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역사특강/4강 다시보는 6.25 전쟁
http://www.ebs.co.kr/replay/show?prodId=10325&lectId=10195386&inKoost=Y
http://ebs.daum.net/historylecture2013/episode/25433(6.25전쟁)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일요일 아침의 평화롭고 느긋한 공기는 멀리서 들려오는 몇 발의 포성에 찢겨나갔다.
6.25전쟁은 북한의 기습공격으로 시작됐다. 북한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였던 남한은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전쟁 발발 3일 만에 서울을 빼앗긴데 이어 3개월 후에는 경상도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한반도 전역이 북한의 점령 하에 들어가게 됐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신속했다. 미국은 6.25가 일어나자마자 UN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했고 6월 27일에는 UN군 파병을 결정했다. UN군을 이끌게 된 미국은 낙동강 전선에서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기로 했다. 영덕부터 진주까지 이어지는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미군은 ‘죽음으로 사수하라’는 사수훈령을 내렸고, 낙동강 유역에서는 말 그대로 피비린내 나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마침내 방어선 사수에 성공하면서 UN군과 한국군은 한숨 돌릴 틈을 얻었으며, 9월 15일 북한군의 허리를 자르는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해 불리했던 전황을 공세로 돌리게 된다. 9월 28일 UN군은 서울을 수복했으며 북진을 계속해 10월 하순에는 압록강 유역까지 도달한다.
하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변수가 생긴다. UN군의 파죽지세에 위협을 느낀 중국이 참전을 결정한 것이다. 중국의 개입으로 UN군은 다시 남쪽으로 후퇴하게 되고, 38선을 경계로 전쟁은 교착상태에 빠지게 된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휴전 논의가 시작되었다. 특히 1953년에는 국제 정세에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난다. 북한에 지원을 해 준 스탈린이 사망했고, 미국에서는 조기 종전을 공약으로 내건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휴전제의가 급물살을 타게 된 가운데, 이승만은 휴전에 대해 결사반대를 외치며 반공포로들을 대규모로 석방하는 승부수까지 띄운다.
결국 미국은 이승만을 달래기 위해, 이승만이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끊임없이 요구해왔던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그리고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이 체결되며 마침내 6.25전쟁은 마침표를 찍는다.
전쟁은 끝났지만 한반도에는 깊은 상흔이 남았다. 남북 합쳐 200만 명이 넘는 인명이 스러졌고 국토는 피폐화됐으며 남과 북을 둘로 가른 38선은 냉전의 상징이 됐다.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남긴 지난 6.25전쟁을 돌아보며, 두 번 다시 이런 비극을 겪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모색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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