 농마로 바뀌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농마도 징발되어 병마가 된다. 만족할 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환난은 없고 얻으려고만 하는 욕심보다 더 큰 허물은 없다. 그러므로 있는 그대로를 만족할 줄 알면 언제나 부족함이란 없다.
남이 원하는 것을 가지려 하는 것보다 커다란 유혹은 없다. 罪莫大於可欲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보다 커다란 재앙은 없다. 禍莫大於不知足
사람들이 더 많이 얻고자 하는 것보다 더 큰 불길한 악의 조짐은 없다. 咎莫大於欲得
--만족할 줄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영원히 만족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이곳에서 불만을 가진 사람이 다른 곳에 가면 만족할 것 같아도 실지로 가보면 그렇지 않다.
不出戶, 知天下, 不규유, 見天道, 其出彌遠, 其知彌少, 是以聖人不行而知, 不見而名, 不爲而成.
집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세상을 알며, 창으로 내다보지 않아도 하늘의 이치 알게 된다. 밖으로 알아보려고 나가면 나갈수록 참 지식은 작아져 아는 것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성인은 나돌아다니지 않아도 참다운 것을 알고 눈으로 보지 않아도 이름을 붙일 수 있으며 힘쓰지 않아도 절로 이루게 된다
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 取天下, 常以無事, 及其有事, 不足以取天下.
학문을 하면 지식이 나날이 늘어 가고 도를 행하면 날마다 욕심이 줄어든다. 줄이고 또 줄이면 무위에 이른다. 무위에 이르면 하지 않아도 못함이 없다. 세상은 언제나 무위로써만 얻게 된다. 일을 꾸미면 천하를 얻을 수 없다.
聖人無常心, 以百姓心爲心, 善者吾善之, 不善者吾亦善之, 德善, 信者吾信之, 不信者吾亦信之, 德信, 聖人在天下, 歙歙(흡흡)爲天下渾其心, 百姓皆注其耳目 聖人皆孩之.
성인은 변하지 않는 고정된 마음이 없고 모든 백성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한다. 성인은 선한 사람은 선한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선하지 못한 사람도 선한 사람으로 받아들인다. 이것은 성인의 덕이 참으로 선하기 때문이다. 진실한 사람도 진실한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진실하지 못한 사람도 진실한 사람으로 받아들인다. 이것은 성인의 덕이 참다운 진실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성인이 천하를 다스리는 데는 자기 개인의 주의와 주견을 세우지 않고 다만 온 백성의 마음을 모아 자기의 마음을 삼는다. 그래서 백성은 모두 성인의 이목을 주시하지만 성인은 모든 백성을 무지 무욕의 어린아이 같게 한다.
* 百姓皆注其耳目 聖人皆孩之 : 백성이 항상 그들의 눈과 귀를 기울인다. 성인은 항상 유아가 보고 듣는 것과 같이 보고 듣는다. ☞
出生入死, 生之徒十有三, 死之徒十有三, 人之生, 動之死地, 亦十有三, 夫何故, 以其生生之厚, 蓋聞善攝生者, 陸行不遇시虎, 入軍不被甲兵, 시無所投其角, 虎無所措其爪, 兵無所容其刃, 夫何故, 以其無死地.
사람들은 삶에서 나와 죽음으로 들어간다. 오래 사는 사람이 열 명중에 세 명쯤 있고, 일찍 죽는 사람도 열 명중에 세 명쯤 있다. 또한, 오래 살 수 있는데도 공연히 움직여 죽음으로 가는 사람도 열 명중에 세 명쯤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은 너무 삶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삶을 잘 지켜 길러나가는 자는 육지를 여행해도 외뿔소나 호랑이를 만나지 않고 군대에 들어가도 갑옷을 입지 않는다. 외뿔소도 그 뿔을 들이밀 틈이 없고, 호랑이도 발톱을 들이댈 틈이 없으며. 병사도 칼날을 쓸 틈이 없기 때문이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그에게는 죽음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나와서 학생이 되고 죽어서 선생이 된다.
道生之, 德畜之, 物形之, 勢成之, 是以萬物莫不存道而貴德, 道之尊, 德之貴, 夫莫之命而常自然, 故道生之, 德畜之, 長之育之, 亭之毒之, 養之覆之,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元德.
만물은 도에서 나오고 덕이 그들을 기르고 물체마다 형체가 있게 하며 환경에 따라 그들을 성장시킨다. 만물은 도를 존경하지 않는 것이 없고 그 덕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없다. 도를 존경하는 것과 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누가 시켜서가 아닌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에서 태어나고 덕이 그를 기르고 생장시키고 육성시키며 형태와 질을 주어 기르고 돌봐 준다. 도는 만물을 낳지만 소유하려 하지 않고 만들었지만 자랑하지 않고 길러내면서 지배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을 현묘한 덕이라 한다.
天下有始, 以爲天下母, 旣得其母, 以知其子, 旣知其子, 復守其母, 沒身不殆, 塞其兌, 閉其門, 終身不勤, 開其兌, 濟其事, 終身不救, 見小曰明, 守柔曰强, 用其光, 復歸其明, 無遺身殃, 是爲習常.
