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수행 주제

[스크랩] 부처를 쏴라 / 현각스님

언제나오복의향기 2016. 8. 1. 16:14

 

 

 

 

 

 

 

 

 

 

 

 

저자소개

 

 

한국 선불교를 세계에 알리며
‘한국의 달마’라 불린 숭산 행원 대선사


1927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났다. 1944년 일제의 압제 아래 독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동국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으나, 불안한 사회를 보며 자신의 정치적 운동이나 학문으로는 세상에 도움을 줄 수 없음을 깨달았다. 참된 진리를 구하기 위해 1947년, 충남 마곡사로 출가하여 행원(行願)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1949년 예산 수덕사에서 당시 한국 불교의 대표적 선지식이었던 고봉 대선사로부터 전법게(傳法偈)와 숭산(崇山)이라는 당호(幢號)를 받아 이 법맥의 78대 조사(祖師)가 되었다. 당시 고봉 스님은 ‘너의 법(法)이 세계에 크게 퍼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1966년 일본으로 건너가 해외 포교에 앞장서 1972년 미국에 홍법원 개설을 시작으로, 32개국에 120여개 선원(Zen Center)을 설립ㆍ운영하였으며 수많은 외국인 제자들을 길러냈다. 달라이 라마, 틱낫한, 마하 거사난다와 함께 세계 4대 생불(生佛)로 추앙받았던 숭산 스님은 만년까지 세계를 누비다 2004년 서울 수유리 화계사에서 입적했다.

 



만행ㆍ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진리를 찾아 걸어온 현각 스님

 


1964년 미국 뉴저지주 라웨이에서 태어났다. 예일 대학교에서 서양철학과 영문학을 전공한 뒤,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에서 비교종교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서양의 종교와 철학에서 정신적 만족을 찾을 수 없었던 그는 1990년 대학원 재학 시절 숭산 스님의 설법을 듣고 1992년 출가했다. 1996년 양산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비구계를 받았으며, 2001년 8월 화계사에서 숭산 스님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인가를 받았다.
1992년부터 송광사, 정혜사, 각화사, 봉암사 등 전국의 선방에서 용맹정진을 해왔으며 불교 경전의 영역 및 다수의 법문을 통해 선맥이 잘 이어지고 있는 한국 불교를 세계에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현정사 주지로 활동했으며, 화계사 국제선원 선원장을 맡았다. 숭산 스님의 가르침을 담은 《선의 나침반(The Compass of Zen)》《오직 모를 뿐(Only Don't Know)》《세계일화(The Whole World is a Single Flower)》 등을 영문으로 엮었으며, 저서로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가 있다.

역자 양언서
성균관대 아동학과와 중앙대 국제대학원 전문 통역·번역학과를 졸업했다. 일반 기업체에서 근무하던 중 불교 관련 통번역 업무를 접하게 되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한국 불교를 세계화하는 노력에 동참하게 되었다. 지난 10년간 각종 불교 자료 번역 및 통역을 해 왔고 현재는 전문 통번역사로 활동하고 있다.

 

엮은이의 글

밥솥 선사님
살아있는 업
깨달음에 대하여
식물도 생명이거늘
무념無念의 행동
부처를 쏴라!
고봉 선사의 ‘오직 할 뿐’
선禪이 어려워 보이는 이유
신神의 본체
욕망 곱하기 제로는 제로
참된 방생放生이란?
여자는 성불 못해!
공 선사의 일원상一圓相
미친 마음
참 자유
독화살
좋은 것들
본연의 모습으로
톨게이트의 관세음보살
빗자루 타기 수행
이 세상의 시작
우리는 왜 여기 있는가?
진짜 부처는 어디에 있나?
선禪과 세계 평화
육조 혜능 대사의 실수
개가 조주趙州 선사를 죽이다
이무소득고以無所得故
무아無我와 진아眞我
죽고 싶어!
부동심不動心
삶과 죽음의 갈림
마법사 숭산 스님
하느님, 하나님, 선禪
선禪 수학數學
낙태
이 잠을 어찌할꼬?
영화映畵와 선禪
사랑에 빠진 큰스님
본성이 강하다고?
중생 제도의 끝은 어디인가?
선, 사주, 업
숭산 스님, 스승님을 회상하다
기행奇行을 통한 가르침
향수병
카지노로 간 숭산
뛰어난 방향 감각
당신은 로봇이오!
하늘은 왜 푸른가?
누가 당신을 만들었소?
큰 고통 큰 서원誓願
독재자에게 보내는 편지

