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전 총무원장 원행스님 등 현봉대종사 분향소 조문
불교신문 2024.05.03 14:
원적 3일차 5월3일 송광사 선호당에 조문행렬 이어져
5월1일 원적에 든 조계총림 송광사 방장 남은당 현봉대종사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조문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원적 3일째인 5월3일 전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과 중앙종회 부의장 원허스님, 제11교구본사 불국사 주지 종천스님 등이 잇따라 분향소가 차려진 송광사 선호당을 찾아 애도의 뜻을 전했다.
전 총무원장 원행스님은 대종사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며 방명록에
“속환사바 광도중생(速還娑婆 廣度衆生)”이라는 글을 남겼다.
독실한 불자인 김진태 전 검찰총장도 5월3일 송광사 전 주지 진화스님을 통해
현봉대종사의 원적을 애도하는 추도의 글을 전해왔다.
아래는 추도의 글 전문이다.
奇玄锋大宗師圓寂(기현봉대종사원적)
현봉대종사의 원적에 부쳐
月印千江盲不見(월인천강맹불견)
달이 천강에 내려 앉아도 눈이 밝지 못하니 보지를 못하고
金口萬籠回聞(금구만롱회개)
부처님 말씀이 만골에 울려도 귀가 어두우니 듣지를 못하네. .
可憐娑婆多情翁(가련사바다정옹)
이 가련한 사바세계에서 한 정 많은 늙은이가
負風戴雨越曹山(부풍재우월조산)
속세의 온갖 비바람을 이고 지고 조계산을 넘을구나
김진태(金鎭太) <물속을 걸어가는 달> 저자, 전 검찰총장
2.현봉대종사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 ‘광원암’
진재훈 기자 BBS뉴스 2024.05.03 19:55
지난 1일 원적에 든 조계총림 방장 현봉대종사가
흐트러짐없는 수행자의 삶을 몸소 실천하던 송광사 광원암은 스님의 생전 모습과 닮아있다고 하는데요.
현봉대종사가 입적하기 전까지 마음의 고향이었던 광원암을 광주BBS 진재훈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 리포터 >
녹음이 짙어가는 푸르른 5월.
비탈진 산길을 오르다보면 고즈넉한 암자가 시야에 들어옵니다.
현봉대종사가 조계총림 방장 소임을 맡기 직전까지 30여 년 가까이 머물던 수행처입니다.
스님은 91년부터 6.25로 폐허가 된 이곳 광원암을 복원하는데
직접 팔을 걷었고 이곳에 머물며 선농일치의 삶을 살았습니다.
[인서트]연제스님 / 현봉 대종사 맏상좌
(“(광원암에 대한) 애착을 엄청가지고 계셨습니다.
그 터가 원래 황무지 터였는데 스님께서 몸소 일구셔가지고 힘든 불사를 하셨거든요.”)
세간의 이목에서 벗어나 소박한 수행자의 삶을 살다간 현봉스님.
스님은 한학과 불경 어록도 소홀히 하지 않았고,
다수의 저서를 펴낼 정도로 문장력이 탁월했습니다.
[인서트]연제스님 / 현봉 대종사 맏상좌
(“한학에 굉장히 조예가 깊으셔서 막힘이 없고
많은 선학들을 번역해서 우리 후학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고
특히 ‘선에서 본 반야심경’은
우리 선가의 수좌들에게 굉장히 큰 보물같은 번역서가 되고 있습니다.”)
정갈하게 걸려있는 가사장삼과 손때 묻은 지팡이 하나에도 스님의 철학이 오롯이 배어나고...
스님이 손수 밭을 일구던 공간도 소박한 삶의 흔적들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인서트]현봉대종사 / 생전 육성(금강산림법회 中)
(“모두가 바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깨닫도록 하겠다하는 그 원을 세우는 것이
바로 오늘 이 금강산림의 핵심 요체인 것입니다. 다 우리 그렇게 부지런히 정진하도록 합시다.”)