세상에는 처음이 있으니 그것을 천하의 어머니라 한다. 이미 모체를 알았으니 돌이켜 그 자식을 알 수 있다. 이미 자식을 알고 돌이켜 그 어머니를 지키면 몸이 다할 때까지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 욕망의 구멍을 막고 문을 잠그면 몸이 다할 때까지 근심이 없을 것이고 욕망의 구멍을 열고 번거로움을 더하면 몸이 다하도록 고난을 벗어나지 못한다. 작은 것을 잘 보는 것을 밝다고 하고 부드러움을 지켜 나가는 것을 강하다고 한다. 그 빛을 이용하여 밝음으로 돌아간다면 몸에 재앙이 닥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것을 떳떳한 도를 지키는 것이라 한다.
使我介然有知, 行於大道, 唯施是畏, 大道甚夷, 而民好徑, 朝甚除, 田甚蕪, 倉甚虛, 服文綵, 帶利劍, 厭飮食, 財貨有餘, 是謂道과, 非道也哉.
나에게 약간의 지혜가 있다면 무위의 큰길을 거닐며 오직 사도에 잘 못 빠질까 두려워 할 것이다. 대도는 평탄한데 사람들은 위험한 지름길을 좋아한다. 조정은 깨끗한데 농촌은 황폐하고 창고는 텅 비어 있다.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허리엔 날카로운 칼을 찾으며 맛있는 음식을 싫도록 먹고 재물은 남아돈다. 이러한 것을 도둑의 사치라 한다. 어찌 도라고 할 수 있겠는가.
--노자는 사도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 한다고 했다. 그 시대에도 부유한 도둑이 있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善建者不拔, 善抱者不脫, 子孫以祭祀不輟, 修之於身, 其德乃眞, 修之於家, 其德乃餘, 修之於鄕, 其德乃長, 修之於國, 其德乃豊, 修之於天下, 其德乃普, 故以身觀身, 以家觀家, 以鄕觀鄕, 以國觀國, 以天下觀天下, 吾何以知天下然哉, 以此.
확고히 세운 것은 쉽게 뽑히지 않고 제대로 안은 것은 벗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도를 지키어 나가면 자손의 제사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도로 몸을 다스리면 그 덕은 참된 것이 되고 도로 가정을 다스리면 그 덕은 여유가 있게 되고 도로 고을을 다스리면 그 덕은 오래도록 이어지고 도로 나라를 다스리면 그 덕은 나라를 풍족히 하고 도로 천하를 다스리면 그 덕은 천하에 두루 미친다. 그러므로 몸으로 몸을 보고 가정으로 가정을 보고 고을로 고을을 보고 나라로 나라를 보고 도의 세계관으로 세상을 본다. 무엇으로 세상이 그리되는 것을 알 수 있는가. 도의 광대무변한 효능에 의해 알 수 있다. 자연의 도가 아닌 것은 곧 막힌다.
含德之厚, 比於赤子, 蜂채훼蛇不석, 猛獸不據, 攫鳥不搏, 骨弱筋柔而握固, 未知牝牡之合而全作, 精之至也, 終日號而不사, 和之至也, 知和曰常, 知常曰明, 益生曰祥, 心使氣曰强, 物壯則老, 謂之不道, 不道早已.
덕을 두터이 품은 사람은 어린아이와 같아 벌도 전갈도 뱀도 쏘거나 물지 않고 맹수도 덤비지 않고 사나운 새도 덮치지 않는다. 뼈는 약하고 근육은 부드럽지만 쥐는 힘은 강하다. 암수의 교합에 대해 아직 모르지만, 생식기가 저절로 일어서는 것은, 정기가 극치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종일을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 것은, 조화가 극치의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조화를 아는 것을 변함이 없는 도라 하고, 변함없는 도를 아는 것을 밝은 지혜라 한다. 무리하여 연명하는 것을 좋지 못한 징조라 하고, 마음으로 기를 다스려 쓰는 것을 강하다고 한다. 만물의 기세가 너무 왕성하면 곧 쇠퇴하는 것을, 일컬어 영원히 변치 않는 도가 아니라 한다. 자연의 도가 아닌 것은 금방 그치고 만다.
--노자는 인생의 이상을 어린아이로 본다. 어린애의 세계는 상대의 세계가 아니다. 그들에게는 생명의 기운이 가득 차 있다.
知者不言, 言者不知, 塞其兌, 閉其門, 挫其銳, 解其分, 和其光, 同其塵, 是謂玄同, 故不可得而親, 不可得而疏, 不可得而利, 不可得而害, 不可得而貴, 不可得而賤, 故爲天下貴.
참으로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참으로 알지 못한다. 감각의 구멍을 막고 욕망의 문을 닫으며 예리함은 무디게 하고 복잡함은 풀어 없애며 앎의 빛을 흐리게 하여 혼탁한 먼지와 동화된다. 이것을 도와의 현묘한 합일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현묘한 합일을 이룬 사람은 얻어 친근히 여기지 않고, 소홀히 여기지도 않으며 얻어서 이롭다 여기지 않고, 해롭다 여기지도 않으며 얻어서 귀히 여기지 않고, 천히 여기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천하에 더할 수 없는 가치가 된다.
--정말 값진 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속이 텅 비어서 밖으로만 헤매다가 사랑에 빠지고 미움에 잡히고 돈에 끌리고 남에게 해를 끼치며 권력에 얽매이고 백성을 천대하여 언제나 억압을 짓고 상대에 빠져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以正治國, 以奇用兵, 以無事取天下, 吾何以知其然哉, 以此, 天下多忌諱, 而民彌貧, 民多利器, 國家滋昏, 人多伎巧, 奇物滋起, 法令滋彰, 盜賊多有, 故聖人云, 我無爲而民自化, 我好靜而民自正, 我無事而民自富, 我無欲而民自樸.
