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一 命運 : 韋千里 命相, 淸代 오지창, 三命通會 육오산인, 역종기 신세설
1.위천리 명상韋千里 命相
여러 해 전 막 초겨울로 접어들 즈음,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던 친구가 남경으로 찾아왔기에
그를 아는 몇몇 친구를 불러 조촐하게 술자리를 마련하였다.
그 자리에 모였던 친구들은 명리학을 배운 시기도 비슷하고
현재 역술인으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회의 방향은 자연 명리쪽으로 흘러갔다.
이런 저런 한담을 나누던 중 한 친구가 작년에 뉴욕의 한 신문에 보도되었던 동일한 사주를 가진 두 남자 이야기를 꺼냈다. 결국 사주가 같았던
그 둘 중 한 사람은 정치무대, 다른 한 사람은 금융업계에서 확고한 지위에 올라 격(格)이 비슷한 인생을 살다 거의 같은 시기에 죽었다. 나도 그 때 그 기사를 읽었다.
50여만 종이나 되는 사주중 같은 사주를 갖고 태어나기도 극히 드문 일이지만 만약 같다고 가정할 경우
뉴욕의 두 남자처럼 그렇게 거의 비슷한 명운으로 살게 되는 것일까 하는 의문에 빠져 며칠동안 잠을 설쳤던 것이 생각나 그의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그러자 내 옆에 앉아 있던 친구가 흥미로운 얘깃거리라도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눈빛을 반짝이며 바짝 다가와 앉았다.
그는 잘 알고 지내는 꽤 이름이 알려진 역술가에게서 들은 얘기라며 서두를 꺼냈다. 얘기의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1
어느 날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그 역술가에게 찾아와 지금 아내가 중병에 걸려 오늘 내일 하는지라 올해 자신의 사주에 극처(剋妻)할 명운이 있는지 알고 싶어서 왔노라고 사주를 건네주며
『전에 하도 답답해서 다른 역술가를 찾아 갔었는데 올해 극처할 명운이나 크게 재산상 손실을 맞는다면 극처를 면할 수도 있다 하더군요. 허나 전 지금 사업이 부진하여 잃을만한 재산도 없으니... 이 나이에 아내를 잃는다는 건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어떤 묘책이 없을까요?』
역술가는그의 사주를 한 번 훑어보고는
그가 과거에 무척 빈곤했고 불행히도 예전에 두 번이나 아내를 잃었는데 공교롭게도 둘 다 난산으로 인한 사망이었음을 알았다.
그녀의 사주에서 나타나는 병 역시 산부인과 계통이 분명했으며, 원인은 10년전 아이를 가졌을 때 유산했는데 그 때 자궁에 남아있던 태독이 지금에서야 발병한 것이 확실했다. 역술가가 자신과 아내의 사주를 보고도 아무 말이 없자 그 남자는 초조한 목소리로 다그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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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사주를 보고 10년전 아이를 낳을 때 상황이 어떠했는지, 또 올해 어떻게 하면 이 난관을 넘길 수 있을지 말씀해 주십시오.』역술가는 그가 이렇게 묻는 의도를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제서야 말문을 열었다.
『10년전 아이를 유산했을 때 남아있던 태독이 자궁에 퍼져 발생한 게 틀림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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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를 찌르는 그 한 마디에 그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실 아내가 몸져 눕자 곧 인근병원에 가서 진찰해 보니 어혈(瘀血)이 풀리지 않고 있다가 악성 종양으로 발전하였기 때문에 위험부담이 있더라도 수술은 해야한다는 진단이 나왔던 것이다.『그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당신 사주를 보니 당신말대로 큰 재산도 없고... 참 딱한 일이군. 그 문제는 접어두고 우선 극처를 면하려면 6개월이나 1년 정도 집을 떠나 있는 것이 좋겠소. 그렇지 않으면 극처와 파재(破財)를 면하기 힘들거요.』 그 남자는 역술가의 말을 듣고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사실 1년이상 집을 비운다면 생계에 미치는 영향도 적잖을 것이니 그의 입장에선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역술가는 그가 여전히 반신반의한 모습을 보이자 아예 그의 내면에 감춰둔 비밀을 말해 버리기로 작정하고 운을 뗐다.
『당신은 평소에 입고 먹는 것을 아끼며 근검한 생활을 했지만 32세가 넘어도 가세가 피질 않았을 것이고, 첫 번째 부인은 남의 여자를 강제로 취했고
둘째 부인도 초혼은 아니었소.