경남 사천 출신으로 어린시절 한학자인 조부의 영향을 받은 스님은
학창시절 의상 대사의 법성계를 읽고 불교에 심취했고,
군 제대 후 1974년 구산스님을 찾아가 삭발염의했습니다.
이후 해인사와 통도사, 봉암사 등 전국의 선원을 다니며 32안거를 성만하는 등 참선 수행에 몰두했고,
송광사 주지를 역임한 뒤 조계종 중앙종회의원과 호계원 재심호계위원을 지내는 등 이판과 사판을 겸비한 수행자였습니다.
스님은 2019년 11월 조계총림 방장에 추대됐고 2021년 10월 조계종 최고 법계인 대종사에 올랐습니다.
흐트러짐 없는 수행자로서의 본분을 다했던 현봉대종사.
스님의 서릿발 같은 가르침은 우리 가슴 속에 큰 울림으로 남아있습니다.
순천 송광사에서 BBS뉴스 진재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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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조계총림 송광사 방장 현봉 스님 입적
송광사는 2일 “대한불교조계종 조계총림 송광사 방장 남은당 현봉대종사께서 세연이 다 하시어
불기 2568(2024)년 5월 1일 (음 3월 23일) 오후 8시 전남 순천시 조계총림 송광사 삼일암에서
법랍 50년 세랍 75세로 원적하셨음을 알려드린다”고 밝혔다.
현봉 스님은 30일 오전 뇌출혈로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1949년 경남 사천 출신인 현봉 스님은 구산 스님을 은사로 1974년 송광사로 출가했다.
출가 초기엔 선농일치(禪農一致)의 송광사 전통에 따라 주경야선(晝耕夜禪), 낮엔 농사 짓고 밤에 참선했다.
그는 “어른 스님들로부터 ‘현봉이가 심으면 고추, 감자, 호박이 많이 열린다’는 칭찬을 듣곤했다”며
“그때는 농사 안 짓고 참선만 하는 고참 스님들이 그렇게 부러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현봉 스님은 해인사·통도사·봉암사 등 전국의 선원(禪院)을 다니며 수 십 안거(安居·3개월 간의 집중 참선) 수행했다. 그는 선방(禪房)과 사찰에만 머물지 않고 불교계에서는 드물게 80년대말 만행(萬行)을 배낭여행으로 다녀온 ‘신식 스님’이기도 했다.
만 40세가 되던 1989년 그는 1년 동안 혼자 배낭을 매고 인도, 유럽, 이집트, 이스라엘로 만행(萬行)을 떠났다.
여러 종교와 문명의 발상지를 직접 답사하며 출가 초심을 되새기기 위해서였다.
그는 “당시 한 달 200달러 정도 예산으로 다니면서 ‘그동안 내가 선방(禪房)에서 안주하며 지냈구나’라는 것을 절감하고 수행과 포교에 대한 간절함을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송광사 주지(2000~2003)를 비롯해 조계종 중앙종회의원과 호계원 재심호계위원을 지내는 등 이판(理判·수행)과 사판(事判·행정)을 겸비했다. 2019년 11월 송광사 방장에 추대됐고, 2021년 10월 조계종 최고 법계인 대종사에 올랐다.
방장에 오른 후에도 생활은 소탈했다. 방장 전용 승용차는 송광사 중진 스님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용차로 제공했으며 직접 전지 가위와 톱을 들고 틈날 때마다 경내를 다니며 꽃과 나무를 가꿨다.
작년 12월에는 현봉 스님이 인솔해 젊은 스님들과 함께 직접 키운 배추를 캐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너는 또다른 나’
‘선(禪)에서 본 반야심경’
‘솔바람 차 향기’
‘일흔집(逸痕集)’ 등
경전 해설서와 저서를 펴낸 현봉 스님은 불교의 핵심을 쉽게 풀어 설명하는 법문으로도 이름 높았다.