나라는 정의로 다스려야 하고 전쟁은 기이한 계교로 한다. 하지만 천하는 행하지 않음으로 얻을 수 있다.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하면 이것에 의해서다. 세상에 규제하는 것이 많을수록 백성들은 가난해 지고 백성에게 문명의 이기가 많을수록 나라는 혼란에 빠지고 사람들이 기교를 많이 부릴수록 기이한 물건이 많이 나오고 법령이 많이 정비되면 될 수록 도둑은 더 많이 늘게 된다. 성인이 말하기를, 내가 무위로 대하면 백성들은 감화되고 내가 고요히 있는 것을 좋아하면 백성이 바르게 되고 내가 무위무사하면 백성들은 저절로 풍족해 지고 내가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백성들이 통나무처럼 순박해진다.
其政悶悶, 其民淳淳, 其政察察, 其民缺缺, 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孰知其極, 其無正, 正復爲奇, 善復爲妖, 人之迷, 其日固久, 是以聖人方而不割, 廉而不귀, 直而不肆, 光而不燿.
정치가 대범하면 백성들이 순박해 지고 정치가 분명하면 백성들이 다투게 된다. 화는 복이 의지하는 곳이고 복은 화가 숨는 곳이다. 누가 그 궁극을 아는가. 절대적인 올바름이란 없다. 바른 것이 기이한 것이 되고 선한 것이 요사한 것으로 변한다. 사람들이 상대성을 깨닫지 못한지 오래다. 그래서 성인은 반듯하지만 남에게 그리 되라 하지 않고 자신이 청렴하다고 남 또한 그렇게 만들려 하지 않고 자신이 바르다고 그대로 밀고 나가려 하지 않고 영지의 빛을 간직하고도 내 비치지 않는다.
治人事天莫若嗇, 夫唯嗇, 是以早服, 早服, 謂之重積德, 重積德, 則無不克, 無不克, 則莫知其極, 莫知其極, 可以有國, 有國之母, 可以長久, 是謂深根固저, 長生久視之道.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검소함이다. 오직 검소한 것을 일찍 도를 따른다 하고 일찍 도를 따르는 것을 덕을 쌓는다고 한다. 덕을 많이 쌓으면 극복하지 못할 것이 없게 되고 극복 못할 것이 없으면 아무도 그 끝을 알지 못한다. 무한한 기능을 가지게 되면 나라를 보존할 수 있다. 나라의 어머니인 검소함이 나라를 오래 보존한다. 이것을 뿌리를 깊게 하고 근본을 굳게 하여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도라 한다.
治大國, 若烹小鮮, 以道리天下, 其鬼不神, 非其鬼不神, 其神不傷人, 非其神不傷人, 聖人亦不傷人, 夫兩不相傷, 故德交歸焉.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마치 작은 물고기를 삶는 것과 같다. 도로 세상을 다스리면 귀신도 신령한 힘을 잃는다. 귀신이 힘을 잃은 것이 아니라 그 힘이 사람을 해치지 않는 것이다. 귀신의 힘이 사람을 해치지 않을 뿐더러 성인도 역시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귀신과 성인이 서로 해치지 않으므로 그 덕이 어울려 백성에게 돌아간다.
大國者下流, 天下之交, 天下之牝, 牝常以靜勝牡, 以靜爲下, 故大國以下小國, 則取小國, 小國以下大國, 則取大國, 故或下以取, 或下而取, 大國不過欲兼畜人, 小國不過欲入事人, 夫兩者各得其所欲, 大者宜爲下.
큰 나라는 강의 하류와 같아서 세상의 모든 흐름이 만나는 곳이고 또한 천하가 사모하는 암컷이기도 하다. 암컷은 항상 고요함으로 수컷을 이기고 고요함으로 항상 아래에 있다. 큰 나라가 작은 나라에 자신을 낮추면 작은 나라를 얻게 되고 작은 나라가 큰 나라에게 자신을 낮추면 큰 나라가 그를 받아들인다. 어떤 것은 낮은 자세로서 남을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낮은 자세로써 남에게 받아 들여 진다. 큰 나라가 바라는 것은 아울러 기르려는 것뿐이고, 작은 나라는 속하여 보호를 받고자 할 뿐이다. 만약 양쪽이 각기 바라는 대로하고 싶다면 마땅히 큰 쪽이 아래가 되어야 한다.
道者, 萬物之奧, 善人之寶, 不善人之所保, 美言可以市, 尊行可以加人, 人之不善, 何棄之有, 故立天下, 置三公, 雖有拱壁以先駟馬, 不如坐進此道, 古之所以貴此道者何, 不曰以求得, 有罪以免邪, 故爲天下貴.
도는 세상 만물의 근원이다. 선한 사람이 보물로 삼는 것이고 선하지 못한 사람도 간직하고는 있다. 아름다운 말로 높은 지위를 얻게 되고 선한 행동으로 남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 선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버릴 것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나라가 서고 정승이 임명되었을 때 구슬을 받들어 사두마차로 나아가 바치는 것보다 가만히 앉아서 도로 나가는 것이 더 나은 것이다. 옛부터 이러한 도를 소중히 해온 것은 무슨 까닭인가. 구하지 않아도 얻고 죄가 있어도 용서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것이다.