 

출판사 서평

“당신은 이미 완전하다. 단지 그걸 모를 뿐!”
달라이 라마, 틱낫한, 마하 고사난다와 함께 세계 4대 생불(生佛)로 추앙받았던 숭산 큰스님!


숭산스님의 가르침은 많은 이들에게 구도의 길을 열어주었다. 현각스님에게 숭산스님은 종교인이기 전에 삶의 길을 가르쳐준 스승이자, 모범을 보여준 아버지이고 어머니였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현각스님은 1990년, 하버드대학원에서 열린 숭산스님의 강연에 매료되면서 한국의 선불교에 빠져들었다. 처음 만났을 때 숭산스님은 현각스님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세요.”
“제 이름은 폴입니다.”
현각스님이 답하자 숭산스님은 “그건 당신 몸의 이름이지 진짜 당신의 이름은 아닙니다. 진짜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때 큰 충격을 받은 현각스님은 점점 더 숭산스님의 인격과 법문에 빨려 들어갔다. 숭산스님은 다른 종교 지도자들처럼 자신을 따르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나를 통해 너희들 자신의 본모습을 제대로 보라’고 말했다. 이번에 출간된 《부처를 쏴라》(현각 엮음, 김영사 刊)는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진정으로 제자들이 영적으로 성숙하기를 바란 숭산스님의 가르침의 정수가 담겨 있다. 책 제목 《부처를 쏴라》는 임제선사의 말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라는 살불살조(殺佛殺祖)에서 비롯되었다. 불교는 누군가를 믿음으로써 마음의 평정, 구원이 이루어지는 종교가 아닌 만큼 스스로의 깨달음을 통해 해탈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진리를, 깨달음을 얻는데 부처가 장애가 되면 부처를 없애야 하고, 조사가 깨우침을 얻는 데 장애가 되면 조사를 없애야 한다는 이치를 《부처를 쏴라》라는 제목으로 강조했다.
제자들에게 스님 자신의 가르침을 통해 깨치는 것이 아닌, 자신 스스로가 깨쳐야 함을 강조하신 숭산스님은 《부처를 쏴라》를 통해 부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말을 했든 간에 그 부처에게 집착하지 말라고 경계하고 있다. 2006년 샴발라 출판사에서 출간된 이 책의 원제(Wanting Enlightment is a Big Mistake)가 말하고 있는 ‘깨달으면 그르친다’는 의미와 한국어판 제목인 《부처를 쏴라》는 부처와 깨달음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숭산스님의 말씀을 현각스님이 정리한 법문집 《부처를 쏴라》는 2004년 11월 30일, 스님 원적 후 외국인 제자 1세대들이 선사님의 원(願)을 받들어 가르침을 결집한 첫 책이다. 제자ㆍ수행자들과의 대화 및 공안 인터뷰 내용과 함께 스님께서 직접 들려주신 자신의 삶과 수행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최초로 공개되는 전두환 전대통령에게 보낸 ‘독재자에게 보내는 편지’까지 수록되어 있다. 또한 숭산 큰스님의 법문 영상 CD 두 장이 수록되어 있어 생전에 선사님을 뵙지 못한 이들에게 스님의 가르침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으며, 도서 판매의 수익금은 전액 포교를 위해 쓰인다.