2019년 11월 방장에 추대된 후에는 “송광사가 16 국사(國師)를 배출해 승보종찰(僧寶宗刹)이라고 불리지만
과거의 승보가 아니라 지금 스님 한 분 한 분이 모두 보물이 돼야 한다”며 스님들의 수행을 독려했다.
코로나 팬데믹에 대해서는 “코로나는 ‘나’와 ‘너’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사태”라며
‘자리이타(自利利他)’ 정신을 갖는 것이 절실하다”고 했다.
2020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선
“부처님은 ‘누구나 스스로 홀로 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러 세상에 오셨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두가 고통받던 당시 인터뷰에서
“어려운 때일수록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손발은 부지런하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분향소는 송광사 선호당에 마련됐으며
영결식은 5일 오후 2시 송광사에서 조계총림 총림장으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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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나의 燈을 먼저 밝히세요, 그래야 다른 사람이 보입니다
[부처님오신날 인터뷰] 현봉 스님
순천 송광사 최고 어른 方丈
"'나와 너는 하나' 보여준 코로나… 다른 나라 살아야 우리도 산다"
"나 또한 禪房에서 편하게 안주, 지금 한국 불교에 간절함 있나… 수행이든 봉사든 더 절실해야"
"어, 오셨어요?"
톱과 전지가위를 손에 쥔 방장(方丈) 스님을 만날 줄은 몰랐다.
지난 27일 전남 순천 송광사 삼일암. 방장 현봉(玄峰·71) 스님은 선방(禪房) 뒷산에서 가지치기를 하던 중이었다고 했다. 기자와 마주치자 스님은 가이드를 자청했다. 산신각을 지나 효봉(1888~1966) 스님이 홀로 수행하던 터에 세운 '목우정'과 여름에 송광사 스님들 수영장이 된다는 연못 앞 '수석정'까지, 뜻밖의 30분 산책이었다.
경남 사천에서 출생한 현봉 스님은 1974년 구산 스님을 은사로 송광사로 출가했다.
해인사·통도사·봉암사 등 전국 선원에서 수십 안거를 지낸 선승(禪僧)이자 '너는 또 다른 나' '선(禪)에서 본 반야심경' 등 경전 해설서와 저서를 냈고, 송광사 주지(2000~2003)를 지내며 이른바 이판(수행)·사판(행정)을 겸비했다.
지난해 11월 조계총림 송광사의 최고 어른인 방장에 추대됐다. 주지 시절 전용차를 없앤 그는 방장이 된 후에는 전용차를 필요한 중진 스님들이 함께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불교의 핵심을 짚는 법문으로도 이름 높다. 거처인 삼일암은 과거 효봉 스님 시절엔 참선하던 공간. 스님은 "낡은 옛 구조이지만 큰스님들의 냄새가 배어 있는 것 같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쓰고 있다"고 했다.
◇먼저 나의 등을 밝혀라
1―부처님이 오신 까닭은 무엇일까요?
"누구나 홀로 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러 오셨습니다.
누구나 지닌 그것(불성)을 드러내라는 것이지요.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말씀도 '오로지 나뿐이다'라는 뜻이니 남이 따로 없다는 것이죠. 스스로 서라는 말씀입니다.
그 출발은 제대로 잘 보는 것입니다. 제대로 보는 정견(正見)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부처님오신날 등(燈)을 밝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님이 마지막에 남기신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이란 말씀도 먼저 내 등을 밝혀야 진리의 등이 켜진다는 뜻입니다. 밖이 아무리 밝아도 내가 눈을 감고 있으면 보이지 않는 것과 같지요."
2―코로나 사태로 봉축법요식이 한 달 연기된 초유의 사태 속에 부처님오신날을 맞습니다.
"이 사태는 엄청난 문명의 전환점이 될 겁니다.