爲無爲, 事無事, 味無味, 大小多少, 報怨以德, 圖難於其易, 爲大於其細, 天下難事, 必作於易, 天下大事, 必作於細, 是以聖人終不爲大, 故能成其大, 夫輕諾必寡信, 多易必多難, 是以聖人猶難之, 故終無難矣.
무위를 생활태도로 하고, 일없는 것을 일로 하며 맛없는 것을 맛으로 한다. 작은 것은 크게 하고, 적은 것은 많게 하며 원한은 덕으로 갚는다. 어려운 일은 어려워지기 전에 손을 쓰고 큰 일은 커지기 전에 해결한다. 세상의 어려운 일은 언제나 쉬운 데서 일어나고 큰일은 언제나 작은 데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무위의 성인은 결코 큰일을 하려 하지 않으며 이리하여 큰 일을 이룩하는 것이다. 대체로 쉽게 하는 승낙은 믿기가 어렵고 쉽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어려움에 부딪히게 된다. 그러므로 무위의 성인은 쉬운 일도 조심하여 다루고 이리하여 조금도 어려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其安易持, 其未兆易謀, 其脆易泮, 其微易散, 爲之於未有ㅡ 治之於未亂, 合抱之木, 生於毫末, 九層之臺, 起於累土, 千里之行, 始於足下, 爲者敗之, 執者失之, 是以聖人無爲故無敗, 無執故無失, 民之從事, 常於幾成而敗之, 愼終如始, 則無敗事, 是以聖人欲不欲, 不貴難得之貨, 學不學, 復衆人之所過, 以輔萬物之自然, 而不敢爲.
안정된 것은 유지하기 쉽고, 일이 시작되기 전에는 손쓰기 쉽다. 굳어 있지 않은 것은 풀기가 쉽고 드러나지 않는 작은 것은 흩어지기 쉽다. 일이 생기기 전에 잘 처리를 하고 어지러워지기 전에 잘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 아름드리 큰 나무도 털끝 만한 싹에서부터 자라고 아홉 층의 높은 대도 터닦기에서 시작되며 천리 길을 가는 것도 한 걸음부터 시작된다. 성공하려 애쓰는 자는 실패를 하고 쥐고 놓지 않으려는 자는 놓치게 된다. 그러므로 무위의 성인은 무리하지 않기 때문에 실패가 없고 잡고 늘어지지 않기 때문에 놓치지 않는다. 사람이 일을 함에 있어 언제나 다 되어가고 있을 때 실수를 하게 된다. 마지막 손질을 처음처럼 한다면 실패는 없다. 그러므로 성인은 욕심이 없음을 욕심으로 삼고 얻기 어려운 보물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널리 배우지 않는 것을 배움으로 하고 사람들의 지나친 행동을 본래로 되돌리고 만물의 있는 모습을 그대로 하여 무리하게 스스로 만들어 더하지 않는다.
古之善爲道者, 非以明民, 將以愚之, 民之難治, 以其智多, 故以智治國, 國之賊, 不以智治國, 國之福, 知此兩者亦稽式, 常知稽式, 是謂元德, 元德深矣遠矣, 與物反矣, 然後乃至大順.
옛날에 무위의 도를 잘 닦은 사람은 백성들을 총명하게 하지 않고 백성들을 순박하게 만들려고 하였다. 백성들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그들에게 영특한 지혜가 많았기 때문이다. 옛부터 나라를 지혜로 다스리면 나라에 해롭고 지혜로 다스리지 않으면 나라에 복이 있다고 했다. 이 두 가지 모두가 정치의 법칙임을 알아야 한다. 항상 이 법칙을 아는 것을 현덕이라 한다. 현덕은 심오하고 멀어 세속과는 반대 이나 세속을 부정한 뒤 크나큰 순리에 이르게 된다.
江海所以能爲百谷王者, 以其善下之, 故能爲百谷王, 是以欲上民, 必以言下之, 欲先民, 必以身後之, 是以聖人處上而民不重, 處前而民不害, 是以天下樂推而不厭, 以其不爭, 故天下莫能與之爭.
강과 바다가 계곡들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가장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계곡의 왕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백성 위에 있기를 바란다면 반드시 겸손한 말로 자신을 낮추고 백성의 앞에 서고자 한다면 반드시 몸을 남의 뒤에 두어야 한다. 그래서 성인은 위에 있어도 백성들이 짐스러워 하지 않고 앞에 있어도 방해된다고 여기지 않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그를 받들면서도 싫어하지 않는 것이다. 다투려 않기 때문에 누구도 그와 다툴 수가 없는 것이다.
--바다는 언제나 아래에 있기 때문에 모든 강물의 왕이 될 수 있다. 엄마는 언제나 부엌에 있기 때문에 어린이들의 엄마가 될 수가 있다. 임금은 언제나 위에 있지만 자기를 부를 때에는 자기를 낮추어 말하고 어른들은 언제나 나이가 앞섰으나 어린이들의 뒤를 돌본다. 스승은 위에 있어도 학생들이 무겁다고 느끼지 않고 등불은 앞에 있어도 뒷 사람들에게 해가 되지 않으니, 이런고로 천하가 그들을 모두 밀어 올리려고 야단이며 그 분들은 누구와도 싸우지 않기 때문에 천하에 그들과 겨룰 사람이 없다.
성인들은 애초부터 무아가 되어 있고 누구에게도 져주기 때문에 그들과 싸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에게나 져줄 수 있는 사람이 큰 사람이다. 허공은 아무하고도 싸우지 않는다. 무아는 언제나 대아이다.