“숭산스님은 내게 길을 가르쳐준 스승이었으며 나를 새로 태어나게 한 아버지 어머니였다!” _현각
한국 선불교를 세계에 알리며 ‘한국의 달마’라 불린 숭산 행원 대선사!


‘단지 모를 뿐, 오직 할 뿐’이라는 가르침을 남긴 숭산 행원 대선사(1927~2004). 생전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와 베트남의 틱낫한, 캄보디아의 마하 고사난다와 더불어 세계 4대 생불(生佛)로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재에 소개될 만큼 세계 각국에 한국 불교를 널리 알려 한국 불교 최고의 해외포교사로 추앙받는 정신적 스승이다.
한국 선불교를 누구보다 앞장서 세계에 알리며 ‘한국의 달마’라 불린 숭산스님은 1927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났다. 일본 총독의 압제 아래 정치적, 문화적 활동을 탄압받던 시절, 지하 독립운동에 가담해 1944년 체포되어 좁은 감방에서 갖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다음해 세계대전에 끝나고 동국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으나, 불안한 사회를 보며 자신의 정치적 운동이나 학문으로는 세상에 도움을 줄 수 없음을 깨달았다. 참된 진리를 구하기 위해 1947년에 충남 마곡사로 출가하여 행원(行願)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1949년 예산 수덕사에서 당시 한국 불교의 대표적 선지식이었던 고봉 대선사로부터 전법게(傳法偈)와 숭산(崇山)이라는 당호(幢號)를 받아 이 법맥의 78대 조사(祖師)가 되었다. 당시 고봉스님은 ‘너의 법(法)이 세계에 크게 퍼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1966년 일본으로 건너가 해외 포교에 앞장서 1972년 미국에 홍법원 개설을 시작으로, 32개국에 120여개 선원(Zen Center)을 설립ㆍ운영하였으며 수많은 외국인 제자들을 길러냈다. 숭산스님의 해외 포교 이야기는 하나의 전설처럼 내려온다. 66년 일본을 시작으로 69년 홍콩, 72년 미국, 74년 캐나다, 78년 폴란드, 80년 영국, 81년 스페인, 83년 브라질, 85년 프랑스, 89년 남아공, 93년 싱가포르 등. 지금은 ‘세계화’라는 단어가 너무나 친숙하지만, ‘지구촌’이라는 단어가 1970년대에 나온 것을 생각한다면 시대를 앞서가던 스님의 탁월한 노력은 실로 놀랍다. 한국에서의 높은 지위를 마다하고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가 세탁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젊은 미국학생들에게 참선을 가르치시던 것이나, 만만치 않던 시절에 폴란드를 시작으로 동구권 공산권 국가에 대한 포교활동을 하였던 것 등, 스님은 가르침의 내용에서뿐만 아니라 세계를 내 집처럼 오고간 행적에서도 많은 불교도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숭산스님이 조계종의 큰스님이긴 하지만 숭산스님께서 해외에 심은 불교는 한국의 조계종과는 많이 다르다. 각 지역의 문화적 특수성에 맞게 형식이 변용되었는데 그래서 ‘관음선종(Kwna Um School of Zen)’이라는 새로운 종파가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재가자(평신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미국적 환경에 맞추기 위해 재가불자도 승복을 입을 수 있고, 결혼 여부에 상관없이 스님의 계를 내려주셨다. 그리고 단순화된 공안으로 각 단계를 차례로 통과하여 선사의 자격을 주는 등, 출재가가 엄격히 구분되는 한국의 전통과는 많이 다르다.
승가와 재가의 구분이 흐린 숭산스님의 포교방법은 한국에서는 인색한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미국 땅에서는 ‘선사님(Seon Sa Nim)’이라고 더 잘 알려진 숭산스님의 말씀은 쉽고, 단순하고, 너무나 재미있으면서도 동시에 정곡을 찌르는 지혜의 말씀으로 알려져 있다. 매사추세츠 의과대학의 정신과 교수이자 세계적인 수행가인 존 카밧 진 (Dr. Jon Kabat-Zinn)은 아래와 같이 숭산스님을 회고했다.

