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시노펙 합작 중한석화 사드 무풍지대인 이유[조선BIZ. 르포]
원문보기: 입력 : 2018.03.05 06:39 | 수정 : 2018.03.05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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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사상 최대 SK화학 영업이익 15% 기여...시노펙 11개 에틸렌공장 중 생산성 2위
경영권 집착 않은 차이나인사이더 전략...공장운영 노하우 전수로 ‘한가족’ 신뢰
최태원 회장 톱-톱 협력 접근으로 난관 돌파...2020년 중국 2위 에틸렌 공장 야심
- ▲ SK가 시노펙과 후베이성 우한에 합작해 세운 에틸렌 공장 전경 /우한=오광진 특파원
중국 중부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 있는 SK종합화학 합작공장 ‘중한석화’로 가는 화공대도(化工大道) 옆에는 긴 파이프라인이 설치돼 있다.
합작파트너인 중국 최대 석유화학업체 시노펙 정유공장에서 만든 나프타가 10km에 걸친 이 파이프라인을 타고
중한석화에 도착한 뒤 분해설비(NCC)를 거쳐 산업의 쌀인 ‘에틸렌’ 등으로 바뀐다.
지난 3일 찾은 이 곳은 ‘사드 무풍지대’ 였다.
“정치적으로는 한⋅중간 갈등이 있겠지만 우리는 한 가족이다.”(관저민⋅管澤民⋅총경리) 는 인식은 실적으로도 나타났다.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한반도 배치에 대한 중국의 경제보복이 작년 3월 본격화한 지 1년이 되도록 수그러들지 않았지만
이 곳은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공장 부지가 여의도 크기만한 90만평(약 297만㎡) 규모의 중한석화는 2013년 10월 SK종합화학과 시노펙이 35 대 65 비율로 총 3조3000억원을 투자해 가동에 들어갔다.
지난해 1조 3722억원에 달한 SK종합화학의 사상 최대 영업이익 가운데 15% 가량을 기여했다. 영업이익률이 24% 수준으로 SK 한국 공장들의 10~20%를 크게 웃돈다.
중한석화는 시노펙의 11개 에틸렌 공장 중에서도 세전 이익은 5위, 1인당 이익은 2위에 올랐다.
시노펙이 영국 BP 등 외국기업과 합작한 공장 5곳 가운데 1위를 기록했다.
중한석화는 급증한 이익으로 부채를 갚아나간 덕에 부채비율도 2014년말 234%에서 지난해 35%까지 떨어뜨렸다.
중국 당국이 금융리스크 억제를 위해 타깃으로 삼은 과도한 부채 의존 기업에도 해당되지 않는 것이다.
창장(長江)경제벨트의 중간 허브에 세워진 중한석화는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석유화학에선 가장 큰 규모의 프로젝트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해 12월 방중 기간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비즈니스 포럼에서 한중 협력 성공사례로 발표되기도 했다.
중한석화는 고성장 모멘텀을 이어가기 위해 가동 이후 누적 수익(1조 5800억원)에서 47%에 해당하는 7400억원을 3년간 투자해 에틸렌 생산능력을 연간 80만t에서 110만t으로 늘리는 증설 계획을 작년 10월 발표했다.
중한석화가 2020년이면 상하이 세코에 이어 중국 2위 생산능력의 에틸렌 공장이 될 것으로 IHS가 전망한 배경이다.
사드 보복을 넘어선 중한석화의 질주는 △경영권에 집착하지 않은 차이나인사이더 전략 △뚝심으로 밀어부친 톱-톱 협력 △운영 노하우 전수를 통해 쌓은 한가족 문화 등이 뒷받침하고 있다.
◇ 중국 기업에 스며든 차이나 인사이더
- ▲ SK종합화학에서 파견한 이원근 중한석화 부총경리(왼쪽)와 시노펙 출신의 관저민 총경리(/우한=오광진 특파원
이원근 중한석화 부총경리는 자신을 ‘넘버 3’라고 표현했다.
지분율이 35%여서 상위 1,2위인 동사장(회장)과 총경리(CEO)는 중국인이 맡고 있다는 것이다.
시노펙과 합작한 다른 외국기업들이 지분을 50% 확보한 것과 대비된다.
중국 당국은 당초 에틸렌 공장 합작 대상으로 제한한 원유나 원천기술을 제공할 수 있는 중동 및 서방의 기업이 아니어서 경영권 확보가 쉽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경영권에 연연하지 않았다.
중국에서 경영권을 확보하지 못하게 되면 합작사업 추진을 중단하는 경우가 다반사인 한국 재계에서는 드문 사례였다.
“중국에서 성공하려면 중국 기업 SK가 돼야한다”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차이나 인사이더’ 전략 덕이 컸다.
중국 기업에 스며들어 중국 기업으로서 큰 수익을 남길 수 있는 길을 택한 것이다.
“우리 기업들은 중국 합작사업 때 과도하게 경영권에 집착해 좋은 사업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이문형 숭실대 교수)는 지적을 받아들인 셈이다.
2016년 SK종합화학이 상하이로 본사를 옮긴 것도 차이나 인사이더 전략의 일환이다.
김형건 SK종합화학사장은 1년의 절반 이상을 상하이에 체류하고 있다.
- ▲ SK와 시노펙이 합작한 우한 에틸렌 공장에 1000여명 직원의 얼굴이 담긴 대형사진이 곳곳에 걸려있다. /우한=오광진 특파원
중한석화에 파견된 SK종합화학 주재원은 5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관저민 총경리는 이들을 포함 1000여명의 직원 사진을 한데 모은 대형 사진을 가리키며 “SK와 한가족”이라고 강조했다.