사랑이란 지는 것이다. 백 번 지는 바다이기에 모든 강물을 이길 수 있는 큰 바다가 될 수 있다.
天下皆謂我道大, 似不肖, 夫唯大, 故似不肖, 若肖久矣, 其細也夫, 我有三寶, 持而保之, 一曰慈, 二曰儉, 三曰不敢爲天下先, 慈故能勇, 儉故能廣, 不敢爲天下先, 故能成器長, 今舍慈且勇, 舍儉且廣, 舍後且先, 死矣, 夫慈以戰則勝, 以守則固, 天將救之, 以慈衛之.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나의 도는 크기는 하지만 도답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크기 때문에 도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다. 만일 도처럼 보였다면 오래 전에 보잘 것 없이 되었을 것이다. 내게 세가지 보물이 있어 간직하여 소중히 여기니 그 첫째가 자비심이고, 둘째는 검약이고 셋째는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는 것이다. 자비심이 있으므로 용감할 수 있고 검약하기 때문에 널리 베풀 수 있고 남의 앞에 서지 않기 때문에 기량 있는 자들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자비심을 버리고 용감하려 하고 검소함을 버리고 풍족하기만을 바라며 뒤에 따르지 않으면서 앞장서려고 하는데 그것은 죽음을 향해서 가는 것이다. 자비심을 가지고 싸우면 승리할 수 있고 자비심으로 지키면 견고하게 지켜진다. 하늘이 그를 구해주려 하며 자비심을 가지고 보호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내 생각이 너무 커서 허술한 것 같다고 한다. 크기 때문에 허술한 것 같지만 그것이야말로 진짜 빈틈이 없다. 너무 짜이면 한참 있으면 무너지고 만다. 내 생각이란 어머니의 생각과 같다. 사랑과 아낌과 겸비, 이것이 어머니의 성품이다. 사랑 때문에 무섭지 않고 아끼기 때문에 떨어지지 않고 앞서지 않기 때문에 다치지 않는다.
노자의 사랑은 언제나 어머니로 대표된다. 무위자연도 어머니요, 현지우현도 어머니다. 그는 성숙한 인격을 어머니에게서 본다. 인생의 삼단게를 딸에서 시작하여 아내를 거쳐 어머니가 되는 것으로 보았다.
68. 산 아이
善爲士者不武, 善戰者不怒, 善勝敵者不與, 善用人者爲之下, 是謂不爭之德, 是謂用人之力, 是謂配天古之極.
훌륭한 선비는 무력을 쓰지 않고 싸움을 잘하는 자는 화내어 흥분하지 않으며 적을 잘 이기는 자는 적과 정면으로 싸우지 않고 사람을 가장 잘 쓰는 자는 그들 앞에서 몸을 낮춘다. 이것을 다투지 않는 덕이라 하고 이것을 남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라 하며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오래된 지극한 도이다.
--정말 용감한 사람은 까불지 않는다. 정말 잘 싸우는 사람은 화를 내지 않는다. 정말 이길 수 있는 사람은 다투지 않는다. 정말 사람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은 남을 존경하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게 되기 위해서는 정말 실력이 필요하다. 어린애에게 얻어맞아 주는 어른의 경지가 아니면 싸우지 않을 수 없다. 월등하게 차원이 높아져야 한다. 땅에 대하여 하늘이 되어야 한다. 온 세상 사람들을 모두 어린애로 여길 수 있으리 만큼 어른이 되어야 한다.
이런 경지는 하늘과 짝이 되고 영원과 하나가 되어 해와 같이 밝고 달과 같이 힘이 있다. 해처럼 웃고 달처럼 부드럽다.
用兵有言, 吾不敢爲主而爲客, 不敢進寸而退尺, 是謂行無行, 攘無臂, 잉無敵, 執無兵, 禍莫大於輕敵, 輕敵幾喪吾寶, 故抗兵相加, 哀者勝矣.
병법에 이런 말이 있다. 공격에 주동이 되려 말고 피동이 되어 한치의 나아감 보다 오히려 한자씩 물러나라. 이것을 가리켜 걸음 없는 걸음을 걷고 팔이 없는 소매를 걷어붙이며 무기 없는 무기를 잡고 적이 없는 적을 공격한다 라고 한다. 화중에 적을 경시하는 것보다 더 큰 재난은 없어 적을 가볍게 보게 되면 나의 모든 보물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군사를 동원하여 서로 결전하게 될 때에는 싸움을 슬피 여기는 쪽이 승리하게 된다.
吾言甚易知, 甚易行, 天下莫能知, 莫能行, 言有宗, 事有君, 夫唯無知, 是以不我知, 知我者希, 則我者貴, 是以聖人被褐懷玉.
내 말은 쉽고 따라 행하기도 쉬운데 사람들 중에 아는 자도 행하는 자도 없다. 말에는 근원이 있고 사물에는 주재자가 있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나를 모르는 것이다. 나를 아는 자는 드물고 나를 따르려는 자도 귀하다. 그런 까닭에 성인은 남루한 베옷을 입은 속에 구슬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노자는 자기 말처럼 알기 쉬운 것이 없고 자기 삶처럼 살기 쉬운 것이 없다고 한다. 이치에 닿는 말은 언제나 알기 쉽고 힘안에서 살면 언제나 살기 쉽다.
知, 不知, 上, 不知, 知, 病, 夫唯病病, 是以不病, 聖人不病, 以其病病, 是以不病.