또 지금 병상에 있는 셋째 부인을 얻을 때 상황 역시 죽은 두 아내와 다를 바가 없소. 이러한 사실은 사주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지 당신 탓은 아니니 굳이 뭐라 하진 않겠소. 이젠 좀 내 말을 믿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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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숨을 돌리고 그 남자의 표정을 보니 치부가 다 드러난 셈이라 창피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한 눈치였다. 역술가는 다시 말을 이어 『명운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요. 만약 내 말대로 하지 않는다면 부인의 생명을 보존하긴 힘들거요.
당신 재산운을 보면 직업이니만큼 오랫동안 화덕(화로)가에서 쇠붙이를 다루는지라 사주 원국대로라면 본래 발재(發財)할 명은 아닌데 32세이후 20년은 운이 북방 수(水)운으로 행하니 수화(水火)가 상제(相濟)하여 재운이 형통하고 순풍에 돛을 단 듯 평탄했을 거요.』 이야기가 끝났는데도 그 남자는 여전히 둔기로 한 대 얻어맞은 듯 얼빠진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역술가의 말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그의 부친 역시 대장장이였고 자신도 그 일을 하고 있다.
첫 번째 아내는 인근 나루터에 살던 사공의 여자를 강제로 취했고,
둘 째 부인은 과부였으며
세 번째 부인도 그가 철공소 주인이 됐을 때 부리던 점원의 애인을 우격다짐으로 취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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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과거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꿰뚫자 다시 묻기를 『제가 떠나면 정말 아내가 죽지 않겠습니까?』
『그렇소, 또 주의할 점은 만나지 못하겠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오. 우선 시험삼아 3개월 동안 떨어져 있어 보고 그녀의 병세가 호전되면 계속 별거 상태로 지내고 그렇게 했는데도 다른 증세가 오거나 차도가 없다면 그 땐 당신 맘대로 해도 좋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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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떨어져 있어 아내를 극하지 않는다면 수술은 받지 않아도 되는 겁니까?』
『본래 명리상으로 보면 당신은 올해 극처할 명운이지만 오행충극(五行衝剋)의 상황으로 볼 때 떨어져 생활하는 방편을 쓰면 액을 면할 수 있고, 또 파재(破財)의 방법으로 액을 대신할 수도 있소. 허나 금년에 파재할 악운이 겹쳤으니 딱한 일이오.
음~ 아무튼 부인은 입원시키는 게 좋겠소. 부인을 병원에 입원시키면 자연 당신과 떨어져 있게 될 거고, 병원비용이 적잖게 들어 재산상 손실이 있을 터이니 일석이조의 묘안이 아니겠소? 그러나 만약 14일을 넘긴다면 운이 바뀌는 입춘(立春)이 들어오니 그때를 넘기지 않도록 빨리 결정해야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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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그 남자는 역술가의 말대로 서둘러 집을 떠났고, 부인은 곧바로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을 받았다. 그 후 다행히 부인은 수술경과가 좋아 집에서 통원치료를 해도 될 정도로 회복되어 6개월만에 부부는 다시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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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같은 그의 논명의 영험함은 흔히 있는 일이라 그리 놀랄 것도 없지만 기이한 사실은 그로부터 몇 년 후에 나타났다.
손님이 뜸한 토요일 오후에 한 점잖은 신사가 찾아왔는데 그의 사주를 보는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공교롭게도 그 손님의 사주는 몇 년 전 철공소 주인의 사주와 똑 같았기 때문이었다.
더욱 기이한 건 철공소 주인은 작년에 이미 세상을 떠났고,
죽기 전 병석에 있을 때 천수가 어떨지 물어왔기에
오행이 이미 끊겼으니 가을을 넘기기 힘드리라고 대답해 주었는데
지금 자신 앞에 똑같은 사주를 가진 이가 턱 버티고 서있으니
이 사람의 사주를 어떻게 논명해야 좋을지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전신을 가다듬고 우선 육친관계부터 물어보자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육친관계가 철공소 주인과 거의 비슷했다.
두 사람 다 비슷한 나이에 부모를 여의었고, 아내를 잃은 시기도 같았다.
또 둘다 결혼을 세 번 했다는 사실인데 다른 것은 이 신사의 경우 세 번 다 정식결혼이었고 난산으로 부인을 잃은 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 원인을 알아보니 그가 56세 되던 해에는 외지에 있는 시간이 많았으므로 극처할 액을 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유사한 점은 발운(發運)한 시기인데 철공소 주인은 32세 되던 해,
첫 번 째 아내를 맞을 때부터 운이 들어와 재운이 형통하기 시작했고,
이 신사도 32세에 결혼한 후 6개월만에 강소현(江蘇縣) 현장(縣長)으로 취임했고 거의 25년 동안 강소의 각 현을 두루 거쳐 현장을 지낸 것이다.