SK의 경영 구호인 ‘행복’도 중한석화에 스며들어갔다. 최 회장은 다른 시노펙 공장에 없는 헬스장을 설치해주면서 행복 헬스장이라고 명명했다. ‘행복’이란 구호는 깨끗한 수질을 보여주기 위해 물고기를 키우는 폐수처리시설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뚝심으로 밀어부친 톱-톱 협력
- ▲ SK가 중국에 투자한 합작 에틸렌 공장을 운영하는 중한석화 본사 빌딩 /우한=오광진 특파원
관저민 중한석화 총경리는 “위정성(兪正聲)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政協) 주석과 장더장(張德江)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국회의장)의 과거 시찰 사진을 보여주며 고위 지도부의 지지가 없었다면 이렇게 빨리 중한석화가 가동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륙에 위치한 우한에서 환경문제 우려가 큰 화학공장을 세우는 데 반발이 있었지만 2007년까지 후베이성 서기로 6년간 재임한 위정성의 뚝심이 도움이 됐다는 얘기다.
“상하이시 서기에 이어 정협 주석이 된 후에도 중한석화에 관심을 보였다”(관저민 총경리)는 위정성이 중부 지역에 화공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구상을 다진 것은 2006년 최태원 회장과의 만남이 주요 계기가 됐다.
2007년 우한 에틸렌 공장 착공식까지 순조로웠다. 하지만 미국발 금융위기로 대규모 투자가 차질을 빚으면서 중한석화 프로젝트도 2011년까지 사실상 중단되는 고비를 맞았다..
최 회장은 중국으로 날아가 시노펙 최고경영자를 만나고, 중국 정부에 협조를 요청하는 등 뚝심으로 밀어 부쳤고, 2013년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비준을 얻어 공장 가동에 들어갔다.
화학산업은 인프라 사업인데다 환경영향이 커 당국의 지지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중국 고위층과의 관시(關係)구축을 통한 최 회장의 톱-톱 협력 접근방식이 먹힌 것으로 보인다.
◇40년 넘는 운영 노하우 전수...환경⋅안전관리 호평
- ▲ SK의 화학공장 운영 노하우가 응축된 중한석화의 중앙통제실 /SK이노베이션 제공
“화학공장은 가동 안정화와 수익 실현까지 최소 3~4년 걸리는 게 보통이지만 중한석화는 가동 첫해부터 흑자를 기록하며 성장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김규성 중한석화 기술관리부장은 1972년 한국에서 최초로 나프타분해설비(NCC)를 운영한 공장 노하우를 전수한 덕이 컸다고 말했다.
수 천개 장치로 이뤄진 화학공장은 운전미숙 등으로 문제가 생기면 하루에 수십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SK의 운영 노하우가 응축된 통합 통제실은 운전 최적화에 기여한다. SK가 화학공장의 운영 노하우를 축적하게 된 건 최 회장이 2000년대초 현장 근로자에게 노트북을 지급하면서다. 개인 경험에 기댄 운영노하우가 자료로 축적되기 시작한 것이다.
김 부장은 “중한석화를 시운전할 때 SK에서 수십명으로 이뤄진 테스크포스(TF)팀이 와서 안정화 작업을 했다”며 “이후에도 SK의 경쟁력강화 TF를 지속적으로 중한석화에 파견한 덕에 공장 가동률을 99%까지 높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관저민 총경리도 “시노펙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에틸공장을 운영해온 SK에서 지난해에만 30여개의 운영 TF팀을 파견한 게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 시노펙은 SK를 돈이나 내고 이익만 챙기려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생기면 적극적으로 해결 하려는 진정한 친구로 여기게됐다."(이 부총경리)
40년 넘은 SK의 화학공장 운영노하우와 설비 국산화율이 90%에 이르는 시노펙의 기술과 원자재 수급 능력이 결합하면서 성장 동력을 키운 셈이다.
2014년 시노펙이 중국 내 자사 에틸렌 공장 10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경쟁력 평가에서 중한석화는 운영비용, 수선효율, 에너지원단위, 장치손실율 등 4개 부문에서 1위에 오르며 종합평가 2위를 차지했다.
- ▲ 중한석화가 폐수처리시설의 깨끗한 수질을 보여주기 위해 물고기를 키우고 있다. /우한=오광진 특파원
중국 국가안전감독총국 총공정사 등 정부관료들이 "SK의 운영 노하우가 집약된 중한석화는 훌륭한 벤치마킹 대상으로, 중국기업의 롤모델이 돼주기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고 회사측은 전했다.
SK이노베이션의 자체 안전관리 시스템인 SHE(Safety, Health, Environment) 시스템이 중한석화를 안전 관리 모범기업으로 만든 것이다.
이원근 부총경리는 “SK와 시노펙 간 관계가 돈독해지면서 향후 깜짝 놀랄만한 신규 협력사업은 물론 SK의 중국 사업 기회도 확대될 것”으로 기대했다.
SK는 화학사업의 차세대 먹거리로 대표되는 패키징(Packaging)과 오토모티브(Automotive) 등 고부가가치 사업의 중국 시장 공략도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용어 설명 나프타분해설비 (납사 크래커⋅NCC: Naphtha Cracking Center)
납사(나프타)를 분해해 석유화학의 기초 원료인 에틸렌, 프로필렌 등을 생산하는 전통 화학 설비. 에틸렌, 프로필렌은 다시 유도품 설비에 투입돼 PE(폴리에틸렌)/PP(폴리프로필렌) 등의 다양한 플라스틱의 원료가 되는 제품으로 전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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