당시 제자들은 우리 미국인들에게는 생소한 ‘선사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었다. 숭산 선사님은 정말 특이한 분이셨다. 법문이나 예불 등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법의(法衣)가 아닌 ‘선사님표 스님 평상복’ 복장으로 격 없이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 하셨다. 유창한 영어 구사력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선사님께서는 선 지도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불법과 선을 미국인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확고한 의지 앞에서 짧은 영어로 인한 불리함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문법에 어긋난 서투른 영어로 인해 선사님의 가르침을 머리로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그로 인해 가르침은 더 힘있고 독특해졌다. 겉으로 드러난 의미의 이면을 꿰뚫어 보지 않고서는 선사님께서 전하고자 하셨던 진의(眞意)나 핵심을 파악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선사님의 언어는 자생하는 생명체와 같았다. 선사님의 힘차고 독특했던 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형태로 바뀌어 서서히든 빨리든 간에 우리의 마음 속 깊이, 뼛속 깊이 스며들었다.
선사님의 가르침은 우리의 지성과 관념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렸다. 한 편의 명시처럼 추상적 이미지를 일단 무턱대고 삼키고 나면 그 이미지들이 내면에서 한 폭의 그림으로 완성되듯이, 획일적이고 평범한 일상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던 새로운 차원의 세상을 열어 주었다.

“당신은 이미 완전하다. 단지 아직 그걸 모를 뿐!”
마음의 바른 길을 밝히는 숭산 대선사의 가르침


‘세계일화(世界一花 세계가 한송이 꽃과 같다)’를 설파하며 한국불교의 세계화에 앞장섰던 숭산스님은 만년까지 세계를 누비다 2004년 서울 수유리 화계사에서 입적했다. 생전에 숭산스님의 가르침을 쉽게 접할 수 없었던 국내의 많은 사람들에게 《부처를 쏴라》는 숭산스님께서 바라셨던 바대로 사람들 한 명 한 명에게 스스로 자신의 참나를 만날 수 있도록 그 길을 안내할 것이다.

많은 제자들은 스승이 빨리 인정해 주지 않으면 ‘스님이 싫습니다.’ 하며 돌아선다. 그런데 ‘스님이 싫습니다.’라든지, ‘이런 가르침이 싫습니다.’라는 것은 자신이 싫다는 말과 같다. 훌륭한 스승은 제자의 마음 상태를 비춰 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력하는 마음이 그 어떤 스승이나 선사보다 중요한다. ‘난 할 수 있어.’라고 말하면 정말 할 수 있고, ‘난 못해.’라고 말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둘 중 어느 것을 하겠는가?

찰나 찰나 맑은 마음을 지니면 올바른 행동만이 나타나 천당과 지옥에 걸리지 않게 된다. 이것은 생사를 초월하고 일체 중생만을 위한 보살행이다. 제일 중요한 점은 ‘왜 하는가?’이다. 자신만을 위해서인가, 일체 중생을 위해서인가? 그 답을 알면 어떤 행동도 문제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선 수행이고 선의 방향이다.

‘모르는 마음’은 모든 생각이 일체 끊어진 마음이다. 모든 생각이 끊어질 때 마음은 텅 비게 된다. 텅 빈 마음 상태에서는 모든 게 가능하다. 계산기를 사용하려면 C 단추를 먼저 눌러야 한다. 화면에 0이라는 숫자가 뜨면, 0 곱하기 2도 0이고, 1,000 곱하기 0도 0이다. 분노 곱하기 0도 0이고, 욕망 곱하기 0도 0이다. 마음이 0의 상태로 돌아가면 모든 게 0이 된다.