육친관계도 비슷하고, 사주상 별 차이는 없었으나
한 사람은 대장장이로,
한 사람은 현장으로 일생을 보냈으니 개인의 복록(福祿)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엇다. 도대체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기에 호기심을 자극해 왔다. 그 신사가 간 후 역술가는 며칠동안 곰곰 생각에 잠겨 있다가 본격적으로 연구해 보기로 결심하였다.
우선 대장장이의 명운을 현장으로 변하게끔한 원인을 두고 몇 가지 가설을 세운 후 귀납법 형식으로 하나 하나 증명해 갔다.
a
예전에 그가 철공소 주인의 사주를 보았을 때
사주에 화(火)가 태왕(太旺)하고 수(水)가 결핍되어 있으므로 명이 천하고 운이 궁색하다 판단 했었다.
만일 그의 사주에 수(水)가 있었다면 「病中有藥(병중유약)」으로 좋은 사주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며칠 전에 온 신사가 현장의 직위에 오를 수 있었던 원인에는 반드시 수(水)의도움이 있엇을 것인데,
사주에 수(水)가 없는 데도 수(水)의 도움을 받았다면
이는 필시 부모의 사주에 수(水)가 많거나, 출생한 후 오랫동안 물과 인접한 지방에 살았을 경우이다.
그러나 알아 본 결과 그 신사의 부모는
결코 수(水)가 왕한 사주가 아니었고 그 자신도 물가에 산 적이 없다고 말했다.
b
그래서 이번에는 부모의 직업을 가지고 연구해 보기로 했다. 이 방면으로 조사하려 한 의도는 본래 부모의 직업은 자녀의 후천운(後天運)과 유관한 것이고,
선천적인 명격(命格)과는무관하기 때문이었다.
알아본 결과 철공소주인의 부친은 대장장이였고,
신사의 부친 역시 격이 낮은 소상인(小商人)에 불과했다.
c
이번에는 좀 더 깊이 파고들어 그 신사의 소개로 그의 부친의 주위 친구분과 친척들을 만나 부친이 생전에 선행(善行)하고 덕을 많이 쌓았는지 여부를 물어보았다.
사실 부모의 적덕관계가 자녀의 팔자까지 바뀌게 하는 절대적 요인은 아니지만 역시 자녀에게 음덕(蔭德)과 복을 줄 수 있다는 관점에서 물어본 것인데 그리 적덕하진 못했다 하니 여기서도 그 원인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다소 지치기도 하고 도대체 실마리가 잡히질 않는지라 점점 자포자기한 상태로 변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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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한동안은 그 일을 거의 잊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보니 전에 사주를 봐 준 바로 그 신사였다. 그는 역술가를 보자마자 며칠 전에 외숙모를 장사지내려 고향에 내려갔을 때 외숙부에게 들은 얘기라며 자초지종을 늘어놓았다.
『외숙모를 장사지내고 옛 생각이 나시는지 외숙부께서는 술을 한 잔 하시고는 제 이름을 「고생(高生)」이라 지은 까닭과 「기제(旣濟)」란 별명을 갖게 된 경위를 말씀해 주시더군요.
제 고향은 강소의 보경(寶慶)인데 부모님이 결혼하신지 3년째 되던 해 아버님 직장 이 양주(楊州)에 있어 그곳으로 이사하게 되었답니다.
그땐 어머님이 저를 가지신지 9개월째라 곧 나올 달이 가까이 오는데 아무도 돌봐 줄 사람이 없자 불안한 마음이 들어 외숙부님과 숙모님이 어머님을 데리고 함께 양주로 돌아왔다 하더군요.
배를 타고 보경으로 가던 어느 날 밤, 배가 중간항인 고우(高郵)에 닿았을 때, 충격으로 배가 심하게 흔들리자 어머니는 갑자기 산기를 느껴 배 위에서 저를 낳으셨답니다.
마침 두 번 째 아이라 순산하였고 배를 정박하고 고우 해안가로 올라와 우선 급히 필요한 물건을 산 후 다시 배를 타고 무사히 보경에 돌아왔기에 고우에서 낳았다 하여 제 이름을 「고생」이라 짓고, 별명을 「기제」라 했답니다.』
역술가는 그의 말을 채 듣기도 전에 명리상 중요한 단서를 발견한 듯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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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의욕을 느낀 역술가는 이번엔 철공소 주인이 태어날 당시 상황이 어떠했는지 알아보았다.