알고도 모르는 듯 하는 것이 좋은 것이고 모르면서 모두 아는 척 하는 것은 병이다. 병을 병으로 안다면 병이 되지 않는다. 성인이 병이 없는 것은 자기의 병을 병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병이 되지 않는다.
--아는 세상보다도 모르는 세계가 얼마나 큰지 모른다. 아는 세계는 유한이요 모르는 세계는 무한이다. 모르는 세계가 한없이 큼을 알아야 인간은 무한 앞에 머리를 숙이고 아는 세계를 확실히 가름할 수 있다. 무한 앞에서 무아가 되고, 유한 위에서 대아가 되니 안간은 무아가 될 수도 있고 대아가 될 수도 있다.
성인이 건전한 까닭은 잘못을 잘못으로 알고 고치기 때문이다.
民不畏威, 則大威至, 無押其所居, 無厭其所生, 夫唯不厭, 是以不厭, 是以聖人自知不自見, 自愛不自貴, 故去彼取此.
백성이 위엄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면 큰 위엄을 갖게 된다. 백성들이 사는 곳을 억압하지 않고 사는 방법을 싫어하지 않으면 싫어하는 것이 없게 되어 싫어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성인은 자신을 알지만 나타내려 하지 않고 자신을 사랑하지만 귀하다고 여기지 않으므로 위엄을 버리고 무위를 택하는 것이다.
勇於敢則殺, 勇於不敢則活, 此兩者或利或害, 天之所惡, 孰知其故, 是以聖人猶難之, 天之道, 不爭而善勝, 不言而善應, 不召而自來, 천연而善謀, 天網恢恢, 疏而不失.
결단력이 강하면 죄인을 죽이고 결단력이 약하면 죄인을 살린다. 두 가지 행동에는 이로움도 있고 해로움도 있으니 하늘이 미워하는 그 사람을 어느 누가 알겠는가. 그래서 성인조차 오히려 어렵게 여기는 것이다. 하늘의 도는 싸우지 않고도 잘 이기고 말하지 않아도 잘 응하고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오고 천연히 있으면서도 잘 도모한다. 하늘의 그물은 성글어도 빠뜨리지 않는다.
--모든 별들은 자기의 궤도를 가고 있기 때문에 누구와 다툴 필요도 없이 언제나 빛난다. 모든 별들은 아무 욕심이 없기 때문에 그의 눈동자는 어린애처럼 순진하고 맑아서 모든 사람이 그리워한다.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가장 근원적인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지혜를 당할 이 없고 언제나 공평무사하게 만물을 돌보기 때문에 하늘 그물이 성글어도 그 품을 벗어날 자 없다.
民不畏死, 奈何以死懼之, 若使民常畏死而爲奇者, 吾得執而殺之, 孰敢, 常有司殺者殺, 夫代司殺者殺, 是謂代大匠착, 夫代大匠착者, 希有不傷其手矣.
백성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죽임 따위로 백성을 두려워하게 할 수 없다. 만약 백성들이 항상 죽음을 두려워하게 해 놓고 죄를 지은 자를 내가 잡아서 죽인다면 어느 누가 감히 죄를 짓겠는가. 그러나 항상 죽이는 일을 맡은 자는 따로 있다. 죽이는 일을 맡은 자를 대신해서 죽이는 것은 목수를 대신해서 나무를 자르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러나 목수를 대신하여 나무를 자르는 자중 그 손을 다치지 않는 자가 드물다.
民之饑, 以其上食稅之多, 是以饑, 民之難治, 以其上之有爲, 是以難治, 民之輕死, 以其上求生之厚, 是以輕死, 夫唯無以生爲者, 是賢於貴生.
백성이 굶주림에 시달리는 것은 세금을 지나치게 많이 거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굶주림에 시달리는 것이다.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지배자의 간섭이 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스리기 어려운 것이다. 백성이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지배자가 자신의 삶만을 지나치게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성들이 죽음을 가벼이 여기는 것이다. 삶에 집착이 없는 사람이 삶을 소중히 여기는 자 보다 현명한 자이다.
人之生也柔弱, 其死也堅强, 萬物草木之生也柔脆, 其死也枯槁, 故堅强者死之徒, 柔弱者生之徒, 是以兵强則不勝, 木强則兵, 强大處下, 柔弱處上.
살아 있는 사람의 몸은 부드럽고 연약하지만 죽은 사람의 몸은 굳고 단단하다. 살아 있는 만물과 초목은 부드럽고 연약하지만 죽은 모든 것은 말라 딱딱하다. 그러므로 굳고 강한 것은 죽은 것이고 부드럽고 연약한 것은 산 것이다. 군대가 강하면 승리하지 못하고, 나뭇가지가 강하면 부러지고 만다. 굳고 강한 것은 아래에 있고, 부드럽고 약한 것이 위에 있다.
天之道, 其猶張弓與, 高者抑之, 下者擧之, 有餘者損之, 不足者補之, 天之道損有餘而補不足, 人之道則不然, 損不足以奉有餘, 孰能有餘以奉天下, 唯有道者, 是以聖人爲而不恃, 功成而不處, 其不欲見賢.
하늘의 도는 활 메우는 것과 같아서 높은 곳은 눌러 주고 낮은 곳은 올려 주며 남는 것은 덜어내고 부족한 곳에는 더해 준다. 하늘의 도는 남는 것을 부족한 곳에 주는데 인간의 도는 그 같지 않아서 부족한 것에서 덜어내 남는 쪽에 바친다. 누가 여유 있는 것으로 천하에 봉사할 것인가? 오로지 하늘의 도를 따르는 자 밖에는 없다. 성인은 일을 하되 대가를 바라지 않으며, 공을 이루어도 그 곳에 머물지 않으며, 남보다 현명함을 나타내지 않는다.