텅 비어 있는 마음은 허공과 같이 맑다. 허공과 같이 맑다는 것은 거울과 같다 것. 거울은 앞에 오는 모든 것을 비춘다. 빨간 공이 오면 빨간 공을 비추고, 하얀 공이 오면 하얀 공을 비춘다. 슬픈 사람을 보면 나도 슬프고, 기쁜 사람을 보면 나도 기쁘다. 이게 보살이다. 보살은 나 자신을 위한 욕망은 없고 오직 다른 중생을 위해 행할 뿐. 이것이 대자대비의 보살도이고, 이것이 세계의 평화이고 당신의 평화이다.

당신의 마음을 찾을 수 없는가? 마음을 찾지 못하면 마음을 만들고, 그러면 또 문제가 생기는 법. 마음을 만들지 말라. 모르니까 ‘모를 뿐’ 이렇게 오직 나아가라. 이 모르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나는 누구인가?’ 오직 모를 뿐… ‘내 마음은 어디에 있지?’ 오직 모를 뿐… ‘나는 태어날 때 어디서 온 거지?’ 오직 모를 뿐… ‘죽게 되면 어디로 가지?’ 오직 모를 뿐… 근본적으로 따져보면 당신은 진짜 모른다. 이것이 바로 깊이 들여다봐야 할 중요한 문제다.

<추천사>

선사님께서 열반에 드신 지금, 우리에게는 이야기만 남았지만 이 책을 통해 생전에 선사님을 만나 뵙지 못한 분들도 선사님을 뵐 수 있게 되어 참으로 다행입니다. 가르침을 잘 받아들여 그 내용이 자신의 일부가 될 때에 여러분은 진정 모방할 수 없는, 있는 그대로의 선사님을 뵙게 되고, 무엇보다도 선사님께서 항상 바라셨던 바대로 여러분의 참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_<엮은이의 글> 중에서

책속으로

우리 모두가 좋은 습관과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어. 이 자체는 문제가 되질 않아. 찰나 찰나 오직 맑은 마음 상태를 지키면 올바른 행동이 자연스레 나와. 이걸 우리는 올바른 업이라고 하지, 선업이니 악업이니 말하지 않아. 좋고 나쁨의 경계를 넘어선 거야. ‘하늘은 푸르다’, 좋은 거야 나쁜 거야? 좋고 나쁨의 차원이 아니지? ‘물은 흐른다’, 좋은 거야 나쁜 거야? 이 역시 좋고 나쁨의 차원이 아니야. 좋다 나쁘다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이름일 뿐이야. 착한 행동을 하면 죽어서 천당에 가고, 나쁜 행동을 하면 지옥에 가.
그러나 찰나 찰나 맑은 마음을 지니면 올바른 행동만이 나타나서 천당과 지옥에 걸리지 않게 돼. 이것은 생사를 초월하고 일체 중생만을 위하는 보살행이야. 제일 중요한 점은 ‘왜 하는가?’야. 자신만을 위해서인가, 일체 중생을 위해서인가? 그 답을 알면 어떤 행동도 문제 되지 않아. 아주 중요한 문제야. 이것이 바로 선 수행이고 선의 방향이야. _본문 중에서