얼마 안 있어 궁금했던 사실을 듣게 되었는데 철공소 주인의 부친 역시 대장장이여서 집안이 궁색했고 아내가 아이를 낳을 달이 겨울인데다 철공소 일이 바빠 늘 아내가 일이 끝날 때쯤 대장간을 찾아왔다 한다.
여느 때처럼 일이 끝나길 기다리던 중
산기를 느껴 불이 훨훨 타오르는 대장간 안에서 출산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제서야 역술가는 엉망으로 얽혀있던 실마리가 풀린 듯 기분이 개운해졌다. 사주가 같은 두 사람의 격이 완전히 달랐던 요인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 날 밤 술(戌)시에 출생한 사람은 오행중 조화(燥火)가 태왕하여 금(金)이 기세를 펼 수 없는데다 또 화(火)를 다스릴 습윤한 수(水)가 없는 것이다.
헌데 철공소 주인은 대장간의 화덕 옆에서 태어났으니 조화(燥火)의 기세를 부채질 한 셈이라 명이 곤궁하지 않을 수 없었고,
또 현장을 지낸 신사는 배위에서 태어났으니 사면이 수(水)라 오행중 조화(燥火)가 수(水)의 습윤한 기운을 받아 「병중유약(病中有藥)」한 귀격(貴格)으로 변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역술가는 그 일을 계기로 사주가 똑같아도
출생한 곳이 다르다면 명운 역시 크게 다를 수 잇음을 깨달았다.
새벽이 가까워 오는 줄도 모르고 숨죽이며 듣고있던 우리들은 그 친구의 이야기가 끝났는데도 서로 아무 말이 없었다.
아마도 그 때 각자의 마음속엔 남의 사주를 논명함에 있어서의 난점을 통감하며 쉽사리 단명해선 안되리라는 결심이 새벽하늘에 별처럼 박혔을 것이리라.
2. 청대 오지창 淸代
a
청대의 오지창의 "객창한화`에서...
근대 조씨성의 산명가가 있는데 자평의 술법에 정통하였다.
스스로 추산해 보니 당연히 4품의 관직을 얻을 터이나
학문이 충분치 못하여 이름을 날리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산명의 간판을 내걸었다.
평소 그는 누각에 있으면서 산명을 하러 오는 자에게
먼저 요금을 지불하고 순서를 기록하게 한 뒤,
차례대로 사람들의 팔자를 광주리에 담아 누각 아래에서
위로 올려보내게 하였다.
부귀한 사람들 말고 일반 사람들은 그와 면회하기가 어려웠다.
이 때문에 한때 명성을 떨쳤다.
한번은 군의 태수가 하인을 보내 그에게 산명을 하도록 하였다.
조 선생이 그의 팔자가 자기와 똑같은 것을 보고서
마음속으로 매우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종이를 아래층에 떨어뜨리고서 물으로 온 하인에게 말했다.
"만약 남방에 태어났다면 나의 명과 별차이 없지만,
북방에 태어났다면 4품의 관직일 것이다."
그러자 하인이 "우리 집 주인께서는 북방의 기적출신입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과연 그의 산명술이 적중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팔자가 완전히 같지만 운명이 다른 사례는 도처에 있다.
절강순무의 아들과 진강에서 두부를 파는
집안의 아들이 같은 해, 같은 달, 같은날, 같은 시에 태어났는데
나중에 순무의 아들은
음서로 관리가 되어 부친이 세상을 떠난 뒤 그도 절강순무의 관리가 되었다.
그러나 두부를 팔던 집의 아들은
여전히 부친의 뒤를 이어 변함없이 두부 파는 일을 계속하였다.
b.
청대 오지창의 `객창한화`에서..
`소하록`의 기록에 의하면 학사 기효람의 조카는 집안의 노복의 자식이었던
유운붕과 함께 태어났는데, 조카는 16세로 요절했으나 유운붕은 여전히 건재하였다.
출생할 당시 다만 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아이가 동시에 태어나 분과 초까지도 모두 같으나
하나는 존귀하고 하나는 비천하며
하나는 요절하나 하나는 장수하였다.
이는 또한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당나라 태상박사 여재가 명리를
반박한 논리는 항상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오지창은 결론지어서 말한다.
천하는 광대하여 날마다 만여명이 태어나고 만여명이 죽는다.
황제와 같이 장수하고 요절하는 날짜가 같은 사람이 어찌 없겠는가?
옛날 명나라 태조는
몰래 각지의 포정사에 명을 내려 팔자가 자신과 같은 사람을 수색하도록 하였다.
