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의 남자들, 左재인 右병준
가짜 보수를 대청소하겠다는 문재인,
진짜 보수를 만들어보겠다는 김병준
문화일보 게재 일자 : 2018년 07월 26일(木)
허민 정치부 선임기자
한국 정치는 다이내믹하다.
문재인과 김병준, 대한민국 정치의 중원(中原)에서 마주한 두 사람이
노무현 전 대통령(2003년 2월∼2008년 2월 재임)의 왼팔과 오른팔 출신이다.
문재인은 민정수석과 시민사회수석을 거쳐 비서실장을 했고,
김병준은 정책실장과 정책기획위원장, 정책특보를 지냈다.
정무를 주로 담당한 문재인은 ‘노무현 좌파’,
정책을 맡았던 김병준은 ‘노무현 우파’로 분류된다.
두 사람은 참여정부 대부분의 시간 노무현 곁을 지켰지만 서로 별반 친하지는 않았다.
정권 5년, 휴일을 제외한 1500여 일,
아침 식사를 뺀다 해도 3000여 회에 이르는 식사 기회 가운데
두 사람이 약속을 정해 밥을 먹은 건, 김병준의 기억에 따르면, 단 두 번에 불과했다.
노무현 정권에서 실행으로 옮겨진 정책들은 대체로 김병준이 설계했다.
이를테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주 해군기지 건설 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
정책 좌파들이 ‘욕먹을 정책’이라고 못마땅해했던 사안들이다.
노무현의 ‘분권과 자율’에 대한 관심 역시 후일 대권 산실로 기능했던 지방자치실무연구소에서 김병준과 함께 활동하며 싹을 틔웠다.
대연정 제안도 정책연대를 통해 제도화한 협치가 국정을 이끄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던 김병준의 작품이다.
‘좌(左) 재인, 우(右) 병준’ 모두 샤이한 스타일이기도 하지만,
당시 청와대 주변에 포진한 정책 좌파들의 행태가 두 사람의 친밀성을 더욱 가로막았다.
예컨대 한 정책 참모는 김병준과 사사건건 대립했는데,
그때마다 문재인에게 달려가 불만을 토로했고
결국 대통령이 나서 두 사람을 달래는 식이었다.
그 과정에서 빛을 보지 못한 아이디어들도 상당했다.
김병준은 사석에서 “청와대 시절 정책 문제로 (문재인과) 간접적으로 부딪친 일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심지어는 진보 진영으로부터 친미·친재벌 참모라는 공격을 받았다.
그럴수록 김병준에게
문재인은 정책 마인드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판단이 재생산됐다.
세월이 흘러 폐족 위기에 몰렸던 친노(친노무현)는 친문(친문재인)으로 부활했다.
노무현의 한쪽 측면, 원칙 중시의 비타협적 정신을 승계한 문재인 정권이 들어섰고
‘주류세력 교체’를 향한 적폐대청소가 진행됐다.
노무현의 또 다른 측면, 자율과 통합의 정신을 중시한 김병준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에 올랐다.
친문은 왜 하필 망해가는 보수 정당이냐고 조롱했다. 권력욕이라는 손가락질도 나왔다.
김병준에게 더 어울리는 수식(修飾)은 권력욕보다는 명예욕에 가깝다.
그에겐 ‘노무현 좌파’의 간섭으로 실현되지 못한,
이를테면 시장우선주의 정책이나 서비스산업 육성 같은
미완의 프로젝트를 완성해보려는 보상심리가 강하다.
조국 근대화와 반공이라는 과거 가치 이외에는
내세울 미래 가치가 없는 무능 보수를
바로 세워야 대한민국이 진전할 수 있다는 생각도 품고 있다.
김병준은 “노무현 정신은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다”고 말한다.
가짜 보수를 대청소하겠다는 문재인(저서 ‘대한민국이 묻는다’),
진짜 보수를 만들어보겠다는 김병준.
‘노의 남자’들은 이렇게 나뉘었고,
주군의 사후 10년이 되어가는 대한민국 정치 한복판에서 충돌하고 있다.
mins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