‘모르는 마음’은 모든 생각이 일체 끊어진 마음입니다. 모든 생각이 끊어질 때 마음은 텅 비게 돼요. 텅 빈 마음은 생각 이전의 마음입니다. 생각 이전의 마음은 본래 마음입니다. 계산기를 사용하려면 C 단추를 먼저 눌러야 해요. 그러면 화면에 0이라는 숫자가 뜹니다. 이게 텅 빈 마음입니다. 텅 빈 마음, 아주 중요해요. 텅 빈 마음 상태에서는 모든 게 가능합니다. 0 곱하기 0은 0이고, 2 곱하기 0은 0입니다. 1,000 곱하기 0도 0 이지요. 산 곱하기 0은 0입니다. 분노 곱하기 0은 0입니다. 욕망 곱하기 0은 0입니다. 마음이 0의 상태로 돌아가면 모든 게 0이 됩니다. 모든 게 텅 비게 돼요. 완전한 무애의 경지예요. 그렇게 되면 텅 빈 거울과 같은 마음이 이 우주를 있는 그대로 비추게 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천국에 들어가고자 하는 자는 어린이 같이 되어야 한다.’ 하는 가르침과 같아요. 아이의 마음은 텅 비어 있어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즉 여여하게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집착하면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비출 수 없고, 중생을 위해 살 수 없어요. 고통만 생겨나요.
이 텅 빈 마음은 빈 것이 아닙니다. ‘비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빈 것이 아니에요. 하늘을 보세요. 낮에도 빛이 있고 밤에도 빛이 있어요. 하늘은 하늘일 뿐이지요. 그러나 낮에 보면 푸르고 밤에 보면 검고 어두워요. 이 시각 여기 미국의 하늘은 푸르지요. 그러나 한국의 하늘은 검고 어두워요. 왜 그래요? 하늘도 마찬가지예요. 누가 하늘을 파랗게 만들었어요? 누가 검게 만들었어요? 본래 하늘은 무슨 색이에요? 누가 색을 만들었어요? 당신이 만들었어요. 하늘은 ‘나는 푸르다.’ 하고 말한 법이 없어요. 하늘은 ‘나는 검다.’ 하고 말한 법이 없어요. 당신이 그렇게 말해요.
그러나 ‘오직 모를 뿐’이라는 C 단추를 누르면 파란색도 없고 검은색도 없어요. 모두가 여여합니다. 텅 빈 마음은 낮에는 파란색을 비추고 밤에는 검은색을 비추지요. 이게 전부예요. _본문 중에서

물, 얼음, 수증기는 모두 H2O야. 그러나 물에 집착하면 물이 얼음으로 바뀔 때 넌 물이 없어졌다고 생각할 거야. 그러면 ‘죽었다!’고 하겠지. 그러나 온도를 높이면 ‘짜잔!’ 물이 다시 ‘태어났다!’고 할 거야. 온도를 더 올리면 물은 없어지고 수증기가 돼. 그렇게 되면 물은 다시 ‘죽게’ 돼.
‘물’이라는 것에 집착하지 마. 이름과 모양에 불과하다 이 소리야. 이름과 모양은 본래 텅 비어 있어. 항상 변하고, 변하고, 변하고, 변하기 마련이야. 생각이 이름과 모양을 만들어. 물은 ‘나는 물입니다.’ 이렇게 이야기 한 바가 없어. 태양은 ‘나는 태양입니다.’ 이렇게 이야기 한 바가 없어. 달은 ‘나는 달입니다.’ 이렇게 이야기 한 바가 없어. 인간은 ‘물’이라고 말해. 인간은 ‘태양’이라고 말하고, ‘달’이라고 말한다고. 앞에서 말했다시피, 이름과 모양은 공하다 이거야. 자성이 없어. 생각이 지어낸 거야. 생사도 마찬가지야.
이름과 모양에 집착하면 H2O를 알 수도 없고 물, 얼음, 수증기를 올바로 사용하지도 못 해. 이름과 모양에 집착한다는 것은 외형에 집착한다는 소리야. 금강경에 보면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라고 나와. 만약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바로 보면 곧 여래를 볼 것이다, 이런 뜻인데 다 같은 내용이야.
그러니 모든 생각을 끊어. 모든 생각이 끊어지면 마음이 텅 비어. 그러면 일체를 있는 그대로, 진리로 보게 돼. 있는 그대로 보면 물의 올바른 쓰임, 얼음의 올바른 쓰임, 수증기의 올바른 쓰임을 제대로 알게 돼. 이걸 다른 말로 실용(實用)이라고 해. 아주 쉬워. 그렇게 되면 너의 ‘참나’는 찰나 찰나 중생 구제를 위해 올바르게 살 수 있어. 그것이 바로 생사의 올바른 기능이야.”

출처 : 가장 행복한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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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산스님 현각스님을 찾다가 우연히 방문했는데 집착이 생겨 옮겨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