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서 나온 플라스틱 쓰레기, 10시간 뒤 석유로 부활했다
매일경제 전형민 기자 입력 : 2022.06.06 17:56:41
폐플라스틱도 자원이다
RGO기술기업 `도시유전` 가보니
6t 폐기물서 최대 5400ℓ 추출
비닐봉투·일회용컵·포장용기
소음·열기·진동없이 파장분해
다이옥신 배출 열분해와 달라
등유 수준 산업유 짜낼수 있어
2차 정제작업까지 거친 이후엔
석유화학 기초원료로 사용가능
실증 넘어 경제성 입증이 관건
◆ 플라스틱 팬데믹 2부 ① ◆
도시유전이 인천 서구 수도권매립지에서 운영 중인 RGO 설비 전경. [사진 제공 = 도시유전]
인천 서구 수도권매립지 한편에 세워진 작은 공장. 통제실 작업자가 버튼을 누르자 크레인에 실린 폐플라스틱 블록이 눕혀 있는 커다란 스테인리스 원통으로 실려 들어갔다. 비닐봉투, 테이크아웃 컵, 음식물 포장용기 등 버려진 플라스틱을 육면체 모양으로 압축한 것이다.
작업자가 다른 버튼을 누르자 통 입구가 밀봉됐다. 여느 공장에서 으레 들리는 귀를 울리는 소음, 열기, 진동은 없었다. 공장을 안내한 함동현 도시유전 사업본부장은 "파장분해 방식은 전처리 작업이 필요 없고 소음, 열기, 연기 등 공해 문제에서도 자유롭다"고 말했다. 밖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원통 안에서 폐플라스틱은 파장에 의해 형태와 성질이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3시간의 작업이 지나자 진행 상황을 확인하는 모니터글라스에 거무튀튀한 액체가 쏟아지는 모습이 포착됐다.
1차 공정인 파장분해를 통해 생성된 유증기를 포집(捕執), 액화(液化)한 중질유다.
중질유는 송유관을 통해 2차 정제 시설로 투입됐다.
2차 정제 작업은 6시간 정도 더 걸렸다. 총 공정 시간이 10시간을 넘어가자 이번엔 모니터글라스에 노랗고 투명한 액체가 쏟아졌다. 1차 생산된 중질유를 정제한 초경질유다.
눈앞에서 라면 봉지, 비닐 랩, 종이컵, 플라스틱 컵, 생수 페트병 등 용도 폐기된 온갖 폐플라스틱 쓰레기들이 10시간여 만에 본래 그 자신의 재료(석유)로 환원된 셈이다. 함 본부장은 "중질유 자체로도 선박유 등으로 쓰이지만,
2차 정제작업을 거치면 가치가 더 높아진다"면서 "현재 생산하는 초경질유는 나프타(naphtha) 수준으로 플라스틱 제품 생산의 원료로 쓰이고, 경질유는 등유 수준으로 화력발전소 산업유로 쓰인다"고 말했다.
이곳 도시유전 공장은 실증 단계로 매일 폐플라스틱 6t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폐플라스틱 6t을 투입하면 보통 기름 2400~5400ℓ를 추출해낸다.
이렇게 생산량이 달라지는 것은 폐플라스틱 상태에 따라 수율이 다르기 때문이다.
도시유전의 수율은 폐기물 성상에 따라 최소 40%에서 최대 90%까지 차이를 보인다.
세계적인 골칫거리로 불려온 폐플라스틱 처리에 우리나라 환경기업 도시유전이 RGO(Regenerated Green Oil) 기술로 새 지평을 열었다.
이미 용도를 다한 폴리머를 가역(可逆) 과정을 거쳐 원재료인 석유로 되돌리는 기술이다.
그동안 플라스틱은 선순환이 불가능한 자원으로 치부됐다.
가볍고 편리하지만 자연 분해되는 속도가 너무 느려 태우거나 묻는 게 거의 유일한 처리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작정 태우거나 묻을 수는 없다. 소각하면 '다이옥신'이라는 독성물질이 방출된다.
폐플라스틱을 고온으로 가열해 열분해하는 방식으로 석유를 추출할 수 있지만 이 방식이 널리 통용되지 않는 이유다.
매립도 여의치 않다. 매립된 폐플라스틱은 자연 속에서 잘게 부서지다 먹이사슬을 통해 인체로 돌아오게 된다.
도시유전의 RGO 시스템은 태우거나 묻지 않는다.
특수한 세라믹볼을 280도 이하로 달궈 특정 파동 에너지를 일으키고,
여기에서 발생한 고유의 파장이 폐플라스틱에서 유증기와 나머지 물질을 분리시키는 방식이다.
유증기가 추출되고 남은 폐플라스틱 잔재도 걱정할 게 없다. 대부분 고열량 탄소 분말인데, 물을 이용해 비중 분리한 후 고형연료의 원료로 쓰인다.
도시유전 측은 1차 공정에 쓰이는 폐플라스틱 블록의 구성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종적으로 남아서 폐기해야 하는 침전물은 전체 투입 폐기물의 3~10% 수준이라고 설명한다.
유지와 보수도 기존 열분해 방식보다 효율적이다. 모든 공정이 자동화된 데다 전기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도시유전은 실증 3단계인 현재 하루 6t의 폐플라스틱을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을 한 개의 유닛으로 설정하고, 4개 유닛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구성하고 있다. 한 시스템에 필요한 작업자는 총 8명으로, 1개 유닛당 2명 꼴이다.
함 본부장은 "RGO 기술이 대중화된다면 플라스틱 선순환을 통해 ESG(환경·책임·투명경영)를 실천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인류의 삶이 좀 더 안락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전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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