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런저런 이야기/3. 작명여담

토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은 왜 다섯 번이나 개명을 했나 ,오복작명원에서 개명을 하지는 않았지만

언제나오복의향기 2014. 4. 7. 00:08

임진왜란을 일으킨 토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豊臣 秀吉)은

왜 다섯 번이나 개명을 했나 작명원에서 하지는 않았지만

 

 

 

                                                    풍신수길

 

오다   노부나가    (織田 信長)1534 ~ 1582  용맹 합리적이면서 저돌적으로 적을 격파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 秀吉)1536 ~ 1598  지혜 싸움보다는 지혜로 이김.현실 파악에 민감.

도쿠가와 이에예스(德川 家康)1543 ~ 1616  덕망 상황을 길게 보며 기다릴 줄 앎.

 

일본역사에서 세영웅은 그들의 리더쉽으로 권력의 정상에 올랐지만,

운명적 강물의 흐름을 타고 흘러갔을뿐이다. 세영웅은 권력을 직접 물려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서로 계승관계로 이어졌다.

 

이들 중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다른 무장들에 비해 아주 미천한 출신이었다.

그는 출신 에 대한 열등감이 있어 그의 신분 상승을 위해 귀족들의 성씨를 얻어 그의 권위를 굳히려했다.

1. 청년 시절의 이름은 기노시타 도키지 어린시절 부터 오다노부나가를 섬겼다.

2. 스물아홉 유력한 가신이되고는 하시바 라는 성과 히데요시 라는 이름으로 개명했다

3. 오다노부나가이후 실권 장악후 다이라 히데요시 일본 4대 귀족성중 하나로 개명

4. 최고 통치권자가 된후 후지와라(藤原) 히데요시 잠시 바꾸었다

5. 천황으로 부터 마지막으로 토요토미는 성으로 하사받아 토요토미 히데요시 었다.

 

사람에게는 이름이 그렇게 중요하다.

풍신 수길이 모든 권력을 갖은 후에도 왜 자기의 이름에 집착했을까

이름에 그만큼 집착한다는 것은 온천하를 다 갖고 나서도 뭔가 부족하다고 느낀 것이다.

 

물질적인 것은 다채웠으나

정신적으로 공허한 무엇이 있다. 그것이 이름이요.명예다.

 

사람은 죽어도

그 이름은 천년을 간다하지 않던가?

 

 

                                                                                   풍신수길의 오사카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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