天下莫柔弱於水, 而功堅强者, 莫之能勝, 以其無以易之, 弱之勝强, 柔之勝剛, 天下莫不知, 莫能行, 是以聖人云, 受國之垢, 是謂社稷主, 受國不祥, 是謂天下王, 正言若反.
세상에 물처럼 약하고 부드러운 것이 없다. 그러면서도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기는 데 물보다 더 나은 것도 없다. 무엇도 그 본성을 바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약한 것이 억센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단단한 것을 이기는 것을 세상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실행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러기에 성인의 말씀에 나라의 욕됨을 떠맡는 사람은 나라의 주인이고 천하의 불행을 떠맡는 사람을 천하의 왕이라 했다. 참으로 바른 말은 진실과 반대인 것처럼 들린다.
和大怨, 必有餘怨, 安可以爲善, 是以聖人執左契, 而不責於人, 有德司契, 無德司徹, 天道無親, 常與善人.
큰 원한은 풀어도 앙금이 남으니 큰 원한을 푼다고 어찌 선이 되겠는가. 성인은 빚 문서를 지니고 있을 뿐 빚 독촉을 하지 않는다. 덕이 있으면 빚은 저절로 갚아지고, 덕이 없으면 빚을 억지로 받아 낸다. 하늘의 도에는 사사로움이 없고, 언제나 선한 사람 편에 선다.
小國寡民, 使有什佰之器而不用, 使民重死而不遠徙, 雖有舟輿, 無所乘之, 雖有甲兵, 無所陳之, 使人復結繩而用之,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 隣國相望, 鷄犬之聲相聞, 民至老死不相往來.
작은 나라에 적은 백성이 살아 수많은 도구가 있어도 사용하지 않게 하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도록 하여 먼 곳으로 떠나는 일이 없도록 하면 배와 수레가 있어도 타는 일이 없을 것이고 갑옷과 무기가 있어도 그것을 쓸 일이 없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새끼줄을 묶어서 약속의 표시로 사용하게 하고 음식을 달게 여겨 먹게 하고, 의복을 아름답게 여겨 입게 하고 사는 곳을 안식처로 여기게 하고, 그 풍속을 즐기게 하면 바로 앞에 이웃나라가 있고 닭과 개의 소리 서로 들리는 곳에 있을 지라도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信言不美, 美言不信, 善者不辯, 辯者不善, 知者不博, 博者不知, 聖人不積, 旣以爲人, 己愈有, 旣以與人, 己愈多, 天之道, 利而不害, 聖人之道, 爲而不爭.
진실한 말은 아름답게 꾸미지 않고, 아름답게 꾸민 말에는 진실이 없다. 참다운 사람은 변명을 하지 않고, 변명을 잘하는 사람은 참다운 사람이 아니다. 참으로 아는 사람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고, 많이 아는 사람은 참으로 알고 있지 못하다. 성인은 자신을 위해 쌓아두는 일이 없이 남을 위함으로 더욱 있게 되고, 남에게 무엇이든 다 주지만 그로 인하여 더욱 넉넉해진다. 하늘의 도는 이롭게 하지만 해치지 않고, 성인의 도는 일을 행하여 다투지 않는다.
무문관 無門關
무문관 해설
무문관의 저자는 무문慧開 선사다. 남송 효종 때 사람으로 소주 만수사에서 월림사과 선사에게 조주무자의 숙제를 받고 '자나 깨나 없다는 것이 무엇일까'하고 6 년, 어느날 법당 근처에서 식사를 알리는 종소리에 활연대각,
靑天白日一聲雷 大地群生眼豁開 萬象森羅齊稽首 須彌조跳無三臺
라는 노래를 불렀다.
無無無無無 --- 일체를 부정하고 또 부정하고, 마치 안개가 벗겨지 듯 인간의 편견과 망상이 일체 벗겨지고 정말 진리의 태양이 빛나는 생명의 실상을 얻었을 때 그때가 청천백일일성뇌의 대지군생의 안활개의 순간이다. 그 때에 드러나는 것이 불성이다.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이다.
-눈이 뜨고 손발이 자유로와져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즐겁기 짝이 없다. 본래의 자기를 회복하고 無一物의 자유를 되찾은 것이다. 그후 혜개는 '머리는 쑥밭같고 옷은 남루하며 몸은 야위었으나 정신은 명랑하며 말으 없으나 뜻은 깊었다'고 그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그는 무문을 해석하여 이르기를 불교라는 말보다 사상이 중요하고, 사상보다도 인격이 더 중요하다. 금강불괴의 절벽같은 인격에 어떻게 들어갈까? 그것은 걱정할 것 없다. 문으로 안들어가면 될 것 아닌가? 문으로 들어간 것은 변변한 것이 못된다고 말하고 있다.