이에 세 사람이 나타났는데
하나는 승려이고
하나는 거지이며
하나는 상거래의 중개인이었다.
황제가 유청천에게 물어보니 그도 또한 대답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운명의 이치는 미묘하여 성인도 그것을 아는 일이 드물다고 하는 것이다.
3. 삼명통회 육오산인 三命通會
대귀의 사람이라도 제왕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역대의 창업한 군주 및 명대 왕조의 여러 천자를 고찰해보면 하나도 합치되는 사람이 없다.
나는 일찍이 천하가 광대하고 사람이 많으니 이러한 연.월.일.시에 태어난 자가 없지야 않겠지만
그들 모두가 반드시 대귀인이 된 것은 아니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늘이 대귀인을 낳을 때는 인지로 알기 어려운 기운이 반드시 있어서
이를 주관하면 년 월 일 시만을 따르기에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
1
예를 들어
시랑 황무관은 부사 신개와 명이 같은데
황은 전쟁터에서 죽고, 신은 집안에서 죽었다.
신이 황보다 앞서 죽었으니 관의 크고 작음은 다시 논할 바가 아니다.
2
주형과 이정룡은 명이 같은데
주는 임진년에 급제하고
이는 게축년에 급제하였다.
주는 관직이 상서에 이르렀지만
이는 대참에 그쳤으며 수명 또한 길지 못하였다.
그들 자손의 다과와 현비는 또한 논할 바가 못된다.
3
만채와 요재는 命이 같지만,
만은 진사에 급제하여 경이의 관에 이른
반면 요는 거인으로 그치고 관이 태수에 이르렀다.
그러나 요는 자식이 많고 만은 적으며 또한 만은 귀양가서 죽었으나
요는 그렇지 않으니 그들의 수요와 득실은 다시 논하기가 어렵다.
4
삼하의 황차재는 쌍둥이었지만 공명을 날린 선후는 또한 차이가 있었다.
하물며 천하는 크고 구주는 넓으며 사람은 많으니, 그 가운데 팔자가 같은 자가
어찌 한둘이겠는가? 또 어떻게 정해진 틀만 가지고 논하겠는가?
4. 역종기 신세설
1
강희 연간에 사주사가 율양에서 식구를 데리고 경사로 들어갔다.
a.나루터에 정박하였는데 부인이 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기에 이직이라 이름하였다.
그때 바람이 강하여 배를 운행 할 수 없었기에 주사는 강가에 올라 산보하고 있었는데
b.마침 한 대장장이집에서도 아이를 낳는 것을 보았다.
그 대장장이의 아이와 자기 아이의 팔자가 완전히 같았다.
20년이 지난 뒤
a.주사의 아들 사이직은 관이 청금에 이르렀으며 그 자신은
늙어서 고향으로 돌아갔다.
귀향하는 도중 사주사는 과거에 정박했던 나루터를 지나면서
b.대장장이의 아이가 현재 어떠한 상황인가를 살피고자
강가로 올라가 탐문하였다.
방문해 보니 대장장이의 집안은 여전히 옛날과 같았으며 단지 문안에서 한 얼굴이 흰 소년이
쇠를 때리고 있었는데 ,
바로 당시 그의 아들과 같은 해, 같은달, 같은날, 같은시에 태어난
대장장이의 아들이었다.
귀가한 뒤 주사는 자평의 술에 정통했기에
두 아이의 팔자가 완전히 동일한데도
어째서 이처럼 상이한 운명을 걷는가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그리고 생각하다가
갑자기 깨닫게 되었다.
두 아이는 사주에 火氣가 지나치게 성하며 그것을 제약하는 水는 적다.
마침
a.우리 아이는 배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수기를 얻어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다.
b.그러나 대장장이의 아이는 화에 화를 더하였기에 조절하는 신묘함을 잃었으며 따라서 출세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과거 전통문화 속의 산명술에 대해
우리는 먼저 이를 이해하고 분석해야만 할 것이다.
이해하고 분석하는 모든 과정이 바로 비판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막기만 하는 것은,
이끌어줌만 못하다는 사실은 이미 역사에
의해 증명된 법칙이다."
출처 :한국명리학회
원문보기 글쓴이 : 한명회
언제나 오복작명원 택일 궁합 운세상담 개명 작명
양천구 양천 오복의향기 오복철학관
동일한 사주를 가진 두 남자 이야기~
위천리 명상. 오지창 사명통회 육오산인 역종기 신세설
同一 命運 : 韋千里 命相, 淸代 오지창, 三命通會 육오산인, 역종기 신세설
같은 해, 같은달, 같은날, 같은시