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이름은
김 계 옥
명사(名士) 같은 멋진 이름을 갖고 싶다.
명사의 이름은 대부분 남자 이름 같지만 내 이름은 누구나 여자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은근히 부르면 옛날 기생이라는 - 권번(券番) 이름, 나는 여고시절 아버지에게 이름을 바꿔달라고 졸랐다. 아버지는 "네 이름이 어떠냐.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취를 해라. 네가 여류명사가 되면 네 이름이 명사 이름이다" 하신다. 할아버지는 아들 사형제를 두셨고 자손은 5남 13녀 18명이다. 나는 장손녀이고 우리 대(代)는 욱자 항렬이나 여자에게는 쓰지 않고 엉뚱한 계(桂)자 돌림을 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기생을 좋아해서 평양 기생과 한 살림 차리더니 손녀들에게 모두 기생 이름을 지었다"고 할아버지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둘째 삼촌은 계수나무 '계수나무(桂)' 자가 외롭다고 딸들의 이름을 정식 재판을 거쳐 호적까지 법적으로 개명했다.
나는 대학에 입학해서 호적은 바꾸지 못하더라도 예명 하나는 가지고 싶어서 친구들과 그 당시 이름을 잘 본다는 김봉수에게 갔다. 이마빡이 툭 튀어나오고 눈이 쌍꺼풀 진 총기가 번뜩이는 김봉수는 "이름을 바꿔, 일 년 중 가장 크고 둥근 달이 뜨는 8월에 티어났는데 이름까지 달 속에 있는 계수나무를 넣으면 도화살 때문에 공부를 계속 못해, 결혼은 절대 빨리 하지말고 공부를 많이 해야 돼." 했다.
김봉수는 이름은 잘 보지만 짓는 데는 성의 없다고 해서 이름을 꼼꼼히 잘 짓는다는 서대문에서 '김미경'이라고 지어 받았다. 나는 새 이름이 궁금해서 다른 철학관에 가서 감정 받았다. "지은 이름이야, 돈이나 붙고 평생 골골골 약봉지를 머리맡에 놓고 사는 몸이 약해지는 이름이야." 한다.
미련을 버릴 수는 없다. 이번에는 D대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했고 대학 강의에 나간다는 성명 철학가에게 '김연주'라는 새 이름을 받았다. 이름은 멋스럽고 한문의 뜻도 깊이가 있었다. 나는 만족하고 호적과는 관계없는 곳에 사용하려고 결심했다.
그러나 한 번 감정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다른 철학관에 갔다. "이름은 한자의 획수가 맞는다고 좋은 이름이 아니야. 본 이름은 도화살이 많으니 초년을 조심하라는 것이지 좋은 이름이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연주'는 초년, 중년은 좋으나 말년이 쓸쓸하고 고독한 나쁜 이름이라는 것이다.
누군가 좋은 이름을 짓는다고 철학관을 돌아다니다가 이름을 32번 지었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본 적이 있다.
나는 멋있고 좋은 이름의 환상에서 깨어났다. 새 이름이라는 것에 실망하고 한심해서 포기했다.
나는 어머니의 기독교 신앙에 의지해서 항상 개척자 정신에 입각해서 성장했다.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구하라 그리하면 얻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이가 되고보니 인생은 문을 두드린다고 열리는 것도 아니고 구한다고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은 물처럼 순리대로 흘러갔다.
해 아래서 땀을 흘리고 수고한 모든 것들이 헛되고 부질없는 것이 많았다.
모두 바람을 잡는 헛된 것뿐이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분복 (分福), 탤런트(talent), 세상에서 말하는 팔자가 있는 모양이다.
인생에 부귀영화, 오복을 누리는 성공이라는 것이 첫째 부모를 잘 만나야 하고 어디서 태어났으며 그리고 사주, 관상, 이름의 순(順)이라는 것.
옛날에는 부모가 반 팔자라고 했으나 요즘은 부모가 80점 이상이다. 부모의 우성적인 강건한 신체, 우수한 두뇌, 의지와 성격, 가정환경, 견고한 신앙심, DNA가 중요하다.
신의 섭리도 작용하는가, 아니면 운명학적인 관상, 사주, 이름이 좌우하는가. 관상은 얼굴이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니고 사주는 확률적으로 나와 같은 생년월일시를 가진 사람이 전국에 5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름은 다만 20%, 집의 지붕을 덮는 격이란다.
달 속에 계수나무는 외롭다. 내가 결혼하면서 친정 부모님이 동생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 간 것, 아들이 학부부터 미국 유학을 하게 되어 지금까지 미국에서 살고 있어 일 년에 한 번씩 보는 일이 이름과 무관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름을 바꾼사촌 동생들도 외로운 것은 마찬가지다. 글로벌 시대는 디아스포리와 해외 유학 인구가 많아져 외로운 사람이 많다.
처녀 때는 이름이 중요했다. 그러나 결혼과 동시에 처녀 때 이름(maden name)은 없어지고 누구의 엄마가 되었다. 지금까지 누구의 엄마로 살아왔다. 문학공부를 한다고 '수필 교실'에 나와서 늦게 나의 이름을 찾았다. 이름이 다시 탄생했다. 벼슬을 얻는 이름이라고 하더니 등단까지 되어 늦게 벼슬을 얻었다.
도화살이라는 것은 요즘 나쁜 말이 아니다. 연예인 기질이 있다는 말인데 옛날에 글을 쓰고, 짓고, 그림을 그리고, 춤추고, 노래한 기생들은 모두 도화살이 있었다. 그들은 그 시대에 연예인이다. 지금 시대도 마찬가지다. 나는 지금까지 주위의 사람들로 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랑을 많이 받는 것은 좋은 일 아닌가. 전업주부이면서도 어디서나 사랑을 받는 나의 이름이 좋다. 나는 필명이나 예명에는 관심이 없다. 본 이름이 정겹고 사랑스럽다. 나는 나의 이름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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