당장 부처님오신날도, 학교 개학도 모든 것은 고정불변이 아니라는 것을 목격하고 있잖아요? 지구 입장에서 보면 자정(自淨) 기간일 수도 있죠. 불교에 공업(共業)이란 말이 있습니다. 모두 함께 지은 업이란 뜻이죠. 그동안 고정불변으로 여겼던 것들이나 추구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3―전염병은 온 인류가 하나의 운명으로 묶여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부처님 가르침이 바로 '연기법(緣起法)' 아닙니까?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너'가 있어 '나'가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코로나는 '나'와 '너'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나라에서 코로나가 종식돼도 세계 어디엔가 남아 있으면 다시 감염될 수 있습니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 입장에선 다른 나라들이 코로나에서 회복되도록 돕는 것이 스스로를 돕는 길입니다. 자리이타(自利利他) 정신이 절실합니다."
◇지금 한국 불교에 간절함이 있는가
4―스님은 출가 후 참선 수행, 경전 공부, 농사까지 다 하셨지요?
"처음 절에 와선 농사를 지었습니다.
쟁기질에 오줌장군도 졌는데 '현봉이가 심으면 고추, 감자, 호박이 많이 열린다'는 말도 들었죠. 그땐 선배 스님들이 오로지 선방에서 정진(精進)만 하는 게 그렇게 부러웠어요. 낮엔 농사짓고 저녁엔 좌선했는데 그 시간이 아까워 잠을 아꼈어요. 그 후 10여년 전국 선방을 다니며 수행했지요. 그러다 간절한 초심을 다시 느낀 건 1989년부터 1년간 배낭여행으로 성지순례할 때입니다."
5―어떤 일이 있었나요.
"인도에서 시작해 유럽과 이집트, 이스라엘 등을 훑었습니다.
부처님 성지(聖地)뿐 아니라 문명의 발상지들을 몸으로 부딪치며 종교와 문명의 밑바탕을 이해하려 했습니다. 한 달 200달러 남짓 예산으로 매일 옮겨다녔습니다. 외롭고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매일 다른 상황에 던져지는데 '나는 여권과 돈이라도 있지. 그 옛날 당나라 현장 스님, 신라 혜초 스님은 어땠을까' 생각이 절로 났습니다. '아, 그동안 내가 선방에서 안주하며 지냈구나' 깨달았습니다."
6―종교에 대한 관심도 변하고 있습니다.
"종교도 코로나 사태 이후 변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3대 생불(生佛)'로 불리는 달라이 라마, 틱낫한, 성운(星雲·대만 불광산사 창건자) 스님의 공통점이 뭔지 아십니까? 망명객입니다. 망명한 그분들이 얼마나 간절하게 수행하고 포교했을까요? 지금 우리는 그 간절함이 있을까요?"
7―평소 실천을 강조하셨습니다.
"송광사는 국사(國師)를 열여섯 분 배출해 승보종찰(僧寶宗刹)이라 합니다.
그러나 과거의 국사가 아니라 지금 송광사 스님 한 명 한 명이 승보가 돼야 합니다. 나아가 이젠 승보종찰을 넘어 사이버 종찰이 돼야 합니다. 스님들이 대충 법문하면 신도들이 바로 휴대폰으로 검색해 틀린 걸 지적하는 세상입니다. 수행이든 봉사든 스님들이 간절히 노력해야 합니다."
8―어떤 마음가짐으로 살면 좋을까요.
"어려운 때일수록 기존의 틀에 매이면 대립이 되고 공존하기 어렵습니다.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손발은 부지런해야 합니다. 지금은 특히 부처님 계율 같은 따뜻한 가슴이 필요합니다. 계율이라면 '금지'를 먼저 생각하는데 공동생활의 하모니를 위한 리듬이 바로 율(律)입니다. 그 속엔 따뜻함이 배어 있고, 따뜻함은 공감과 공명(共鳴)을 부릅니다. 두려워 마십시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니 이것(코로나)도 지나갑니다."
언제나 오복작명원 택일 궁합 작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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