佛語心爲宗 無門爲法門 旣是無門 且作마生수 豈不見道 從門入者 不是家珍
무아의 경지---"사람은 소아가 대아가 되려면 무아의 경지를 통과하여야 한다. 마치 광석이 녹아 쇳물이 되어야 그 쇳물을 가지고 칼도 만들고 농기구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은 한 번 자기가 없어지는 경험을 하기 전에는 내가 될 수 없는 것이다."(242)
깬 사람---"부처가 되었다는 말은 사람이 되었다는 말이요, 지극히 당연하고 평범한 사건이지---부처란 사람이 된다는 말이다. 깬 사람이 부처다. 그런데 자는 사람들은 부처라는 말을 듣고 꿈속에 또 꿈을 꾸고 마는 것이다."(255)
보는 것---"사람은 말을 듣는 동물이 아니라 보고 흉내 내는 원숭이와 같다. 보아야 흉내내지 듣고는 따르지 않는다."(261)
平常心是道---"至道無難. 진리는 가깝고 쉬운 곳에 있고 평범한 데 있다. 우리의 생활 속에 있다. 우리의 생활을 떠난 진리는 나와 아무 관계도 없다. 생활 자체가 진리이다. 사는 것이 그대로 진리이다."(262)
진리와 사회---"진리를 얻었으면 사회를 닦아야지---"(262)
정신 통일---"사람은 사랑하는 데가 있어야 한다. 사랑하면 이미 정신 통일은 되어 있고, 정신 통일이 되어 있으면 그는 벌써 부처다. 아무것도 사랑하는 것 없이 부처가 되겠다는 욕심으로 우두커니 눈만 깜박거리면 백년 그러고 앉아 있은 들 언제 마음이 맑아질까?"(270)
直指人心---"통하면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있다."
돈 닢의 위력---"내 사랑이 부족해서 그렇지, 돈 닢이나 집어 주면 팔닥팔닥 할 것인데---"(293)
사람의 거만---"사람은 한없이 거만하여 쇠몽둥이를 맞기 전에는 거만이 부러지지 않는다."(294)
不思---"不思善 不思惡"
미물의 세계---"모든 지식을 다해 보아도 허공에 나부끼는 한 오라기 머리칼에 불과하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해도 바다의 한 방울 물과 같다."(319)
나 없는 세계---"지금까지 그는 촛불에 가리워서 일체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촛불이 꺼지자 전체를 보게 되었다. 내가 죽는 것이 촛불의 꺼짐과 무엇이 다를까? 내가 죽어도 우주와 세계와 인생에게는 변함이 없다. 나 없는 세계, 그것이 진짜다. 나 있는 세계 그것은 가짜요 편견이다. 그는 즉석에서 자기를 태우고 버렸다. 자기를 버리고 대 우주와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319)
마음---"無想菩提, 涅槃妙心, 正法眼藏, 般若實相."(321)
卽心卽佛---"靑天白日 切忌尋叫 更問如何 抱臟覓屈---더 이상 묻지마라, 더 이상 물으면 도적질한 장물을 품고 결백을 부르짖음이다."
절대 정신---"부처란 절대 정신이다. 한 길을 걸어가는 절대 정신이다."(322)
자기를 찾음---"자기 속을 찾아 들어가지 왜 쓸데없이 여기저기를 기웃거려 시간을 보내느냐?"(323)
상대와 절대---"있다 없다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마음이니 부처니 하는 것은 절대적인 개념이다. 상대를 가지고 절대를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325)
나와 부처---"아기는 엄마가 낳는 것이지 산파가 낳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자기를 알아야지 누구한테 자기를 물어 볼 것인가? 이 세상에 나를 아는 이는 나뿐이다. 나를 남에게 묻는 것은 가소로울 뿐이다. 부처가 나인데 나를 누구 더러 묻는 것이냐?"(327)
마음이란---"마치 물이 수증기가 되면 없어지듯 마음도 끊이면 없어지고 만다."(330)
인간의 약점---"태양에도 흑점이 있듯이 인간에게는 약점이 있다."(339)
달마의 마음---"선생님, 제 마음이 편안치 않습니다. 평안하게 해 주십시오.---불안한 마음을 이리 가지고 오라. 내가 너를 위하여 평안하게 해 주리라.---마음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마음이 없습니다.---그렇다면 마음이 없으니 불안도 없겠구나.---"(344)
담벼락 마음---"달마는 밖으로도 바라지 말고 안으로도 바라지 말아 마음이 담벼락 같이 되어야 가히 통할 수 있다고 하였다.---外息諸緣 內無心喘 心如牆壁."(345)
"과일은 무르익어야 나무에서 능히 떨어질 수 있다."
"사람은 올라가기는 쉬어도 내려가기는 힘들다."(354)
친구가 되는 것---"불교는 아는 종교가 아니다. 친구가 되는 것이다. 석가의 친구가 되면 석가를 알고 나귀의 친구가 되면 나귀를 알고 사람의 친구가 되면 사람을 안다."(362)
大學----------"大人之學 : (1)格物---물을 바로 잡음, 사람됨.
(2)致知---이치를 바로 잡음, 진리의 깨달음.
(3)誠意---뜻, 목적, 계획의 바로 잡음.
(4)正心---마음을 바로 잡음.
(5)修身---몸을 바로 잡음
(6)齊家---집을 바로 잡음.
(7)治國---나라를 바로 잡음.
(8)平天下---천하를 바로 잡음.
사욕의 마음---"진실로 사욕에 가림이 없을 진데 비록 소인의 마음일지라도 그 일체의 仁이 大人과 같으며, 한 번 사욕이 가리움이 있은 즉 비록 대인의 마음일지라도 그 分隔隘陋(분격애루)함이 의연히 소인이다."(367)
인간 관계---"상대방에게 투쟁의 모습을 나타내도 안 되고 패배의 굴욕감을 주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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